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크리에이티브’가 국가 브랜드라구요?”
[안영수의 문화칼럼] “‘크리에이티브’가 국가 브랜드라구요?”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08.1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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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한반도가 용광로가 된 듯이 밤낮으로 찜통더위가 계속되니 시원한 계곡이 그립다 못해 간절하다. 자연스럽게 몇 년 전에 설악산으로 떠났던 가족 여행이 생각난다.

쌍둥이 외손녀들이 다섯 살 때였다. 휴가철을 피해 미리 떠난 6월 말의 설악산은 한산하다 못해 정적에 싸여 초여름의 나무들로 인해 사방이 초록색 물감으로 칠해진 도화지 같았다. 손녀의 손을 잡고 신흥사 경내를 걸으며 손녀에게 물었다.

    “예원아, 기분이 어때?”
손녀는 잠시 생각한 끝에 대답하였다.
    “눈이 행복해요.”
    “왜 눈이 행복해?”
    “모두가 초록색이잖아요.”

손녀는 사방이 온통 푸른 걸 보니 마음이 행복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런 비유법은 전문적인 용어로 환유법(metonymy)이라고 한다. 구상적인 명사로 추상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시적 장치이다. 또 다른 손녀는 여행 중에 열감기로 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병원에 다녀온 후 열이 내렸을 때 손녀를 안아주며 물었다.

    “채원아, 이제 괜찮아?” 손녀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였다.
    “할머니, 열이 비처럼 떨어졌어요.”

열이 비처럼 떨어졌다고? 30여 년 동안 시를 가르쳤던 나는 손녀들의 참신한 비유법에 할 말을 잃었다. 문득 18세기 말 영국의 낭만주의 시의 원조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어린이 예찬론이 생각났다. 블레이크의 시에 나오는 어린이는 순수(innocence)와 상상력(imagination)의 상징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태어날 때는 순수의 상태이지만 나이가 들어 경험이 많아질수록 타락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학교의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이 어린이를 망친다고 비난하고 학교에 보내지 말 것을 주장했다. 블레이크 자신도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외손녀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나와 놀 시간이 없어졌다. 그 애들이 바빠진 탓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수영, 미술, 영어, 그리고 수학 과외를 받으러 다니기 때문이다. 딸에게 아이들을 왜 벌써 그렇게 사교육을 많이 시켜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엄마들이 그렇게 한다니까 할 말이 없다.

손녀들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처럼 사교육을 받아야 하고, 내 딸은 사교육비 대느라고 허리가 휘겠지? 아니 내 딸은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사교육 시장에 손녀들을 내몰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녀들의 어렸을 적 상상력을 없애고 있다는 것을 알까?

필자는 교육의 일선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우리나라 교육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원인을 요약할 수가 없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사교육을 근절하고 공교육을 강화한다고 큰 소리 친지 수 십 년이 넘었건만 언제나 교육 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아니 세월이 갈수록 공교육의 기능은 유명무실해지고 사교육 시장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요즘은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선행 학습학원까지 유행을 하고 있단다. 영어, 수학 외에도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은 물론 취직을 위해 써야하는 자소서(자기소개서)도 학원에서 지도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 입사를 위한 면접 요령도 학원에서 돈을 내고 지도를 받아야 하는 세상에 우리의 청소년들은 살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공부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학교라는 공장에서 같은 생각을 주입시킨 인간 로봇을 양산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 방법으로 수업을 하고 시험도 객관식으로 보니 찍기 기술만 늘고 개인의 사고력과 추리력은 뒷전에 처져 있다. 대학 진학도 좋아하는 전공보다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마지못해 선택한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취업 준비를 위해서 또 학원에서 훈련(?)을 받다 보니 어렸을 때의 적성이나 창의성은 초, 중, 고를 거쳐 대학 졸업과 함께 대부분 소실되고 오직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의 기술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잔재주를 배우면서 어른이 된다.

그런데 최근에 대한민국 정부가 새 국가브랜드를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에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로 바꾸었다. 이 브랜드를 만든 문화체육부 장관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엔 한국인의 창의성과 현실을 뛰어넘는 미래지향적 가치가 함께 담겼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 창의성과 미래지향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정부는 얼마나 노력을 해왔나? 아니 하고 있는가? 국가 브랜드 제정 목적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것이라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가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 정부가 계속 강조해온 구호가 ‘창조’라서일까? ‘창조 경제’, ‘창조 산업’ 등 미래지향적인 한국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이 과연 ‘창의성’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창의성’(creativity), 즉 상상력(imagination)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창의성은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개인의 성장에 따르는 놀이와 독서, 그리고 경험과 호기심을 파고드는 꾸준한 노력이 밑거름이 돼야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현실은 새로운 국가 브랜드인 ‘크레이티브 코리아’와 역행하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 중앙일보 선데이(2016.7.10)에서 “‘갈라파고스(고립된 섬) 위기’에 갇힌 한국 대학”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을 비롯한 싱가포르, 홍콩 같은 대학에서는 거꾸로 교실(Flipped Learning) 등 강의실 없는 온라인 교육 등을 통해 지식은 스스로 얻고 그 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수업을 통해 배우는데 한국 대학은 온통 국내용 대학 구조조정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프라임 사업(산업 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은 대학들마다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계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등 졸속,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창의성의 기반이 되는 인문학이 설 자리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손녀들이 틀에 박힌 주입식 교육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손녀들이 자라면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경험하여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거운 인생을 설계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어른이 되어서도 창의적인 비유법을 구사했던 다섯 살 때의 상상력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블레이크는 인간의 타락은 아집(selfhood)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이 타락에서 구원해주는 것이 상상력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라는 시에서 인간의 상상력의 힘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 안에서 무한을 보고
    한 순간의 시간에서 영원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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