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송두영 초대 한인회장과 코리아하우스
[Essay Garden] 송두영 초대 한인회장과 코리아하우스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12.0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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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자 본지 칼럼니스트

샌디에고(San Diego) 카운티 지도를 펼쳐놓으면 가운데 노란 자위 부분이 있다. 일찍이 중국인들이 건물을 대부분 구입했기에 아시아인들이 상가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한인들도 모여들어 작은 동네를 이룬 곳이다. 요즈음은 발보아(Balboa Ave) 길에서 북쪽의 큰길 클레어몬트(Clairemont Mesa Blvd)까지 뻗어가고 있다.

콘보이 길(Convoy St)에서 다겟 길(Dagget St) 바로 모퉁이에 서면 특별하게 눈길을 끌던 장소, 아름다운 청기와로 장식된 지붕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기다란 나무 조각 장승의 해학적인 얼굴이랑 섬세한 한국의 집 디자인으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주던 장소.

그 곳은 샌디에고 초대 한인회장 송두영(1927-1992년, 서울대 동양화 전공)씨가 건물의 일부를 빌려 1985년에 대대적인 공사를 마치고 역사적인 건물의 상징이었던 ‘Korea House’식당이다. 송 화백이 작고한 후 장남과 큰 딸 부부가 대를 이어가며 오랜 세월 운영하는 동안에도 한국의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반드시 들렀던 곳이다.

2000년 후반에 김 씨와 윤 씨로 주인이 바뀌었다. 최근 몇 년은 대장금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부부가 맛있는 한식으로 운영했는데, 금년 가을에 또 팔린 것으로 전해졌기에 이 글을 쓰기로 나는 결심했다. 식당을 이어 갈 새 주인이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지 몹시 궁금해서이다. 또 송두영 화백의 혼이 담긴 한국적인 장식품들이 역사 속으로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식당 벽의 창문이며 천장의 조각까지 사방에는 그의 동양화 작품이 걸려있었다. 한국을 결코 잊지 않는 그의 애국심과 정성이 들어간 내부는 작은 박물관 같았다. 우리 가족도 손님을 모시고 식사할 적이면 송화백이 얼마나 많이 서양인들에게 고국인 한국을 알리려고 애썼는지를 느끼곤 했다.

우측 내부에는 그분이 손수 한글로 쓴 붓글씨 ‘사랑방’ 간판이 걸려 있다. 고객들이 방석위에 양반 다리를 꼬고 앉아 앉은뱅이 식탁에서 밥을 먹어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놓은 방이다.

송화백의 이런 열정들은 김병목, 구두회, 필립안, 박원규, 이재덕, 작고한 한미부인회 여러분들과 샌디에고 이민 초창기 한인회를 결성하게 된다. 원로분과 당시의 한인들은 1972년 12월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YMCA 회관에서 최초로 한인회 모임을 열고 추대 받은 송두영 화백이 이끌며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한인사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40여년 여기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무영 관장도 자발적으로 돕고 모였던 한인회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한인잡지 주필 당시에 샌디에고 한인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한분인 김창송 사장(홍익대 미대 졸, 화랑 사업)은 화기애애했던 초창기 한인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지금처럼 한인 인구도 많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지원비까지 받아가며 다투지 않고 도움을 주던 시절이었다고.

여러분들이 송두영 화백은 유난히도 유머를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고 말한다. 나도 운이 좋게 송화백이 시주하여 샌디에고 최초의 사찰 불광사(1988년)를 세운 인연으로 종종 절에서 송화백 부부를 뵙곤 했다. 그는 중풍으로 불편한 거동이었지만 한인을 위한 모임이면 참석하시곤 했다. 자녀들도 잘 키워 막내 딸 수잔씨가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던 모습과 앤스니타스 집 방문이 나에게는 그분과 마지막이었다.

또, 한인 사회를 세운 동지이기도 한 김병목 의학박사(호흡기 전문의)의 부인 한화심 박사(산부인과 전공)와 경기여고 동창이기도 한 송화백의 부인 성의숙(87세)여사는 지금도 기억한다. 젊은 날 남편이 술을 좋아하여 송두영 화백의 집은 늘 저녁이면 한국인들로 붐볐다는 것이다. 또한 송화백 부부는 미국에 모셔 온 어머님을 극진히 모신 효자 효부로도 알려졌다.

당시의 한인회회장 자리는 아무것도 얻는 것도 없지만, 추대를 받으면 맡아 일했다. 1980년부터 샌디에고 살고 있는 이청환(1983년 전 한인회장)사장은 한 때 아무도 회장에 나서지 하려고 하지 않아 신문에 광고를 내보자는 제안도 있었노라고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한인회의 새로운 얼굴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한인회보 편집인 노X씨가 잡지 이름을 한인뉴스로 바꾸어 놓더니 한인회장을 하던 조X씨가 슬그머니 샀고, 다시 몇 년 후 잡지를 개인에게 팔아넘긴 일이었다.

최근에 지상으로도 거론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한인회 잡지에 두둑한 광고비가 수익을 올리며 부작용은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한인회장은 자동으로 평통위원이 되면서 봉사보다는 명예를 바라보는 자리로 변해갔다.

잘못되어가는 한인회를 잡아 보겠다며 전 한인회장 이재덕(연대 상대 졸)사장도 2006년 사비를 털어 새로운 잡지(People of San Diego)까지 만들고 애썼지만 계속되지 못했다. 1995년에 천 달러로 시작된 한인회 회장 후보 선거공탁금은 삼천달러로 오천달러에서 만 달러, 2013년엔 만 오천 달러 금년의 공탁금은 이 만 달러이고 무투표 당선이란다.

안타깝게도 수 십 년 동안 물심양면으로 한인회를 크게 도와왔던 구두회 사장의 갑작스런 별세에 이어 지난해는 한인회를 지켜보며 노파심으로 역사를 생생히 들려주던 전 한인회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했던 박원규(전 해병대 중령) 원로님도 세상을 떠났다.

왜 이리도 샌디에고 초대 한인회장이었던 송두영 화백님이 그리워질까. 만약 그분이 살아계시면 샌디에고에는 칭찬해줄 분들도 있지만, 야단맞을 사람들이 좀 있기 때문이다. 부디 새로 출범하는 단체장들이 초기 한인회처럼 순수한 애국심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해보련다.

최미자의 미주문학서재
http://mijumunhak.net/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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