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과거를 잊지 마세요”
[안영수의 문화칼럼] “과거를 잊지 마세요”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07.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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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지난주 6.25전쟁 66주년이라고 언론에서 여러 특집을 방송하고 기사화했다. 필자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아직도 온 몸으로 겪었던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많은 젊은이들은 6.25전쟁의 의미와 후유증이 어떠하였는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니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청소년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외국의 노인들이나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아직도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분단된 조국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더 많이 그 전쟁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작년에 외국인 특강을 위해서 유튜브를 검색하던 중 어느 파독 광부가 6.25전쟁 직후 1950년대의 사진들을 모아 만든 동영상을 보고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고생했던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라서 울컥했다. 나만 불행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남한 국민의 절반은 부모나 자식을 전쟁 중에 잃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기반시설을 비롯하여 많은 학교 시설이 70% 이상 파괴되어 우리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들판에서, 겨울에는 농가를 빌려 공부를 했다. 텔레비전에서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나 남수단의 어린이들을 보면 전쟁 직후의 우리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노인이 되면 지켜야 할 일곱 가지 계명(seven ups) 중에 젊은이들에게 지나온 얘기를 되풀이 하지 말라(shut up)는 충고가 있다. 그러나 6.25전쟁에 관한 얘기를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일은 아무리 여러 번 되풀이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직접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내 자식들에게 내가 얼마나 배를 곯았는지, 입을 것이 없어 얼마나 추웠는지, 그리고 연탄 살 돈이 없어 방안의 걸레가 꽁꽁 얼고, 물에 젖은 연탄을 피웠다가 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뻔 했다는 얘기를 해도 그냥 건성으로 흘려듣는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6.25전쟁을 통해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항상 “만일을 위해 비축하라”(Be ready for a rainy day)는 좌우명이 자리 잡고 있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쓴 티슈도 재활용을 위해서 가방에 넣는다. 백화점에 쇼핑도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다 상품권이 생겨도 정장 한 벌 구입할 배짱이 없어서 세일 매장을 둘러보다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 대신에 재래시장에 배낭을 메고 가거나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본다. 평생을 쓰고 있는 일기장에는 그 날의 지출 내역이 꼼꼼히 적혀 있어 30년 전 오늘 무엇을 얼마에 샀는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늙은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조국의 분단 상황에 무감각하고, 의식주가 풍족해서인지는 몰라도 과소비에 길들여진 듯한 생활 습관이 불만이다. 지하철 화장실 벽에 걸린 휴지를 셀 수 없을 만큼 손으로 둘둘 감고 볼 일을 보는 여학생들을 보면 자기네 집에서도 그렇게 낭비하는지 묻고 싶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주부들은 일주일에 서 너 번은 피자나 치맥을 주문하고, 어떤 주부는 한 달 치 반찬값을 미리 지불하고 매일 배달해온 반찬으로 밥상을 차린다고 한다. 주말이면 놀러가는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명절 연휴에는 외국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천공항이 인산인해가 된다. 신문에서는 서민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들인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저축보다는 당장 먹고, 쓰고, 여행하고, 즐기고 보자는 소위 카르페 디엠(Carpe Diem) 풍조가 대세이다. 그래서 90년 이후 저축률이 OECD 국가들 중에서 하위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도 없고,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상존하고, 분단을 초래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급성장했다고 치켜세우는 선진국들의 사탕발림에 안주하기에는 우리의 안보와 경제 상황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80년대의 경제적 급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소위 베이비붐 세대는 고령화되었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대기업에서만 일자리를 찾고 소위 3D업종이나 중소기업에는 가기를 꺼리다가 취업의 기회를 놓치고 ‘N포세대’라고 자조에 빠져 있다.

끔찍했던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60여 년 동안 갖은 고생 끝에 좋은 아파트에서 외국산 자동차를 몰며 잘 살게 된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들에게 좋은 음식, 좋은 옷을 먹이고 입히며 비싼 과외를 시켜 좋은 학교에 보내어 부러울 것 없이 키웠다. 그 결과로 요즘 우리 자식들은 배고픈 게 어떤 건지 모른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예전에는 먹을 게 없어서 많이 굶었다고 말했더니 왜 라면을 먹지 그랬느냐고 반문하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젊은이들의 과소비 습관은 부모세대인 우리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안보정신과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길러주었어야 했다. 아니 그보다도 분단된 한반도의 엄혹한 현실을 거듭 깨우쳐주어야 했다.

한반도가 통일되는 그 날까지는 전쟁의 기억을 잊으려 해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굴곡진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어렸을 때 허기를 달래려고 길거리를 배회할 때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당시 유행하던 나 애심의 노랫말이 새삼스레 생각난다. “한 많고 설음 많은 과거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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