[해외기고] 9월, 봄날의 축제
[해외기고] 9월, 봄날의 축제
  • 황 현숙(객원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13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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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춥다고 움츠렸던 겨울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봄맞이 축제가 열리는 9월 말에 들어섰다. 날씨가 추웠다가 따뜻해지면 햇살의 소중함을 깨닫고 마음마저 포근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카란다 나무에서 조금씩 번져가는 연한 보랏빛에서, 짙어가는 초록빛 나뭇잎사귀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가슴이 설레는 떨림을 담아본다.

매일 매일의 오늘이 다가오지만 바로 이 순간에 멋진 추억도 만들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져보고 싶기도 하다. 봄날의 나른함을 잊고 새로운 기운에 온 몸을 맡겨보면 좋은 일들이 생길 것만 같다. 겨울의 잔재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싹에 물이 오르듯이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시켜야 할 봄 축제의 시간이 왔다.

브리즈번축제( Brisbane Festival)가 9월 5일부터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브리즈번 축제를 총괄하는 예술 감독 데이빗(David Berthold)은 “당신의 9월 축제를 어떻게 최고로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물론 여러분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단편적인 쇼도 있지만, 축제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은 각각의 다른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쌓여나가는 것이다. 3주 동안 이어지는 더 큰 흥분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 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9월의 브리즈번축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이 도시의 예술과 문화수준을 발전시키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의 축제 공연에서는 아프리카의 콩고공화국에서 참가한 공연을 하이라이트로 꼽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첫 번째 본 공연은 “두려움과 즐거움(Fear & Delight)” 이라는 버라이어티 쇼로서 관객들이 흰색과 검은 색상의 옷을 입고 입장해야 했다.

공연자들은 흰색 바탕에 굵은 검정색의 선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얼굴은 마치 공포영화 속에 나오는 유령처럼 분장을 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희뿌연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며 여성드러머의 강렬한 드럼소리에 맞추어서 마르고 키가 큰 유령 같은 남자가수가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신나는 춤사위와 함께 서커스 공연이 이어지고, 반나체의 여성공연자를 내세워서 섹시함을 뽐내보려 했으나 관객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전달하지는 못했다. 한참 쇼가 진행되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가이드 개가 갑자기 짖어 대서 사람들의 웃음을 터지게 만들었다. 개의 눈에 야릇한 분장의 공연자들과 요란한 음악이 못마땅하게 보였던 것일까... .

광고 내용보다 실망스런 쇼였지만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특이했던 공연이었다.
예술 감독 데이빗의 표현처럼 또 다른 기획 작품들을 연결시켜 나가다 보면 멋진 축제의 한 묶음으로 쌓여가는 즐거움이 생겨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축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할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남겨진 봄의 카니발을 제대로 즐겨볼 생각이다.

주말을 이용해서 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투움바 꽃축제(Toowoomba Flower Carnival)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투움바 꽃 축제는 캔버라의 꽃 축제와 더불어 호주에서 유명한 꽃축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일 년에 단 한번 9월에 열리는 꽃 축제를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듬뿍 느끼며 흙냄새를 맡고 싶었다. 편안하고 한가롭게 구경하고 싶었기에 단체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갔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하루여행을 떠나는 회원들의 모습이 환하게 밝아보였다.

버스 창문을 통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골 야외 풍경들. 호주의 시골 풍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투박해 보이는 농가의 모습들. 말, 소, 양떼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뭉실 거리며 떠가고 있었다. 그런 경치들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끼니 호주가 내 삶의 안식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투움바로 들어서니 거리 입구에 꽃의 도시 투움바 라는 팻말이 걸려있고, 그 밑에는 둥근 모양의 화단에 꽃 카니발을 상징하듯이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투움바에서는 꽃 축제가 공개되기 전에 정원 경연대회가 있어서 이미 챔피언과 부 챔피언 메달을 받은 집들이 있다. 그래서 메달을 받은 집들의 정원을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해서 관람을 시켜준다.

챔피언으로 뽑힌 집들의 정원을 들어서며 연신 환호성을 지르는 회원들. 꽃보다 더 고운 집주인들의 어여쁜 마음씨, 일 년 내내 화단을 정성들여서 돌보고 화려한 꽃의 축제 밭으로 만들어 놓으니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성을 다해 예쁜 정원을 꾸며놓아서 잔디를 밟고 다니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참 인심도 좋은 집주인들. 낯선 이들을 자신들의 집 정원 안에 들여서 마음 놓고 꽃구경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흙냄새 맡으며 일했던 힘든 노고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의 기쁨으로 돌려주는 집주인들, 자연과 함께 사는 착한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는 듯 했다.

그랜드 챔피언으로 뽑힌 집의 정원 깊숙한 안쪽에는 작은 폭포가 만들어져있었다. 파란색의 폭포물이 연못으로 떨어지는데 화려한 색상의 꽃무리와 어울려서 너무나 환상적으로 보였다. 천상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에 푹 빠져들었다.

꽃 잔치의 황홀함 속에서 헤매며 나를 온전히 잊어버린 채, 도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꿈속 같은 몽롱한 시간을 보냈다. 공원에서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웃고 떠드는 회원들을 바라보는 남편들의 얼굴에도 정겨운 미소가 피어났다.

오늘 하루 그들의 묵은 사랑도 아름다운 꽃밭에서 행복하게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환상의 퍼레이드를 보면서 손뼉을 치고 소리도 질러보면서 꽃 축제를 마무리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꽃향기에 취한 즐거운 여정이었다. 문학회 회원들을 위해서 준비한 일 년만의 나들이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했다면 그것은 다시 내 몫의 기쁨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진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은 자연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마련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과 문화와 꽃 축제가 어우러졌던 9월.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가슴깊이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던 봄날의 축제를 기억한다. 황홀한 색상의 꽃들이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시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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