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아, 옛날이여!”
[안영수의 문화칼럼] “아, 옛날이여!”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07.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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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필자는 1979년부터 20여 년 동안 한국에 연수를 받으러 온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강의 첫머리에는 반드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 세기에 걸쳐 외세의 침입을 받았고, 그 까닭에 19세기 조선시대에는 외국과의 교류를 단절한 쇄국정책으로 ‘은둔의 나라’(Hermit Kingdom)라고 서양에 알려졌다는 사실과 지금도 2차 세계대전 후 열강이 만들어 놓은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 다음에는 단군신화로부터 반만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는 사실과 유교 문화 전통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즉 전통적 가치와 현대 문화가 균형을 이룬(blended culture) 독특한 국가라고 자랑(?)했다.

한국인의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유교문화의 장점으로는 ‘삼강오륜’을 말했다. 이 도덕의 골자는 부모와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즉 임금, 스승, 아버지를 하늘처럼 충의와 효로서 모셔야 한다. 그리고 혈연을 중시하는 조상숭배 사상과 개인보다는 집단의식이 강한 민족이어서 학교나 직장에서조차 ‘가족’이라는 단어를 부쳐 ‘xx 가족’이라 부르고 우리말에서도 ‘내 아들’, ‘내 엄마’가 아닌 ‘우리 아들’, ‘우리 엄마’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반면에 유교문화의 단점으로는 사회 전반에 만연된 서열의식과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했다. 한국인들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서열을 매겨 줄 세우는 풍조가 있어 무엇이든지 서열을 따지는 습성이 있다. 타인을 만나도 서슴없이 상대방의 나이를 물어 서열을 매긴다. 그리고 남성우월주의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으며 이의 극치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예로 들었다. 즉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라는 의미였다고. 여자는 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결혼한 여자는 그 집안의 혈통을 이을 아들을 낳아줄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만약 필자가 2016년에 위와 같은 내용의 한국 문화를 강의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돌팔매는 맞지 않아도 시대착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강사로 낙인이 찍혀 바로 퇴출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 패턴이 변해도 너무 변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나라는 다민족(인종)사회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국내에는 130만 명의 외국인 거주자와 21만 가구의 다문화 가정이 있다는 통계이다.(Naver 지식백과) 그러니 20년 전에 필자가 소개했던 단일민족이란 말은 구시대적인 표현이고, 신·구 문화가 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자랑도 이제는 허구가 되고 말았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시대를 거쳐 지금은 디지털 시대의 첨병을 걷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전통적인 가치가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외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부모를 공경하던 ‘효도 문화’는 온데 간 데가 없다. 매일 노인 학대사건이 보도된다.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1,905건으로 2014년에 비해 12.6%나 증가했다. 노인 학대의 85.8%가 가정에서 일어나고 주로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등에 의해 행해지는 패륜 범죄라고 한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미풍양속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내가 어렸을 때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는데 요즘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학생들은 교사보다 학원 강사를 더 존경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공교육 교사들조차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소위 SKY대학에 합격시키느냐에 의해 학교의 서열이 정해지는 까닭에 학생들의 인성교육에는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

셋째, 우리 가정과 사회의 구심점을 이루던 ‘집단의식’은 또 어떻게 변했는가? 며칠 전 KBS 뉴스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혼자 밥 먹고, 혼자 노는 ‘혼밥족’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 500만이 넘어서 편의점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락과 일용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 자녀 많아야 두 자녀 집안에서 태어나 혼자 생활하는데 익숙해져서 오히려 낯선 사람과 새로운 대인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을 즐기고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우리 세대와 얼마나 다른가? 필자가 어렸을 때는 어느 집이나 2대 내지 3대가 함께 대가족을 이루어 서로 부대끼며 살았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개인의 행복 추구보다는 직장에 헌신하는 게 우선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 관계망(social networking)’ 형성이 필요하다. 창조적 행위를 제외하고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 관계망’을 형성해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공공질서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우울증이나 조현병(정신 및 행동장애)을 앓고 있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는 이러한 사회 관계망 형성에 실패한 경우일 것이다.

나는 사회학자도, 문화인류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사회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것 같다. 몇 백 년 동안 전통적인 가치로 여겨지던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집단의식을 강조하던’ 문화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학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이선희의 노랫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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