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둑 이야기(3)
[기고] 바둑 이야기(3)
  • 김창남<해외편집위원>
  • 승인 2016.04.0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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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실전기보는 200년께 오(吳)나라의 장수 손책(孫策)과 여범(呂範)이 두었다는 기보로, 송나라 때의 바둑고전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 실려 있다. 당·송 시대에는 바둑이 상당히 융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기보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金玉均)이 일본 망명 시절인 1886년 일본의 본인방 슈에이(秀榮)과 두었던 6점 접바둑이다. 이 기보는 1992년 바둑서지학자 안영이씨에 의해 일본에서 발견된 바 있다. 사실 한국 바둑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됐지만, 문서화하는 일에 소홀했던 탓에 더 오래된 기보가 남아있지 못한 점은 중세 때부터의 바둑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일본의 경우와 비교할 때 아쉬운 일이다.

고대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 한국과 일본에 전파돼 일부 상류층 사이에서만 행해지던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게임의 토대를 갖추게 된 것은 중세 일본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막부(幕府) 시대에 바둑은 국기(國技)로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바둑을 업(業)으로 삼는 기사(棋士) 제도와 본인방(本因坊) 등의 바둑 가문이 생기고, 이들에 의해 룰이 정비되며 각종 이론, 정석이 태어나는 등 비로소 근대경기로서의 틀과 체계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가문세습 제도 대신 협회(일본기원)와 프로제도가 탄생하고, 신문사들이 기전의 스폰서로 나서면서 오늘날 현대바둑의 틀을 갖추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현재의 바둑과는 달리 돌들을 미리 배치하고 두는 고유의 순장(巡將)바둑이 20세기 초반까지 성행했는데, 현대바둑이 도입된 것은 해방 후 일본에 바둑 유학을 다녀온 조남철 9단에 의해서다. 특히 현대바둑 보급에 일생을 바친 조남철 9단의 선구적 노력에 힘입어 당시까지만 해도 한량들의 잡기 취급을 받던 바둑이 오늘날 본격적인 정신스포츠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르렀다.

고등고시보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프로 바둑기사가 될수 있다. 또 프로기사 중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과 일본의 조치훈은 모두 상금 액수만 100억원을 넘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딥 마인드 대표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이겼다.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고 했을 때 얼른 그 의미를 짚어내지 못했다. 1969년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사람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 될 것이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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