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해외기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8.09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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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감상을 무척 즐겨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극장을 찾거나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영화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꽤나 쏟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영화는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뛰어난 영상미와 화면에서 풍겨나는 색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내용은 첫 만남과 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재회를 하게 되는 한 가족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섯 살 난 어린 남자아이의 시선을 통해서 영화는 전개되며,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신선한 느낌을 풍겨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신비스런 전설을 담은 한 권의 동화책 속으로 푹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용이 특별히 우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뛰어난 색감과 영상미의 전개가 너무 아름다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여름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숲속, 빗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상큼한 초록색 나뭇잎사귀들, 그리고 소나기가 그친 후에 나타난 황금빛 햇살 아래에 펼쳐진 노란 해바라기 밭은 완벽한 영상미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아빠와 아들이 비를 맞으며 다녔던 숲길은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는 희망의 길로 비춰졌다. 비와 함께 찾아 온 6주간의 기적을 감동적인 영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한 첫날,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사는 아빠와 어린 남자아이에게 숲속의 놀이터에 한 줄기 바람처럼 엄마와 꼭 닮은 여자가 나타난다.

아빠와 아이는 그 여자가 죽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엄마로 여겨지는 여자는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이며, 그들이 함께 지내는 6주 동안 남편과 아이는 처음부터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 가족의 사랑은 너무 순수해서 마치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사랑은 비를 타고 찾아왔으며 노란 해바라기 같은 영상으로 내 마음을 물들였다.

비가 그친 후 햇살이 떠오를 때에 엄마는 그 숲속에서 나타났던 모습 그대로 다시 은색의 빛살 속으로 사라진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빠와 아들은 비를 기다리며 가슴에 남겨진 엄마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며 살아간다. 죽은 엄마가 남편과 아들을 잊지 못해서 지상으로 잠시 외출을 나와 새롭게 처음 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했었던 모양이다. 가족이란 함께 할 때에 빛이 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가슴을 툭 치며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가슴이 점차 메말라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며 촉촉하게 적셔줄 마음의 비를 기다린다. 그 비는 내가 만나고 싶은 나의 희망이며 구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가슴을 가만히 열어보면 그 속에는 내 삶의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엿보게 된다. 하루는 파란색이었다가 또 하루는 검은 색이 되고 또 다른 하루는 속앓이를 하는 빨간색이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누구를 만나러 가서 내 속을 꺼내 보여줄 수 있을까.

앞으로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지나간 시간보다 짧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고,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열심히 일한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에 평화가 깃들이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려고 애를 쓴다.

지난 토요일 오전에 골드코스트 한인회에서 주최하는 한국전 참전 기념식에 다녀왔다. 359명의 호주군인들이 한국전쟁기간에 사망했다고 한다. 가슴에는 훈장을 줄줄이 매단 하얀 머리의 노병들이 먼저 간 동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기념식에 참석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위령 벽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그 옆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디가드처럼 곁을 지키고 있었다. 노병들과 기관장들의 인사가 이어지고 구슬픈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며 벽 앞에 놓인 화환들이 먼저 떠나간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북반구의 작은 나라에서 젊은 영혼들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훌훌 북반구를 날아서 고향인 호주 땅으로 돌아왔을 것이라 믿어진다. 나는 깊이 고개를 숙인 채 그 영령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를 빌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죄스런 마음이 드는 이 기분은 또 무엇일까. 60여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하나가 되지못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다.

남의 땅에서 죽음으로 끝낸 그들의 젊음이 헛되지 않도록 남북한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하고 함께 손잡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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