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내일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를…”
[안영수의 문화칼럼] “내일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를…”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12.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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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병신년(丙申年)의 12월이 저물어간다. 해마다 세모가 되면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덕담을 나누는데 금년에는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불러 온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국민의 관심이 광화문 집회에 집중된 까닭일까. 주말마다 주최 측 추산 100여만 명의 진보진영 촛불집회와 그에 맞선 보수진영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국회 청문회에서는 질문하는 국회의원이나 대답하는 증인들이나 모두 그들의 인격을 의심할만한 막말들과 위증이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오염시킨다. 답답하고, 한심하고, 슬픈 연말이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송년회를 갖고 새해를 설계할 마음의 여유도 없거니와 한국의 미래 청사진이 온통 잿빛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왜 그렇게 무능한 대통령을 뽑았는지 손가락이라도 자르고 싶다고 자탄하는가 하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묵인 내지 조장한 권력자들과 당리당략에 몰두하느라고 산적한 민생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실망과 울화로 한숨만 나온다. 동시에 그동안 쌓아온 국제적 이미지 실추로 인한 국가 브랜드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도 난감하다.

지난 두 달 간의 회오리 같은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만 하는 민초들은 불안하다.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에 수출과 제조업의 부진으로 서민 경제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청년들의 ‘취업절벽’으로 계층적 상향이동에 대한 비관론이 30-40대 사이에 팽배하여 결혼을 기피하고 자녀 출산도 포기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주말마다 8차까지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 집회에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 중고등학교 학생들, 그리고 걷기조차 힘든 노인들 등 엄청난 숫자의 국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유는 ‘최순실 게이트’가 직접적 원인이 되었지만 그 불씨는 경제 실정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문화일보)

반세기 만에 경제기적을 이룩한 나라라고 칭송받던 ‘대한민국호’는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경제적 위기를 만나 좌초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배가 험한 경제 파고를 무사히 넘기 위해서는 고위 공직자들의 일사불란한 역할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는 그들의 리더십을 신뢰할 수가 없다. 방만한 행정과 포퓰리즘, 그리고 정경유착으로 인한 비리가 터지는데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그들에게 좌절할 뿐이다.

‘대한민국호’가 리더십의 부재로 좌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일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내일이란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즉 미래를 의미한다. 내일이 불안해지니까 문득 세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맥베스의 독백이 생각난다. 스코틀랜드의 충성스러운 장군이었던 맥베스는 세 마녀들의 예언에 넘어가 왕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다음 수많은 악행을 저질은 나머지 극심한 불안과 죄의식에 시달리다 마침내 귀족들의 손에 죽게 된다. 그는 죽기 전에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독백을 남긴다.

“내일, 내일, 또 내일이/ 정해진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살금살금 기어서 가고/ 우리의 모든 과거의 일들은
바보들이 허망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추어왔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뽐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없이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한 것.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바보의 이야기일 뿐.”

필자는 맥베스의 독백을 지금 ‘대한민국호’의 항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국정농단의 주범들, 대통령 뒤에서 권력을 누렸던 정치인들, 그리고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국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당직자들-에게 들려주어서 권력의 무상함을 일깨워주고 싶다.

누가 뭐래도 시간은 흐르고 이 모든 불행한 사건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입시비리’, ‘취업절벽,’ ‘정경유착,’ ‘안보불안’이라는 저마다의 이유로 촛불 시위에 참여하였던 국민들도 병신년의 남은 시간이나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게 어떨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서구 문명의 붕괴로 인한 인간의 황폐한 정신 상태를 고발한 엘리엇(T.S. Eliot)의 유명한 시 <황무지>에서 화자가 ‘최소한 내 땅이나마 정돈해볼까’(Shall I at least set my lands in order?)라고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듯이.

미지의 시간인 내일은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내일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면 좋겠다. 우리가 가장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의 영혼에 ‘희망’이라는 선물이 찾아오지 않는가? 필자는 억지로라도 ‘희망’의 새해를 맞을 생각이다. 하여 내년 대선에서는 민심을 결집시키고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을 뽑아 서민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모두가 신바람 나는 사회를 만들어주고 잃어버린 국격을 되찾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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