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칠과삼과 호도학의 지혜를 발휘할 수 없을까?
[칼럼] 공칠과삼과 호도학의 지혜를 발휘할 수 없을까?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5.11.20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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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단상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오는 상투적인 질문이 있다. ‘5.16이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도 똑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논의와 평가가 진행중에 있어서 공직 후보자로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그는 “5.16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견해, 논의, 주장이 있어서 제가 어떻다고 얘기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검찰총장의 직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사실 이 질문에는 덫이 놓여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개적으로 답하기가 아주 곤란하다. 쿠데타라고 답하면 청와대가 발끈할 것이고, 혁명이라고 답하면 진보라는 진보는 다 들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답해야 할까? 모범답안은 자기 소신을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과거 한보 정태수 회장처럼 입을 봉해버리지 않는 이상, 어물어물 딴 대답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호도학(糊塗學)’이라고 해서 이 같은 방법을 학문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사실 중국에서도 마오쩌둥(毛澤東) 사후에 마오쩌둥과 그의 시대에 대해 평가를 내려야 했던 적이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막 집권했을 때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1기6중전회)에서 나온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이하 역사결의)다. 이 문헌은 중국의 오늘이 있게 한 역사적인 문헌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8개 부문 38개항 약 3만자로 이뤄진 이 문건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였다. 마오쩌둥은 1976년 사망했으나 오랜 우상화작업으로 그를 숭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창업황제라는 신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나아가 그에 대한 평가를 잘못할 경우 국론이 분열되고 계파간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덩샤오핑은 신중했다. 그는 이를 위해 1년 전부터 9차례에 걸쳐 초안을 수정하는 노력을 보였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다. 잘한 게 70%이고, 못한 게 30%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밝혔다.

“마오쩌둥 동지의 오류에 대해 도가 지나치게 써서는 안 됩니다. 도를 넘게 되면 마오쩌둥 동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 당과 우리나라의 체면에도 먹칠을 하게 됩니다.”
‘역사결의’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문화대혁명이 한 세대의 발전에 지장을 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 세대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무정부주의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범람하게 됐고 사회기풍에 심각한 해를 끼쳤습니다.”

역사결의는 이렇게 평가하면서도 ‘문화대혁명’을 ‘문화쿠데타’로 개명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 같은 역사결의를 통해 중국은 갑론을박할 수 있는 분열요인도 잠재우고, 나아가 공산당과 나라의 체면도 살려냈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청문회에서 5.16을 쿠데타냐 혁명이냐의 양자택일로 물을 게 아니라 ‘공칠과삼’식으로 묻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나아가 국정교과서 문제로 다시 화두로 떠오른 친일에 대해서도 공칠과삼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국사를 수능필수과목으로 해놓고,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상태에서 5.16을 쿠데타냐 혁명이냐를 두고 고민해야 할 편찬위원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나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잠시 덮어두고 어물어물 넘어가는 호도학과 ‘공칠과삼’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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