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22] 손기정
[아! 대한민국-122] 손기정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6.12.17 0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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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936년 8월9일, 42.195km를 2시간 29분 19초 2에 달린 24세의 한국인 청년은 숨을 헐떡이며 독일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에 맨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베를린으로부터 이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을 때 서울은 깊은 밤중이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비를 맞으며 신문사 정문 앞에 운집해 기다리던 군중들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소식들을 전해 들었다. 호외(號外)가 제작되는 시간이었다. 신문사 안에는 체육계 및 각계 인사들이 모여 베를린 현지 소식을 청취하는 중이었다. 다음날 나온 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9일 오후 3시(조선시간 오후 11시)에 올림픽 경기장을 출발한 마라톤에서 우리 대망의 손기정 군은 30여 나라 56명의 선수를 물리치고 당당 우승하였다. … 우리의 손기정은 이겼다. 조선은 너무 오랫동안 숨어 살았다. 또 너무나 오랫동안 기운 없이 살았다. 손기정, 남승룡 두 선수는 시드는 조선의 자는 피를 끓게 하였고, 가라앉은 조선의 맥박을 뛰게 하였다. 한번 일어서면 세계도 손 안의 것이라는 신념과 기백을 가지도록 했다.”

그날 새벽에 호외를 받아 본 작가 심훈은 호외의 뒷면에 이런 즉흥시를 썼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戰勝)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올림픽 횃불을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동아일보는 이 승전보를 전하면서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옷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우고 기사를 작성했다. 이로 인해 현진건 사회부장, 이강용 기자 등 8명이 구속되고, 송진우 사장,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 등이 각각 그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신문은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 손기정 선수는 귀국한 뒤에 이 얘기를 듣고, “나의 심경을 대변해 준 동아일보에 감사한다. 고초를 겪고 있는 기자들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기정(1912-2002)은 분명,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러나 일본국적의 ‘기테이 손’으로 출전하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한국인으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나서 9만여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챔피언은 시종 고개를 들지 않았으며, 표정은 굳어 있었고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대답이 될 만한 말을 그는 이미 8개월 전인, 1935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선발전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하고 난 뒤에 했다.

“초인적 신기록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피곤할 대로 피곤한 몸으로 동경의 그라운드 한 구석에서 수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환호와 갈채를 받던 그 순간,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서운하고 쓸쓸한 생각이 일어나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와서 감상을 말하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싸인을 받아가기도 하고, 카메라를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더없는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 나는 한 사람의 조선말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쓸쓸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월간 <삼천리> 1937년 1월호)”

베를린 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개막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은 메달순위 8위로, 금메달 6개중 1개, 동메달 8개중 하나는 한국인이 획득한 것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 ‘승리의 벽’에 기록된 손기정의 국적은 여전히 일본이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손기정은 언제나 자신의 국적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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