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테러 그리고 대책
[칼럼] 테러 그리고 대책
  • 류현옥 재독 칼럼니스트
  • 승인 2016.10.22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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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트한자(Lufthansa)여객기가 164명의 승객을 태운 채 납치 당한다. 테러리스트는 공항 컨트롤 타워와 교신하면서 7만명이 운집한 축구장에 비행기를 떨어뜨려 가능한 많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과거 역사에 유럽의 여러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이 많은 아랍인들을 죽였기에 대가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겠다는 것이다.

항공 당국으로 들어온 소식은 바로 독일 공군기지에 통보되고 비상 신호를 송출, 비상대기조 공군기 두 대가 불과 십 여분 만에 문제의 비행기에 도착하여 양쪽으로 붙어 에스코트하며 항공안전당국과 전문어로 통화가 시작된다. 이중 한사람이 비상대기 비행기 조종사 마요 코흐씨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테러단의 손에 들어간 비행기의 착륙 종용을 시도하지만 여객기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속 목적지를 향해 비행한다.

독일 정부와 국방부는 최고급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여객기가 경고 신호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공군 사령관 마요 코흐는 항공 안전 당국에 비행기를 격추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요구는 거절당한다. 시시각각으로 비행기는 목표점에 가까워지는 데 손을 쓰지 못하고 모든 관계자들은 납치된 비행기가 보여주는 화면을 지켜본다.

이 순간부터 여객기는 폭탄 역할을 할 무기로 전환되어 루프트한자 몇 호기로 불리지 않고 테러단이 든 자살폭탄으로 변하고 군사적 전문 용어로 바뀐다. 여객기승객들 역시 폭탄의 한 부분이 되고 생명의 존엄성이 상실된다. 두 번의 격추 허락을 거부당한 사령관은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여객기를 향해 발사한다. 승객 164명의 비행기는 감자밭 위에 추락한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앰블란스와 경찰차가 현장으로 달려가고 코흐는 곧바로 체포된다. 축구장 7만명의 생사가 달려 있는 긴급 상황이 허락하는 것으로 법과 상관의 명령을 무시한 행동으로 164명을 희생시킴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지난 15년간 호스피스에서 일하면서 인간의 생사는 오직 신의 결정에 따르기에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철저히 배웠다. 코흐씨는 7만면을 살리고 164명은 죽인다는 신의 역할을 한 셈이다 .

이 가상의 이야기는 법률가이며 문학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페디나트 쉬라(Firdinand von Schirach)의 작품으로 연극화되어 지난 1년 동안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됐다. TV 영화로도 상영되어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국영TV에서 방영됐다. 이 방송이 특별했던 것은 극장의 관객들에게 공연이 끝난 후 격추의 사격을 한 공군 사령관이 무죄 또는 유죄를 결정하는 배심원 역할을 맡게 하고, TV방송이 끝난 후에 영화를 본 국민들까지 집에서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배심원 투표를 시행했다. 연극을 본 사람들은 60%가 무죄를 선고했고, TV를 본 시청자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86%, 스위스는 84%로 무죄를 선고했다.

여기서 법과 도덕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TV영화가 끝난 후,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게하르트 바움(Gerhart Baum)과 성직자인 그의 부인, 이 항공보호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던 전임 내무부 장관 융(Jung)이 함께 참석하여 열기 있는 토론이 벌어졌다.

여객기의 164명 승객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이 죽을 사람들이기에 이 사람들을 희생시켜 7만명을 구한다는 것은 옳다고 정당화하는 융의 주장과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승객이 탄 여객기를 쏘아 격추시킨 공군 사령관은 국가를 대표하기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를 떠나 국민을 죽였기에 유죄를 선언하는 바움씨와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성직자인 바움의 부인은 인간의 원죄론을 거론하며 이 일에 직간접으로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죄가 있는 데 사령관 한 사람을 들어 유, 무죄에 대한 결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요 요점은 첫째, 164명을 희생하여 7만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법을 어기고 비행기에 앉은 146명을 사살할 수 있는가? 사령관이 164명의 생사를 결정했다는 것을 허락하면 국가 권력을 일임 받은 군인의 손으로 국민을 죽이게 한 것과 다름없다. 둘째, 비행기 승객들은 비행기를 무기로 이용하여 축구장의 7만명을 죽이겠다는 테러단의 사고방식에 의해 무기의 일부가 되는데 국가가 여기에 무관심하게 오직 명령을 어기고 행동한 사령관을 무죄로 석방해도 되는가? 독일의 기본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제1조에 기록하고, 인간의 권리는 2조에 정하고 있다.

164명을 희생함으로써 7만명을 구할 수 있다는 도덕적 원칙으로 비행기에 탄 죄 없는 승객을 살해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간의 생명은 숫자나 수준의 무게를 달아서 처리할 수가 없다. 노벨상 수상자가 거리의 청소부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가치 수준을 정할 수가 없다. 7만의 생명에 비교해서 소수의 164명을 희생할 수 없고 비행기에 앉은 승객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격추시행을 한 사령관을 국가가 무죄로 선언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시청자 배심원과 달리 유죄선고를 변론하는 판사는 다른 몇 가지 비유를 든다. 병원의 앰블란스에 젊고 건장한 남자가 팔의 골절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병원 내에서는 의사들이 땀을 흘리며 위기에 처한 세 명의 환자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신장의 급성 마비로 이식만이 치료가 가능한 환자, 새로운 심장이 필요한 심장환자, 의식을 잃어가는 간성 중독환자이다. 한 사람인 건장한 남자를 죽여 장기이식을 한다면 세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이론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증언대로 불려온 항공보호국의 책임자에게 여판사가 묻는다. 그녀가 알아본 정보로는 축구장에 모여 있는 7만 관중을 해산시키는 데 불과 15분이 걸리는데, 왜 그것을 시도하지 않았느냐?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모든 책임자들은 납치된 비행기의 모습을 화면을 보면서 7만명을 구하는 다른 방법론은 강구하지 않고 있다가 사령관이 단독 결정으로 여객기를 격추했다. 왜? 그 담당자 자신도 공군 사령관의 상황에 처했더라면 역시 여객기를 격추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하는 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축구장 사람들을 해산하지 않은 것은 여객기가 격추 당할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인가?

여기서 시청자들이 믿었던 극히 인간적이고 명령을 어기면서도 그리고 자기에게 다가올 불행한 운명을 감수하면서 과감하게 행동한 영웅적인 사령관이 무죄라고 믿었던 점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휘관은 가상적인 약속을 근거로 무죄가 될 것을 믿고서 비행기를 격추 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는 어차피 여생을 비행기에 앉은 164명을 사살했다는 양심적 괴로움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도 한 개인, 즉 사령관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 에 대한 여론의 여지를 갖게 만든다. 이점에 있어서는 그는 외롭다. 어느 누구, 국가도 헌법도 도와 줄 수가 없다. 혼자 괴로워하며 살아야 한다.

남편을 잃은 젊은 부인이 증인석에 앉았다. 아버지를 잃은 딸이 장례식에서 왜 빈 관을 묻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흐느끼며 말했다. 마요 코흐에게 당신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때까지 계속 고개를 들고 자신만만하게 자기의 영웅적인 행위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던 그는 이 순간 얼굴색이 변한다. 만약 그 비행기 안에 그의 사랑하는 부인과 딸이 타고 있었다 해도 추락시켰겠느냐고 묻는다. 그는 답하지 못한다. 재판장이 이 대답을 뒤로 미루겠느냐고 묻는 데 그는 지금 대답하겠다고 하고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꽃 튀는 토론이 있은 후 같은 영화배우들이 같은 법정에 앉은 채로 법적판결을 내리는 장면으로 거의 세 시간에 걸친 방송이 끝난다. 사령관 코흐는 독일 연방법에 의해 유죄 선고를 받는다. 판결에 따른 긴 법적 설명이 따른다.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지휘관이 명령을 어기고 죄 없는 국민을 사살하는 것은 바로 국가가 국가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다. 연방헌법 제1조를 어긴 행위로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헌법을 무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유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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