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국제교류재단 객원교수 임기를 마치며
[기고] 한국국제교류재단 객원교수 임기를 마치며
  • 박채순<정치학 박사·존에프케네디 대학>
  • 승인 2016.08.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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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인 쉰네 살에 아르헨티나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갔는데, 많은 박사들이 정규직 교수직을 얻지 못하고 시간 강사라는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것을 보았다. 교수와 교수가 아닌 박사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크고, 그 어렵게 취득한 박사학위가 정규직 교수나 책임 있는 자리를 얻지 못하는 한 실생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필자는 늦깎이로, 그것도 후진국에서 받은 박사학위로 비정규직 시간 강사 자리는 엄두도 못 내고, 이름이 그럴듯한 고려대학교의 아시아문제 연구소의 객원연구원과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의 초빙연구위원이라는 연구직 명함을 들고 이러 저리 실속 없이 뛰어 다녔다.

내가 라 플라타 대학교에 국제교류재단에서 파견한 교수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직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비록 객원이라는 접두사가 붙고 2년간의 짧은 계약이었지만, 그 얻기 어려운 교수직을 그것도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것이니 어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또한 객원교수니, 계약직이니 그런 것은 나를 대하는 현지 대학생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들에겐 한국의 교수(professor)인 것이다. 사실 아르헨티나에는 호칭이나 직책을 가지고 한국처럼 차별하진 않는다. 어찌됐든 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객원 교수직에 만족하고 나의 생에 큰 의미로 받아드려 그 동안 열성을 다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어울렸다.

강의 시간 전에는 학생들에게 차나 커피를 마시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도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차 한 잔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했던 것이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과 피자 등으로 간단한 파티를 했고, 학기에 한번쯤은 한국문화를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식당에 초대해 한국음식을 맛 보였다. 2014년 가을 학기를 시작으로 2016년 봄 학기까지 2년 동안 그야말로 정열적으로 교수생활을 했던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객원교수 업무를 지난 6월30일 마지막수업을 끝으로 공식 마감했다. 마지막 수업 날, 중간 휴식 시간에 나를 잠깐 밖으로 유도한 빅토르(Victor Arias) 학생의 뒤를 따라 다시 강의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전부 기립해 박수로 환호했다. 물론 라 플라타 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곤사니(Norberto Consani) 소장과 한국학과 바볼레오(Barbara Bavoleo) 과장 등 동료 교수들도 함께했다. 책상 위엔 송별파티를 위한 여러가지 음식과 정겨운 선물들도 준비해 두고 있었다. 60여 인생을 살면서 희로애락의 여러 경험을 했지만, 그날 학생들과 교수들이 보여준 사랑과 존경은 내게 특별한 감동이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국을 알리고 한국과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업무를 하는 외교부 산하 재단법인이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하는 재단은 외국 주요 인사를 초청해 한국을 알리고 교류를 넓히는 일을 많이 한다. 그 외에 외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한인교수가 필요할 경우, 요건을 갖추어 국제교류재단에 신청하면, 재단에서는 이를 심사해 한국학이나 한국어 전문 교수를 파견하는 제도를 운용한다.

201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국립라플라타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 La Plata)에서 정치학이나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교수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고, 재단이 파견을 결정했으며, 파견 교수 공모와 선발을 통해 내가 파견된 것이다. 처음 1년이었던 계약기간을 1년 더 연장 받고 2년 동안 한국의 민주정치, 경제발전, 문화, 한국사회와 종교, 남북한 관계, 한국외교와 아르헨티나 한인사회 등 1주일에 4시간짜리 두 강좌를 개설해 4학기 동안 총 여덟 개 과목의 다양한 강의를 했다.

나는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서, 한국이 어려웠을 때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한국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과정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한국의 발전과 더불어 필자 세대의 성장 경험을 들려줬다. 특히 한국정부, 국민들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후의 잿더미에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완성시켰고, 경제를 발전시켜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했으며, 유구한 기간 동안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더욱 발전시켰다고 강의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이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는 것도 빼지 않고 이야기해줬다.

아르헨티나 젊은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목표를 세워 쉬지 않고 노력하면 한국과 한국국민의 예에서 보듯 국가와 학생 개개인들도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업 시간은 물론 2015년 한인 아르헨티나 이주 50주년을 맞아 라플라타대학교에서 내 책임 하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와 라 플라타 대학교 명의로 한국 관련 큰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평소에 한국음식 소개는 물론 아르헨티나 거주 한국인들의 다양한 활동에 초대하거나 한국문화현장을 방문해 학생들이 한국, 한국문화와 한국인을 더 이해하고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한국인 출신 유명 연예인인 마르가리타리(Margarita Lee)를 수업시간에 초대해 그의 이민자로서의 어려웠던 정착과 성공에 대해 들었고, 마지막 학기에는 아버지를 아르헨티나인으로, 어머니를 한국인으로 둔 27세의 가브리엘라 로메로김(Gabriela Romero Kim)을 초대해 그의 가야금 연주를 수업시간에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최선을 다해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가르쳤고 그들의 장래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행복한 인생을 가꾸도록 많은 대화를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이 나에게도 매우 의미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년 동안 미진했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많이 들려주고자 했던 마지막 수업이 학생들의 파티로 망가지긴 했지만, 이들이 준비한 이별파티가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학생들이 SNS를 통해서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주었다.

미카엘라 모랄레스(Micaela Morales)가 6월30일 마지막 수업에 즈음해 쓴 페이스북 글을 여기에 옮긴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작고해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유치원 선생으로 일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의 K-Pop에 매료돼 2018년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2년 계획으로 저축을 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의 훌륭한 교수님과 작별을 고하는 날이다. 그는 수업시간에 언제나 겸손하면서 긍정적인 웃음을 잃지 않아, 우리로 하여금 함께 웃게 한다. 그의 수업은 매우 즐겁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은 물론 언젠가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된다. 나와 나의 동료학생들은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과 지식, 이벤트, 대화 등 모든 것에 대해 엄청난 고마움을 표한다.” 미카엘라는 이어 “박 교수님, 개인적으로는 교수님이 제게 주신 정성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배운 많은 것을 오랫동안 간직하겠습니다. 오래지않아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원합니다. 교수님이 무사하게 귀국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전했다.

법원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변호사 공부를 하고 있는 빅토르(Victor Arias)는 “훌륭한 스승이며, 친구인 박 교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한국에 관련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쓰고 “학문적으로도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선생님의 열정과 조크가 마냥 그리울 것입니다. 당신은 가장 멋진 선생님이었습니다”라고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라 플라타 대학교의 강의 외에 한국국제교류재단 명의 교수 이름으로 한국을 알리는 일을 자주 하곤 했다. 틈틈이 뚜꾸만 국립대학교 등 지방 대학교와 한인사회에서 한국과 아르헨티나 관련 강의도 했다. 라 플라타 대학교 마지막수업 하루 전인 6월29일에는 아르헨티나의 국제관계자문회의(CARI)에서 아시아 전문가들을 상대로 남북관계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CARI는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연구조사 기관이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강연한 바 있다.

또한 라 플라타 대학생들에게 했던 강의 일부를 지방 대학생들과 나누고 싶어서 7월5일 후후이 가톨릭대학교의 특강을 시작으로 살타가톨릭대학교, 멘도사 국립꾸죠대학, 7월28일 꼬르도바 주의 국립꼬르도바대학교에서 특강 등을 했다. 꼬르도바대학교 아시아 아프리카 연구소 강의를 마지막으로 2년 동안의 한국국제교류재단 아르헨티나 라플라타대학교객원교수 생활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비록 2년 동안의 짧은 교수 경험이지만, 라 플라타 대학교의 객원교수 생활은 국제교류재단을 통한 한국정부의 외국과의 교류증진이란 정신을 나름대로 실현했다고 자부한다. 개인적으로는 쉰 넷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늦깎이 학자의 고난을 충분히 보상 받았으며, 평소에 품었던 학생을 가르치는 꿈을 실현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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