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동안의 일본 여행기
12일 동안의 일본 여행기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1.27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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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다고는 하지만 더운 날씨 탓인지 해가 바뀌었다는 실감을 하지 못한다. 달음박질하듯 동동거리며 지낸 한해였지만 지난 12월, 2주 앞당겨 가졌던 휴가 덕분에 일년을 보상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미련없이 짐가방 싸들고 훌훌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었던 참에 글로벌 여성컨퍼런스 참석이라는 보너스가 나에게 주어졌다.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는 광고 카피처럼 나 스스로에게 “여행을 즐겨라”는 멋진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여성컨퍼런스는 일본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오사카에서 열렸다. 일본의 다른 도시를 몇차례 여행한 경험이 있지만 오사카는 처음 가보는 도시라서 궁금증과 호기심에 마음이 설렜다. 오사카는 재일본 교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며 고베, 나라, 교토와 같은 역사적인 도시가 근교에 있어서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브리즈번에서 오사카까지 가는 직항이 없어서 케인즈에서 국내선과 국제선으로 바꿔 타며, 몇시간을 기다려야하는 번거로움을 겪기도 했다.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하고서부터 나홀로 여행의 어려움이 시작됐다. 예약해둔 호텔까지 바로 가는 셔틀버스가 없어서 급행기차(라피토)를 타고 호텔에서 가깝다는 난바역에서 내렸다.

서툰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묻고 또 물으며 힘들게 호텔을 찾았다. 일본인들의 친절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본 낯선 이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호텔 입구까지 동행해주었던 일본인 부부의 도움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먼저 도착해 있던 일행들이 나의 늦은 도착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은 도톤보리 거리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 늦은 밤이었지만 체크인을 하고는 곧바로 거리 탐험에 나섰다.

첫번째 여행-도톤보리 거리; 도톤보리강을 중심으로 강변 양편에 먹거리 상가가 형성돼 있었는데 본시 오사카는 식도락가의 천국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깃불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져 있는 도톤보리 강변에는 운치있는 나무다리가 강 양변을 연결하고 드문드문 놓여있는 나무벤치에는 연인들이 다정하게 앉아있었다. 수많은 포장마차와 늘어선 음식 간판은 식탐이 많은 나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먼저 그린티를 넣어서 만든 녹차국수를 먹고 낙지가 듬뿍 들어간 타코야끼를 먹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라면집과 오코나미야끼 식당 앞에 긴 줄을 서있어서 포기하고 다른 맛집을 찾아서 시식을 했다. 그 감칠맛은 오랫동안 입안에 남아있었다. 도톤보리의 쇼핑가를 걷다보면 한국말이 많이 들린다. 오사카는 한국과 지리적인 거리가 멀지 않아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쇼핑을 즐기러 온다고 했다.

두번째 여행-교토; 다음날 아침부터 서둘러서 교토로 가는 전철을 탔다. 이틀 동안 모든 라인의 전철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교통카드를 4,000엔에 사 불편함을 덜었다. 그리고 역마다 한글로 역 이름이 적혀있어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여행을 다니는지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인구 150만명인 교토는 1,0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으며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고, 첨단기술을 가진 산업도시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유네스코에 17개의 문화재 사원이 등록돼 있다고 했다. 12월 초였지만 날씨는 늦가을처럼 시원했고 하늘은 맑았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기요미즈데라절(청수사)에 들어서니 단풍나무가 산을 붉게 뒤덮고 있어서 경치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자들이 유난히 많이 절 경내를 걸어다녀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알고보니 타이완에서 단체여행을 온 아가씨들이어서 웃게 만들었다. 절 부근의 거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곳을 소개하고 싶다.

한곳은 자연산 화장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역사가 120년이나 되며 일본 전역에서도 아주 유명한 ‘요지’라는 일본 브랜드 화장품 회사로서 포장지에 전형적인 일본인의 얼굴이 그려진 상표가 인상적이었다. 점원의 안내로 테스트도 해보면서 처음 보는 상품들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순식물성인 곤약의 성분으로 만든 쯔야노타마(얼굴을 마사지하는 스펀지)를 방문 기념으로 샀다.

그리고 다른 한곳은, 일본 여행 중에서 가장 대박이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나의 미각을 흔들어 놓았던 식당으로서 청수사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모든 음식을 검은콩으로만 만들어서 파는 웰빙 건강식 식당이었다. 탁자가 5-6개 정도 놓여있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각 탁자 위에는 맷돌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점심으로 검은콩이 든 현미밥, 검은콩으로 만든 두부요리, 튀각, 미소국이 세트인 벤토와 디저트로 당고를 주문했다.

일인당 요금은 1,270엔. 어린 시절에 즐겨 사먹었던 당고를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던 참에 제대로 된 당고를 먹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석쇠 위에서 금방 구운 당고 꼬치와 볶은 검은콩을 한접시 갖다 주었다. 검은콩을 맷돌 안에 넣고 돌리면서 갈아져 나온 가루를 체에 걸러서 당고 위에 뿌려 먹는 것이 손님들이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먹는 방식이었다. 그 고소하고 찰진 당고의 맛은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발길을 서둘러서 전철을 갈아타고 교토의 대표적인 후시미 이나리타이샤 신사로 갔다. 이 신사는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탔으며, 장사의 번창과 오곡풍년의 신을 모신 신앙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신사 입구에는 한국의 홍살문을 연상시키는, 두 다리로 하늘을 받친 듯한 형상의 주홍색 토리이가 세워져 있었다.

정면으로는 절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됐고, 그 자태는 위엄이 있어 보였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 안에는 산기슭부터 약 4㎞에 걸쳐서 주홍색 기둥대문이 나란히 길게 세워져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그 주홍색 기둥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발복을 비는 마음을 담아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신사는 천년의 세월동안 일본인들의 순례길로서 사랑을 받아왔다고 했다. 교토를 방문하는 사람에겐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일행과 엇갈려서 토리이가 세워진 긴 길을 혼자서 2㎞ 넘게 걸었는데 오후 늦은 시간이라서 인적이 점차 드물어지니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초겨울 해는 아쉽게도 빨리 저물어서 입구에서 일행을 만나서 다시 전철을 타고 ‘오사카의 부엌’으로 불리는 쿠로몬 재래시장으로 갔다. 저녁식사를 할 장소를 찾고 있는데 생선구이 가게가 보였다. 삼치꼬치 한마리를 미소국을 곁들여서 주문하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국 사람임을 알고는 김치를 서비스로 주었다. 기무치의 맛을 처음으로 알게된 날이었다.

세번째 여행-나라; 기차를 타고 일본의 전통 도시인 나라를 찾아가 보았다. 일본의 옛 무사시대의 전통적인 건물을 상상하며 갔지만, 그 모습들을 제대로 다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지금의 나라시는 8세기경 일본의 중심도시였으며 오래된 역사만큼 유서 깊은 건물과 사적들이 많고 나라시대에는 신라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후쿠지(동대사)를 방문했을 때 경내에는 수많은 사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얻어먹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절 안의 많은 가게에서는 사슴 먹이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팔고 있어서 이색적으로 보였다. 반나절 정도 나라시를 구경하고 나서 기차를 바꿔 타고 다시 쿠로몬 재래시장을 찾아 싱싱한 생선회가 잔뜩 담긴 도시락을 사서 일본회의 맛을 제대로 즐겨보았다.

네번째 여행-오사카 한인타운; 오사카에는 재일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어서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라고 들었다. 전철을 타면 쉽게 찾을 수 있게 역 구내와 연결돼 있었다. 한국의 전형적인 재래시장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상당히 큰 규모의 상가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한복, 이불, 옷, 반찬가게 등과 한식 먹거리 가게들이 넘쳐나게 많았다.

입맛을 돋우는 떡볶이와 김치부침개, 김밥을 먹으면서 한국 음식의 맛깔스러움을 일본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함께 동행했던 일본인 지인도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게 먹었다. 일본 전철역 지하통로는 대체로 큰 지하 쇼핑센터와 연결되어 있었고, 구내에는 먹거리들을 만들어 파는 다양한 스낵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서 군것질을 즐기는 나에게 큰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쇼핑센터 내의 식품점에서 만들어 파는 깔끔한 도시락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만큼 맛깔난 음식들로 차 있었다.

다섯번째 여행-고베; 인구 150만명의 고베는 일본을 대표하는 항구도시이며 6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고베 여행의 꽃이라는 기타노 이진칸(외국인마을)에 먼저 가보았다. 문물개방을 일찍 시작한 나라답게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정착한 외국인마을이 지금은 관광지로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동화 속의 집처럼 예뻤다.

붉은 단풍나무가 집 앞이나 거리를 장식하고 있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츨 해내고 있었다. 힘들게 골목길을 오르내리고 돌면서 구경하다보면 휴식을 취 할 수 있는 작고 동그란 공연장(기타노초 광장)이 나타난다. 시간이 맞아서 마술사의 무료 공연을 볼 수가 있었다. 마법사가 그럴듯한 마술 공연을 보여준 후에는 모자에 동냥을 받는데, 동전을 집어넣던 내 눈에 큰 액수의 지폐들이 제법 보였다.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에 인기가 많은 마을이었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검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단체 여행을 와서 장난을 치며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한국의 70~80년대를 회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정말 재미있었던 풍경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이었기에 카페와 갤러리의 지붕 위나 창문에 각양각색의 산타 할아버지 인형을 매달아 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고베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에 이쿠타 신사가 있다. 오후에는 비가 조금씩 흩뿌렸지만 연애와 인연의 신을 모신 신사로 유명한 (고베 산노미야에 위치) 이쿠타 신사에 갔었다. 유난히 젊은 커플들이 많았으며, 신사에서 기도를 올리면 에너지가 충전되고 애정운이 트이며 짝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젊은 커플들이 즐겨 찾는 신사로 알려져 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이룰 사랑이 없기도 해서 눈요기만 실컷 하고 다음 코스로 발길을 돌렸다.

고베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장소로, 외국인 마을에서 택시로 20여분 거리의 고베 포트가 있다. 고베 항구의 야경은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메리켄 파크는 고베 야경을 구경하기에 가장 멋지고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이크몰을 지나서 항구로 나가면 오른편에 고베 항구 타워가 아름다운 조명을 뽐내며 우뚝 솟아 있고, 곁에는 관람차가 휘황찬란한 빛을 뿜으며 돌고 있었다.

바다 건너편에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인 오리엔탈호텔이 역시 조명을 빛내며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타워가 마주보이는 곳에 보라색 하트 모양의 사진 스폿이 있어서 두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기념사진을 한컷 찍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식당들이 음식모형을 유리관 안에 전시했는데, 입안에서 저절로 침이 고였다. 여행의 큰 즐거움은 보는 것과 함께 각 지방의 특색에 따른 음식을 맛보는 식도락에도 있다.

간사이 지역(관서지방)은 오랫동안 일본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였다. 그 지역의 중심 역할을 했던 네 도시,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시를 짧은 시간 동안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녔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가며 나름대로의 작은 탐험을 성공적으로 성취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보았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서 진정한 일본,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통적인 일본 가옥이 있는 전형적인 일본을 보고싶어서 시골 외곽 지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여섯번째 여행-후쿠이; 일본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한국어선생인 J 위원이 사는 후쿠이라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사람 좋은 J 위원은 자기가 사는 곳은 일본의 전형적인 시골같은 분위기라면서 고맙게도 나의 여행길 가이드를 자청해주었다. 인복이 많은 나의 운세를 스스로 축복하면서 후쿠이로 향하는 초특급열차 천둥새(Thunder Bird)를 타기로 했다. 오사카역에서 2시간 정도 쾌속으로 질주하는 기차를 타고 후쿠이역에 도착하면 J 선생이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있었다. 컨퍼런스 휴식시간에 둘이서 미리 계획을 세웠지만 몹시 설레고 흥분이 되었다. 후쿠이현은 혼슈섬의 한 지역이며 동해에 가까운 중서부에 위치해 있다. 일본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며, 게, 온천욕, 세계 3대 공룡박물관 중 하나인 후쿠이현립공룡박물관 가쓰야마시로 유명하다는 정보를 J 선생이 미리 귀띔을 해주었다.

 

후쿠이역에 내리니 하얀색 의사 가운을 걸친 큰 공룡 동상이 역 벤치에 앉아서 여행객들에게 악수를 하듯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후쿠이역 대합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J 선생과 반가운 포옹을 나눈 후 대합실 코너에 있는 작은 국수집에서 점심으로 튀김우동을 먹었다. 후쿠이의 명물 국수집이라는 조그만 국수가게에는 할머니 몇분이 바쁘게 국수를 팔고 있었는데, 모든 손님들이 서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손맛인 국물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오사카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갔을 때도 그 맛을 잊지 못해 한번 더 사먹었다.

후쿠이역에서 한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가나자와시의 중심부에 있는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켄로쿠엔을 방문했다. 이곳은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사계절 내내 꽃과 나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호수와 정자들이 있고 특이한 모양의 나무들과 색색의 꽃들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일본식 정원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정자에 앉아서 녹차와 과자를 주문하고 자연이 주는 느긋한 평온을 즐겼다. 온천욕을 할 수 있는 료칸에 짐을 풀고 자정이 넘는 시간에 큰 욕탕에서 철철 넘치는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온전한 행복감을 느꼈다. 아침에는 작은 노천탕에서 하늘을 보며 나에게 주어진 행운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기도를 바치기도 했다.

일곱번째 여행-에이헤이지(영평사)와 에치젠 대나무 인형공방; 영평사는 도원선사가 760년 전에 좌선수행을 목적으로 세운 절이다. 일본의 다른 절들과 차별화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 외부의 수목 림이 깊고 수려하며 무척 아름다웠다. 본당 입구에는 일본 천황이나 대본산의 주지만이 들어갈수 있는 계단길이 있는데, 일반 사람들은 출입을 할 수 없는 엄숙한 지역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절 입구에 있는 연못 위에는 부처상과 큰 두꺼비 동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신비한 전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을 벗고 경건한 자세로 절 경내에 들어가면 안내하는 젊은 남자 승려가 절의 역사와 건물 구조,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경내를 구경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옆에 앉아있는 J 선생이 통역을 해주어서 이해가 되었다. 특별히 물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욕실수행을 중요시한다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본채와 붙어있는 여러 방들과 대웅전을 보니 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 탓인지 어두운 느낌이 들어서 분위기가 무거워 보였다. 선승들의 영상을 보는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영평사로 발길을 향했다.

 

영평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본에서 유명한 대나무 인형 공방이 있다. 영평사에서 30분쯤 차를 타고 가니 에치젠 대나무 인형 공방의 반듯한 건물이 보였다. 바깥 건물은 깨끗한 현대식 건물이었으며, 외곽지역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나무 인형을 만드는 공방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늦은 오후 시간이었지만 관광버스들이 여러대 드나들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된 대나무 인형들은 대부분 일본의 전통 무사나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의 모습이었고, 동물 인형들도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져 있어서 일본 장인들의 섬세하고 정교한 손재주에 감탄할 뿐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공방을 견학할 수 있었는데, 견학하는 사람이 나와 J 선생 둘뿐이어서 기술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십수명의 기술자들이 파트를 나누어서 대나무 인형을 제작하는 과정을 제대로 천천히 볼 수 있었다.

50대 중반의 한 장인은 대나무 인형을 만드는 일만 30년 넘게 해왔다면서 노장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한개의 대나무로 만든 기모노를 입은 소녀 인형을 보여주었는데, 가격을 매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형의 머리카락을 만드는 공정을 지켜보니 가는 칼로 대나무를 1㎜ 가늘기로 섬세하게 한올 한올 자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본드로 머리카락을 머리에 붙이든지 또는 아주 작은 구멍을 만들어서 거기에 집어넣기도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공방 안에 전시된 대나무 인형 작품들은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들이었다. 나는 너무나 뛰어난 장인들의 손공예 솜씨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나는 대나무 고양이 인형 두마리를 기념으로 샀다. 그리고 공방 안에서 우연히 한국인 여성 숙련공을 만났는데, 한국말이 들려서 너무 반가웠다면서 바깥까지 따라나오며 배웅해주었다.

여덟번째 여행-후쿠이 현립박물관과 한류를 실감한 한국어 클라스; 공룡박물관은 2007년, 후쿠이에서 공룡의 전신 골격을 비롯한 수많은 화석이 발견돼서 설립된 일본 최대의 공룡박물관이며, 세계 3대 공룡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 시내에서 한시간 거리의 산 중턱에 있었다. 입구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공룡박사가 손님맞이를 하며 벤치에 앉아있어서, 박사의 어깨에 기대어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 늦은 오후 시간이 되니 쌀쌀한 초겨울 날씨로 변해서 몸을 움츠리며 으스스한 분위기의 공룡전시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입구에서 500엔을 내고 한국어 설명이 녹음된 헤드폰을 빌려서 지하층부터 내려갔다.

일본인들의 로봇 만드는 기술이 세계 수준임을 공룡 로봇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1억2,000만년 전에 살았던 공룡 로봇을 완벽하게 재생시켜서 소리를 지르며 움직이도록 만들었는데, 진짜 같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각 전시실마다 공룡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모형을 전시해놓고 진짜 화석과 가짜 모형을 구별하는 방법도 적혀있었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공룡시대의 방에서는 나 자신이 공룡들이 사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공룡이 벽에서 튀어나와서 나를 공격할 것 같은 세밀한 영상이 펼쳐져 있었다. 한 섹션에서는 오른쪽 벽 화면에서 보이던 육식공룡들이 왼쪽 벽에서 긴 목을 늘이고 나뭇잎을 따먹던 초식공룡들에게 갑자기 덤벼드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영상이동은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기막힌 기술이라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3층으로 설계된 공룡박물관을 겨우 몇시간 만에 다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산타옷을 입은 아기공룡 동상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J 선생을 따라서 두번의 한국어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지방 신문사와 케이블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는 중년의 일본인 학생들 클래스였다. 호주에서 온 한국인 여선생이 수업을 참관한다는 소식에 출석율이 100%가 되었고, 점심 대접에 푸짐한 티파티까지 환대를 받았다. 나에게 한국어로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성의껏 대답하며 그들의 한국어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다. “왜 한국어를 배우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으로 한국 드라마와 음악, 한류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수차례 한국을 방문한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중년의 학생들이 귀엽고 재미있었다. 공책마다 이병헌의 사진을 붙인 70대 할머니, 가수 박유천과 준수의 노래를 좋아해서 운전하며 시디를 틀어놓고 항상 따라 부른다고 수줍게 고백하던 그녀들. 수업시간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재미난 한국어 수업, 즐겁게 가르치는 J 선생. 내가 한국인이어서 자랑스러웠던 그 수업시간을, 그 사람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학생들 중에서 전통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제대로 된 일본 전통음식을 코스별로 먹어보았고, 오코나미야키를 철판에 직접 구워 먹으면서 일본의 음식문화를 마음껏 즐겼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학생들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2일간의 일본 여행은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얻었던 온전한 내 시간들이었다. 올해는 일어 공부를 해보기로 새해 목표를 세워보았다.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람을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 ‘About time’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지쳐가는 몸과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여행은 최고의 힐링이다! 그래서 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여행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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