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순의 트랜스문도-2] 화를 낼 줄 모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박채순의 트랜스문도-2] 화를 낼 줄 모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 박채순<정치학 박사·존에프케네디 대학>
  • 승인 2016.07.27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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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아르헨티나 무관을 역임했던 현지인 친구 에드와르도 가네아우(Eduardo Ganeau) 교수가 공항으로 환송 인사를 나온다고 한다. 외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내가 한국을 가게 되면 오랫동안 만나 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지난해 강의 차 살타주 카톨릭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비행기 출발 45분 전에 국내 공항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늦었다고 탑승을 허락해 주지 않아서 다음 비행기로 가게 된 경험이 있다. 항공권을 재발급 받아 비용을 많이 쓴 것은 물론, 대학 측을 초조하게 기다리게 했다.

이번에는 에두와르도와의 약속도 있고 지난 경험도 있고 해서 비행기 출발 1시간 40분 전인 7시10분경에 호르헤뉴베리(Aeroparque Jorge Newbery) 공항에 도착했다. 보딩 패스를 발급받고 여행용 가방을 부친 다음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 남미크리스찬 신문 발행인인 임명식 장로가 이번 여행에 많은 관심을 주셨다. 임 장로의 부탁으로 후후이 공항으로 후후이 제일학교 책임을 맡고 계신 김성엽 목사가 11시경에 도착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 뉴베리호르헤 공항에서 에두아르도와 김병준씨 가족과 함께.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비행기가 출발하는 기색이 없고 아무 안내 방송도 없었다. 10시가 넘어서야 기내 방송을 통해서, 관제탑에 문제가 있어서 비행기가 이륙을 할 수 없으니, 비행기를 내려서 각자 짐을 찾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후후이 행 비행기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고, 국내 공항의 모든 비행기 취항이 취소되거나 시간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방송이다.

마침 공항에서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다가 미국 로스엔젤레스 부근으로 재이주하여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시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김병준씨의 부인 이혜원씨와 태경과 은비 두 아이를 만났다. 그 가족도 후후이의 제일학교 김성엽 목사를 만난다고 한다.

결국 우리 비행기는 오전 8시55분에서 오후 5시45분으로 출발이 재 조정됐고, 그것도 6시경에야 이룩할 수 있었다. 장장 9시간이 지연되었고 11시간을 공항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항공사나 관제사 직원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 동행하게 된 김병준씨 아내 이혜원씨와 자제 태경(Agustin)과 은비(Priscilla).
한편으로 신기하고 한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경우에도 누구 하나 항의를 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주위사람들에 항의에 동조할 것을 은연중에 부추겼으나,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Para que?), 또는 무슨 방법이 있느냐(No hay manera)고 말한다.

난 적어도 점심을 꼬박 넘겼으니, 점심 식사 값이라도 보상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는데, 항공사 직원들은 항공기 책임이 아니고 관제탑 문제라는 쉬운 답변을 한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항의는 물론 피해 보상 해달라고 큰 소리를 치지 않았을까.

한국인과 아르헨티나인의 다른 성격이 국가 발전과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 글을 쓰는 8일 오후에는 살타에서 탄 고속버스가 1시간 20분을 주행하다가 허허 벌판 길가에 멈추었다. 호스 하나가 고장이 나서 그걸 고치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아무리 고속버스라도 주위에 인가가 많이 있고, 신속한 처리를 할 수 있는 데, 여기는 그야말로 허허 벌판에서 어떤 조치를 하기가 매우 힘들다. 몇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다른 차를 타고 간다고 하면서도 역시 불평한마디 없다.

▲ 11시간을 기다린 끝에 두 번째 비행기를 타고.
나는 오후 6시까지 산 미겔 수도에 가서 7월9일에 있을 아르헨티나 독립 200주년 기념식 취재를 위한 출입증을 찾아야 한다. 정상적으로 도착했으면,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결국 차를 고치는 데 2시간 이상이 소용돼 결국 8시 가까이 돼서야 뚜꾸만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북쪽 지방에서는 핸드폰 전화기도 송·수신이 매우 어렵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5시에 마중 나온 한국인 친구 조각가 서원장씨는 3시간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기다렸고, 일정이 바쁜 국회의원 호세 오래자나(Jose Orellana)는 자기 지역 행사 때문에 돌아 가버리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에 오래 살면서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철저하게 미리 준비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늘 생각을 한국에 매달고 있으니 이런 낭패를 당한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이것을 가지고 따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도 잘 견디면서 생활한다. 대국의 기질인가? 참 신기한 일이다.

필자소개
정치학 박사·존에프케네디 대학, 국립 라플라타대학교 KF 객원 교수
아르헨티나 외신기자협회 소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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