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00] 승정원일기
[아! 대한민국-100] 승정원일기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5.12.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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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기록유산 가운데는 국가에서 기록한 거질(巨帙)의 역사기록물이 3개 포함되어 있다. 1997년 조선왕조실록이 처음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뒤를 이어 2001년에는 승정원일기가, 2011년에는 일성록(日省錄)이 등재된 것이다.

한 국가의 역사기록이 3종이나 등재된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3종 모두 조선시대 궁중의 기록이면서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소중한 역사자료이다.

특히 승정원일기는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기록해 남긴 그날그날의 일기이다. 정7품 주서(注書)가 하루 종일 임금을 시종하면서 국정 전반에 관한 보고와 임금의 명령, 임금과 신하의 대화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인조 때부터 순종 때까지 288년간의 기록으로 글자 수가 무려 2억 4천 3백여만 자에 달한다고 한다. 만약 승정원일기가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으로 소실되지 않았다면, 족히 두 배가 넘는 5억여 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25사(史)’는 중국 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것인데도 총4만여 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팔만대장경(5000여만 자) 조선왕조실록(5400만 자)와 비교해 보아도 승정원일기의 그 자세하고 방대한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승정원일기는 양도 양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역사현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임금과 신하가 경연에서 학문을 토론하는 장면, 내의원에서 임금을 진료하면서 문진(問診)하는 장면, 임금과 신하가 현안을 두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들을 보면 마치 그때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승정원일기는 상세하고 생생한 기록의 특성상 기록 그 자체로 수많은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말하자면 문화콘텐츠의 보고인 셈이다.

그러나 이명학 고전번역원장의 고백에 따르면 매우 안타깝게도 20여 년 동안 고전번역원에서 불철주야 번역해 왔지만, 번역된 승정원일기의 양은 고작 4천여만 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직 번역을 하지 못한 양이 2억 3백여만 자나 된다고 하니, 이대로라면 앞으로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야 승정원일기를 완역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가 인정한 기록유산을 그 나라 사람인 우리가 읽을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유산을 우리가 읽지도 못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 보기에도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부디 하루 속히 우리가 승정원일기를 자유롭게 읽고 널리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승정원일기의 내용이 모두 번역되어 일반 국민에게 읽혀진다면 우리의 역사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우리 한류 문화콘텐츠는 한결 다양성과 깊이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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