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안전하고 전쟁 없는 나라 만들어 주세요!
[안영수의 문화칼럼] 안전하고 전쟁 없는 나라 만들어 주세요!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10.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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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필자는 1960년대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출산도 늦어 손자 손녀들이 아직 어리다. 이제 겨우 돌 지난 손녀와 터닝메카드 모으는 재미로 사는 손자 그리고 동물 캐릭터들로 구성된 실바니아 살림놀이를 하는 쌍둥이 외손녀들이 있다. 주말에 집에 와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을 보는데, TV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시리아 내전 뉴스가 마음 한켠을 무겁게 한다. 2주 만에 106명의 어린이가 희생돼 알레포를 ‘어린이 무덤’으로 만들고, 생후 3개월 된 영아를 구하고 흐느끼는 하얀 헬멧의 민간구조원의 눈물이 자꾸 내 시야를 흐리게 한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암울하고 불길한 뉴스들을 접하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보다 순진무구하게 뛰어노는 손자 손녀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편치 않을 정도를 넘어 불안하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죽인 한국전쟁으로 내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 유년에 겪었던 물질적, 정신적인 결핍은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로 남북한 관계가 극도로 긴장 상태에 빠져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의 나라 일로만 생각했던 지진이 우리나라에 발생했다. 일본, 대만, 네팔과 같은 이웃 나라를 덮친 대지진이라는 자연재앙이 분단의 비극이 상존하는 한반도를 비켜가는 것은 그나마 신의 가호가 있어서라고 내심 안도하며 살아왔는데, 역대 가장 큰 진도 5.1에 이어 5.8의 지진이 역사적 유물이 가득한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를 급습해 국민 모두가 극도의 공포와 불안상태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지역주민들과 국민을 불안하게 한 것은 정부의 늑장 대처였다. 지진 대응자세는 낙제점이었다. 2013년 인재로 빚어진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지진 발생 후 8분이 지나서야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됐고, 그나마 못 받은 사람들이 천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더 황당한 뉴스는 기상청의 지진 대응매뉴얼에는 밤에는 장관을 깨우지 말라는 황당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노릇이다. 기상청 근무자들은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고 생각하고, 무개념, 무계획, 무대응으로 자리만 지킨 꼴이 됐다.

이런 황당한 뉴스는 지진 발생이 잦은 일본의 대응 자세와 너무나 대조돼 뉴스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우리나라는 천재지변보다는 인재로 인한 사고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대처 매뉴얼이 정비되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줄 알고 있었던 국민들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공직자들은 윗사람 눈치 보기 바쁘고 지시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아직도 수직적인 행정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오랫동안 일본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정부 학생교환 프로그램인 일본공대 유학생들의 연수에 해마다 특강을 했다. 2011년 일본의 대지진이 일어났던 해에는 언론에 비친 일본의 대재앙 기사를 스크랩해서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기사는 피터 M. 백이라는 미국동서문화센터 포스코펠로의 말이었다. 그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은 너무 다르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생필품을 구하려고 길게 줄을 서 기다렸다. 무한한 인내심이었다. 약탈이 벌어졌다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표현하기 힘든 두려움 속에서도 이런 평온함을 유지하는 걸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일본 기자가 지하철 운행이 재개되기를 24시간 꼬박 기다린 사람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시요가나이(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한국이라면 아마도 ‘억울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이후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충돌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했었는데, 이런 일은 일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그들의 수동성 대문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많다. 반면 한국인의 가슴 속에는 불길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중앙 SUNDAY, 2011. 3월 20-21일)

자연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에선 공동규범을 마련한 ‘매뉴얼 사회’가 탄생했고, 거의 모든 분야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어학연수가 끝나 수료식을 하고 회식에 참석한 일본 학생들이 간직한 다이어리를 보고 경탄한 적이 많았다. 그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쓴 다이어리에는 문화체험한 장소의 사진, 입장권, 심지어 지하철 패스까지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정리된 다이어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 부처와 우리나라의 부처 간의 회의에 참석해도 일본 측은 실무자는 바뀌었는데 파일은 처음부터 정리돼 두꺼운 반면에 우리 측은 달랑 현안문제만 인쇄된 문건 한 두 장만 갖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측 실무자들은 현안에 관한 의견과 주장은 일관적이지도, 설득적이지도 못했다. 왜 우리는 기록문화가 없는가? 왜 준비성이 없는가? 조선시대의 실록은 어떻게 여전히 소중하게 그 시대 왕의 행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아직도 내 앞에서 재잘거리는 손자들을 보면서 두 손을 불끈 쥐어 본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근면하고, 패기와 열정에 넘쳐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 않던가? 한 번 한다고 하면 밀어붙이는 승부근성도 있겠다. 경쟁과 이기심을 버리고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으로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위기관리 능력을 개발하면 될 거야. 그리하여 사회 전반에 암처럼 번진 ‘안전 불감증’과 ‘안보 불감증’을 치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국가나 사건을 예방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정부조직이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일대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알레포의 비극적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각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두 손을 모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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