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격세지감
[안영수의 문화칼럼] 격세지감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05.1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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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필자는 모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연속으로 방영했던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그리고 ‘꽃보다 청춘’ 등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안방에 앉아서 가보지 못한 세계적인 명소를 볼 수 있다는 기쁨 못지않게 유명 탤런트들이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 심심치 않게 한국의 젊은이들과 조우하는 장면들이 부럽고 신기했다. 그들은 적게는 한 달, 길게는 일 년 동안을 세계여행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숙소를 예약하고 식당에 가서도 기죽지 않고 손짓 발짓해가며 영어 단어 몇 개만 늘어놓아도 원하는 음식을 주문해 먹는 것이었다. 그들의 당당함이 40년 전 나의 소심하고 촌스러웠던 유학 생활과 대조되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1975년 나는 근무하던 대학의 추천을 받아서 자매학교인 벨기에 루벤대학교(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로 유학을 떠났다. 영문학 전공자가 비영어권으로 유학 간다는 게 내심 걱정되었지만 파격적인 장학금과 학교에서는 영어만 통용된다기에 별 걱정하지 않고 수속을 밟았다. 루벤대학교는 1425년에 창립된 철학과 신학이 유명한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다. 바쁘게 유학 준비 하느라고 벨기에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었다. 당시에는 항로도 멀어 홍콩, 태국, 테헤란을 거쳐 장장 스무 시간 넘게 비행기를 갈아타고 브뤼셀에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은 흡사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진 기분이었다.

막막함의 원인은 언어 장벽 때문이었다. 사람들마다 말이 달랐다. 먼저 유학 가 있던 한국 유학생을 통해 우리나라 경상도 넓이의 벨기에가 언어 때문에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지역에 따라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그리고 독일어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기 등록을 마치고 첫 강의 시간에 받은 실러버스를 읽고는 더 막막해졌다. 참고 문헌으로 나온 서적들이 영어 외에 불어, 독어, 네덜란드어뿐만 아니라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있었다. 이 나라는 언어의 전시장이었다. 나는 언어 콤플렉스 때문에 강의를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영어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소통이 되어 불편하지 않았지만 캠퍼스 밖으로 나오면 나는 장님이 되고 벙어리가 되었다. 네덜란드어로 된 간판을 읽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떼어놓고 혼자 가서 돌 지난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매일 편지를 썼는데, 우체국에 가서 어떤 창구로 가야하는지 물어볼 수가 없어서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생필품을 사는데도 싱싱하고 값이 싼 금요시장을 가지 못하고 말이 필요 없는 마트에서 구입했다.

언어는 물론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공휴일이 언제인지 알려주지 않아 연휴가 시작되면 기숙사에서 쫄쫄 굶어야 했다. 한 번은 모교에 교환교수로 왔던 벨기에 국왕의 주치의라는 유명한 교수댁에 유학생 몇이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었다. 우리는 으리으리한 저택의 규모와 지하에 있는 와인 셀러에 셀 수도 없이 많이 저장된 포도주를 보면서 침을 삼키며 푸짐한 저녁 식사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본 일행은 기가 막혔다. 미국식 디너를 기대하고 간 것인데 식탁에는 몇 가지의 치즈와 샐러드 그리고 딱딱한 빵 뿐이었다. 그 나라에서는 저녁에는 찬 음식을 먹고 점심 때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3개월이나 되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외국인을 위한 Flemish course에 등록하였다. 그리고 인사하기, 장보기 등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문장들을 달달 외웠다. 10월 학기가 시작되어 학생들과 교수들을 만나 인사말이라도 나누게 되니 모두 놀라고 반색을 하였다. 특히 냉담했던 지도교수의 태도가 훨씬 친절해졌다. 그 나라 말을 조금이라도 알아들으니까 자신감이 생겨 생활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모교의 교수가 되어 맡은 업무 중의 하나가 KIST 연수생으로 온 외국인들의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나는 유학 중에 힘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이 한국 생활에 필요한 한국어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교재를 직접 만들어 가르쳤다. 공휴일이 언제인지부터 그들이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경험이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어야말로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라는 신념으로 1997년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과정을 만들어 한국어 석사 출신만을 강사로 채용했다. 때마침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일본에서 불같이 일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강생들이 늘어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있다. 외국에 가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나라의 말을 익히고 그곳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 하더라도 현지어를 알아야 그곳 주민들과 소통이 원활해져서 살기가 편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을 순방할 때마다 현지어를 몇 마디씩 스피치에 넣는 것도 그 나라 국민들과 소통하고 친밀감을 높이려는 의도일 것이다.

요즘 언론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리고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위 K-pop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국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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