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용서, 사랑 그리고 화해
[해외기고] 용서, 사랑 그리고 화해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7.02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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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스산한 바람 소리, 흩뿌리는 비와 함께 겨울이 찾아드는 신호를 받고 있다. 살갗을 스치는 찬 기운에 마음마저 스산하게 되니 을씨년스런 계절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이럴 땐 따뜻한 온돌방에 엎드려서 땅콩을 씹으며 소설책이라도 읽어야 제격일 것 같은 아쉬움이 생긴다. 고소한 땅콩 맛 같은 정겨운 얘기라도 풀어놓는다면 한국의 늦가을 같은 이곳의 겨울 날씨쯤은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래 전에 호주신부님이 집전했던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들었던 강론이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두 원주민(Aborigine)의 각각 다른 실화는 이 겨울을 따스하게 지낼 수 있는 작은 불쏘시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월터신부님은 오랫동안 재소자들을 위한 사목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들(Aborigines)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보살폈다고 하셨다.

첫 번째 이야기: 브리즈번의 다턴파크(Dutton Park)라는 지역에 교도소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장소가 다른 용도로 변형되어서 교도소 건물은 역사의 유물로서 그 흔적이 남아있고 새로운 건물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교도소가 있던 시절, 그 곳의 한 작은 감방에는 젊은 애보리진 남자 죄수 한 명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 감방의 창문 한 쪽은 기차 철길을 가운데로 해서 낮은 언덕과 마주하고 있는 위치였다. 매일 오후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 언덕에는 젊은 죄수의 연인이 찾아와서 손을 흔들며 서로 사랑의 신호를 보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감방의 죄수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사건을 겪게 되었다. 오후의 그 시간에 자기 연인이 창문을 향해서 손을 흔들며 들리지 않는 사랑의 소리를 열심히 전하고 있었다. 그때 연인의 등 뒤로 낯선 남자가 칼을 들고 그녀를 찌르려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죄수는 애타게 위험 신호를 보냈으나 그녀는 감방안의 애인이 애달픈 사랑의 몸짓을 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더욱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기차가 시야를 가리며 숨 가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 지난 후 젊은 죄수는 감옥의 창살을 붙든 채 눈물을 흘리며 땅에 쓰러진 연인의 이름만 애타게 부를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통에 찬 며칠이 지난 후, 그 죄수는 우연히 자기의 연인을 죽인 살인범이 같은 감옥에 오게 된 것을 알고 면회를 신청하였다.

그 젊은 죄수는 살인범의 두 손을 잡고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면 좋겠소, 나는 이미 당신을 용서했어요. 당신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분노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고통은 이미 다 겪었으니 복수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연인은 내가 회개하고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철길 언덕에 와서 손을 흔들어주며 삶의 용기를 주었어요. 이제부터는 내 연인이 나에게 주었던 그 사랑을 당신에게 돌려 주려고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존이라고 불리는 나이 많은 한 애보리진 죄수는 감옥 뒤뜰에 있는 장미 밭을 열심히 가꾸며, 장미 향기를 감옥 내에 풍기도록 자기의 정성을 다 하고 있었다. 장미 뜰로 향하는 문은 바깥세상과도 통하게 되어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탈출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그의 작은 방 벽에는 십자가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는 다른 죄수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해 주며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다른 죄수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존경하며 따르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죄수가 그에게 물었다. “저 벽에 걸린 나무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거기에 못 박힌 저 사람은 왜 그렇게 심한 형벌을 받았나요.” 존은 밝게 미소 지으며,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이렇게 감옥에서 지내지만, 저 분은 죄도 없이 우리의 죄 때문에 저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을 받는답니다. 그 분의 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속죄함으로써 참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라고 그 죄수를 위로 해주었다. 그의 사랑에 찬 보살핌과 장미향기 같은 부드러움은 많은 죄수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어느 여름날, 장미꽃 향기가 짙어져 갈 무렵 늙은 애보리진 죄수는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존이 원하던 하늘나라로 간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속에서 뜨거운 응어리 하나가 솟구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순간씩은 교만해지고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자유를 잃은 감옥 속에서도 바깥세상의 위선적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의 길을 걸어갔던 두 애보리진의 얘기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애보리진의 독특한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호주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아직도 애보리진들의(Aborigine) 토지 소유권 반환논쟁이 호주 정국에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호주 애보리진은 종족의 호전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토지 소유권 및 정치적 권한을 지켜온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Maori)족과는 많이 다른 종족이다. 호주 원주민들이 토지와 정치적 사회적 권한의 대부분을 백인들에게 빼앗긴 이유는 그들 특유의 친절함을 교묘하고 잔인하게 백인들이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애보리진의 용서와 사랑의 친절함을 영악스럽게 이용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 애보리진(Aborigin): 호주의 토착 원주민을 말하며 백인들이 정착하기 4만 년 전부터 호주 땅에 거주해왔던 호주 땅의 진짜 주인이다. 호주의 첫 정착자들은 백인이라고 써진 호주 헌법도 바른 역사의식에 따라 개정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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