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상사화와 할미꽃
[안영수의 문화칼럼] 상사화와 할미꽃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09.1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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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어제 추석 차례를 지냈다. 오늘 아침 나는 수 십 년 동안 해온 대로 목욕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목욕탕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명절 증후군’의 치료(?)를 위해 계속해온 나만의 힐링 방법이다. 요즘 단골 사우나는 찜질방을 겸하고 유황탕까지 갖추고 있는 아주 규모가 큰 곳이다. 열탕, 온탕, 냉탕, 그리고 물대포가 나오는 곳이 있어 아침 일찍 가도 입욕 손님들이 많다.

그 목욕탕은 너무 커서인지 동굴 같다. 항상 김이 서려 들어가면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 그 곳에 가서 겨우 자리를 잡고 열탕에 몸을 담그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눈에 뜨인 것은 어두컴컴한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장식된 상사화와 할미꽃 사진이었다. 세로가 1m 이상 되는 큰 사진 속의 꽃들이 LED 조명을 받아 마치 생화처럼 보였다. 여러 목욕탕을 전전했지만 사진이 걸린 목욕탕은 처음이었다.

이 사우나 주인은 왜 하필 상사화와 할미꽃 사진들을 걸어놓았을까? 상사화(想思花)는 꽃이 피면 잎이 없고 잎이 나오면 꽃이 져버려 서로 만날 수가 없는 꽃이어서 ‘이룰 수 없는 사랑’ 또는 ‘참사랑’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할미꽃은 딸들에 대한 엄마의 지고한 사랑이 보답 받지 못해 ‘사랑의 굴레’ 혹은 ‘사랑의 배신’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벽에 걸린 꽃들을 한참 보다가 탕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거의 다 나처럼 나이든 어르신들이다. 축 늘어진 젖가슴과 뱃가죽이 삼겹살처럼 주름이 잡힌 노인들은 나처럼 삭신이 쑤셔서 일찍 와서 탕에서 굳은 근육을 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사진들을 번갈아 바라보니 주인의 숨을 뜻을 알 것도 같다. 저 꽃들은 내 세대와 그 전 세대의 우리나라 여자들의 일생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이미자 씨의 유명한 가요 ‘여자의 일생’의 노랫말처럼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 아~ 참아야 한다기에…”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 품을 떠난 자식들을 해바라기 하면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을 짝사랑으로 일관했는지도 모른다. 한 때는 젊고 예뻤을 처녀들이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다 못해 어느 나라에도 없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병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추석을 전후해서 내 염장을 지르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가족 카톡방을 갖고 있는 며느리들이 명절을 앞두고는 시어머니의 감시를 피하려고 제3의 ‘사이버 망명’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SNS 누리꾼들이 추석 명절의 풍속도가 많이 바뀌고 있음을 속속 올리고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집안일을 챙기는 가정이 늘고 있고 추석 차례 상을 아주 간소하게 차리는 집들이 늘고 있단다. 아예 차례를 없애고 명절 연휴 기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루 십만 명을 넘었다던가. 1960년대에 결혼한 필자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명절 풍경이다.

외며느리나 마찬가지였던 나는 명절과 제사가 돌아오는 며칠 전부터는 불안하고 짜증이 났다. 어떻게 이 힘든 고비를 넘길 것인가? 생각만 하면 가출하고 싶을 정도였다. 젊어서는 살림을 잘 하지도 못하고 시어머니를 도와 뒷설거지만 했는데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렇게 40여 년의 ‘명절 증후군’을 목욕으로 뭉친 근육과 마음의 화를 풀며 견디어냈다.

그런데… 남편은 아들이 결혼하자마자 며느리에게 이제부터 제사를 지내지 말고 추석과 설 차례만 지내라고 선심을 썼다. 칠순이 넘어서도 고생하는 내게는 왜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는지 은근히 화가 났다. 나도 그에게 질세라(?) 며느리에게 인심을 썼다. 시아버지와 네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 빈대떡만 직접 하고 나머지 전과 나물 반찬은 사와도 된다고 말했다. 그 나머지는? 과일과 산적과 탕국은 내가 장만하겠노라고. 이 정도면 나는 ‘친절한’ 시어머니가 아닌가? 맞벌이 시대에 옛날처럼 며느리에게 명절 음식을 다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긴 세월 동안 직장 다니면서 제사와 명절 음식을 직접 장만해야 했던 나는 억울하다. 동서도 없어 혼자서 장보고, 지지고, 끓였다. 감히 만들어 놓은 음식을 사올 생각조차 못했다. 시어머니가 생존하셨을 때는 시댁 친척들이 많이 와서 그 치다꺼리를 하다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만만한 남편이 미워서 며칠 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난 다음부터는 명절과 제사 준비는 온전히 내 몫이 되어 팔자타령 할 여유조차 없이 열흘 전부터 쇼핑 리스트를 작성해 고기, 과일, 야채 등 구입 순서를 정해 미리 장을 봤다. 더구나 우리 집 제사는 세 분 모두 여름에, 그것도 중복을 전후한 음력 7월에 있어서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음식 장만이 끝나면 목, 어깨, 허리 등이 너무 아파서 도망가듯이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아마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과 싸웠거나 집을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뜨거워진 몸을 식히려고 밖으로 나와 유황탕에 담그고 바다처럼 깊어진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다.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진다. 며칠 전 만난 동료 교수의 말이 생각나서다. 자기가 평생 독신으로 살기를 정말 잘 했다고 확신에 차서 그녀는 말했다. 2년 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을 만큼 어머니와 정을 떼는 것이 어려웠다며 결혼을 했더라면 남편이나 자식들과의 애증 관계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느냐고 스스로의 선택을 대견스러워했다.

그렇다면 결혼한 죄(?)로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나와 같은 여자들은 선택을 잘못해서 힘든 평생을 살아낸 것인가? 내가 잘못 살아왔단 말인가? 그러나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선택했고 나는 내 인생을 선택했을 뿐이다. 목욕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손자와 손녀 사진을 본다.

“그래, 내게는 아들과 딸과 손자와 손녀들이라는 소중한 보물들이 있지. 이만하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인생이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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