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감동의 편지 한 통
[Essay Garden] 감동의 편지 한 통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6.08.03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체통이 쓸쓸한 요즈음인데 단정하게 주소가 적힌 편지 한 통이 한국으로부터 날아왔다. 서울변두리에서 오랜 세월 전문의로 근무하는 분이 보내온 것이다. 지난 5월, 우리 부부는 남편의 공사 장교 임관 50주년 특별행사가 있어 모처럼 고국에 나갔다. 해마다 남편 친구 분들이 한 두어 분씩 세상을 뜨기에 살아생전에 서로 만나보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 큰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며칠이 안 되어 남편에게 심각한 병이 났다. 우리가 머물던 근처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 곳에는 거의 수련 의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우리가 여태 만나던 전문의와는 질적으로 많이 달랐다. 공교롭게도 미국을 떠나기 전에 남편이 비슷한 병을 앓았기에 담당수련의는 일단 미국에서 먹던 약을 몇 알 주면서 전문의와의 일정을 주선했다. 며칠 후, 우리 부부는 약속 시간이 되어 기대를 했던 전문의를 만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마에 커다란 의료안경을 걸치고 있던 젊은 의사 바로 앞 책상 위에 스마트 폰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잠시 환자가 교체되는 시간에 그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게다가 예의바르거나 따뜻하게 환자를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빈정거리는 태도로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응급실에 갔던 기록도 읽어보지 않은 듯, 의사양반은 환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도 않았다. 책상위에 있는 손전화기로만 눈길이 머물러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더욱이나 환자를 상담하는 시간도 잠깐인 듯, 5분 정도로 마치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내시경을 해 주고 처방전을 주겠다는 말로 진찰은 끝났다. 밖에 나와 곰곰이 생각하니 그런 무성의한 의사에게 내시경을 받아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의 책임감과 직업에 대한 적성이 매우 의심스러웠다. 다른 환자를 위해서라도 강하게 따질 수도 있고, 야단을 칠 수도 있었지만 꾹 참고 우린 방을 나왔다. 남편은 미국시민이라 의료보험도 없으니 진료비 청구서의 금액도 엄청 높았다.

답답하여 그 의사의 경력을 알아보니 서울의 유명한 의과대학을 나와 부교수 직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도저히 불안하여 그날의 남은 진료를 거부하고 병원에서 나오는데, 문득 어느 동생 의사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던 원장은 그분야가 저의 전공인데 어서 오시라며 살가운 목소리가 전화 속으로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어느 덧 늦은 오후가 되어 우린 택시를 타고 오류동으로 향했다. 수년 전에 피부병 때문에 한 번 가 보았던 시장 근처의 병원이었다. 아래층에는 약국, 위층에는 다른 병원들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그들은 부부가 의사이지만 욕심이 없는 듯 여전히 같은 건물에서 40년 넘게 소박하게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알고 지내 온 전문 의사에게 처음으로 진료를 마친 남편도 이렇게 자상한 진찰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며 만족했다. 물론 그 동생 같은 의사는 진료비도 청구하지 않았기에 나는 다른 방법으로나마 조금 갚으며 고마운 마음으로 병원을 떠났다. 미국에 돌아 와서도 그이는 계속 병원을 다니며 당시의 갑작스런 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뜻밖에 오늘, 그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진행이 되어야 할 진료 안내와 함께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간미 넘치는 편지를 보내 온 것이었다. 물론 한국의 병원에서 이미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명확히 친필로 알려주면서 오히려 우리부부에게 식사대접도 못했다는 아쉬움의 마음을 전했다. 물론 어릴 적부터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의 격조 높은 인간적인 성품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놀랍지도 않았지만, 편지 봉투를 열며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가족은 책임감이 넘치는 의사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오래 전, 한국의 의과대학에서 전공의 과정도 본인의 적성과 달리 돈이나 잘 버는 성형외과로만 몰린다는 한심한 소식이 슬펐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통의 그의 편지가 우리의 행복한 존재를 깨닫게 해줄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 가족은 잠시 모두 숙연했다. 나도 우리 가족이 느꼈던 행복한 에너지의 파장을 당장 편지지에 담아 보냈다. 또 전화를 걸어 이처럼 좋은 일 좀 오래 하시라며 부탁했더니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인지 몇 년 후 은퇴한다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인품과 의술재능은 퍽이나 아쉽지만, 지금도 오류동의 정 원장처럼 책임감으로 일하는 의사들이 세상 곳곳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한편 우리부부가 고국에서 경험한 것처럼 간혹 환자 앞에서 스마트 손전화기로 장난하는 의사들을 향해서는 깊이 반성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최근에 손전화기로 어른이나 아이나 만화 포켓몬과 놀다가 다치고 죽는 뉴스를 보면서 한심한 세상을 나는 걱정한다. 행위의 원인과 결과가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는 사필귀정이라지만,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최소한의 기본 양심만은 개개인의 가슴에 살아있어야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세상에 휘말려 드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 (한신잠실코아)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