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틀에 부딪쳐 혹 생기는 일 없기를!
[칼럼] 문틀에 부딪쳐 혹 생기는 일 없기를!
  • 이종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7.01.02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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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서 만난 글들...'낮추면서 사는 일'
▲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객원논설위원

새해 첫날 강원도 원주에 갔다가 가슴에 와닿는 글귀들을 만났다. 박경리문학공원에 산책로 길을 따라 걸어놓은 글들이었다.

“토인비의 역사 연구를 읽다가/ 재봉틀 앞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묵은 유행가 책 꺼내어/ 노래를 불러본다/ 무한한 것은 저만큼 서 있었고/ 생활은 내 곁에 어질러져 있었고/ 장난기도 좀 부려보았는데/ 갑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에/ 웃었다”

‘지샌 밤’ 이라는 타이틀에 박경리 작가가 원고 집필하는 사진과 함께 소개된 이 글은 작가의 일상생활의 단면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그 옆으로는 ‘꿈’이란 제하에 다음과 같은 글도 적혀 있었다.

“원주 와서 넓은 집에 혼자 살아온 것도 칠팔 년 늘 참말 같지가 않았다/ 방문 열면 마루방 덧신 발에 걸면서 한숨 쉬고 댕그머니 매달린 전등불 믿기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정수리 자르며 지나가는 시간 저승길 헤매고 있는 거나 아닐까/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 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작가는 서울에서 원주로 옮겨와 작은 텃밭이 딸린 집을 마련해서는 텃밭도 가꾸고 바느질도 하면서 글을 썼다. 장편소설 ‘토지’ 몇 편이 그 원주 집에서 탈고됐다. 지금 박경리문학공원에 이어져 있는 집이었다.

“고추밭에 물 주고 배추밭에 물 주고 떨어진 살구 몇 알 치마폭에 주워 담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닭 모이 주고 물 갈아주고 개밥 주고 물 부어주고 고양이들 밥 말아주고 연못에 까놓은 붕어새끼 한참 들여다본다/ 아차! 호박넝쿨 오이넝쿨 시들었던데 급히 호스 들고 달려간다….”

‘아침’ 이라는 타이틀의 글이다. 텃밭의 식물들은 물론이고, 닭과 개, 고양이, 심지어 연못 속 붕어까지 관심을 주고 정을 쏟는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부산하게 움직여야 하는 일상적인 아침이었던 것 같다. 이런 글을 보고 있는데 눈에 띄는 약간 다른 글씨체의 글이 보였다.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타이틀로 박경리 작가의 친필 글이었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쳐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목에 힘주다 생긴 혹이 내 머리에는 없는지, 연유는 모르지만 아픈 것은 없는지 등의 부질없는 단상들이었다. 나아가 요즘 한국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고 있는 최순실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 등도 누군가 목에 힘주다 사달이 난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도 들었다.

또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서 논란이 일고 있는 소녀상 문제도 혹시 문틀에 머리 부딪치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남과 다투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다툴 일을 묻어두고 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목을 세우는 일은 쉽지만 낮추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정유년 닭띠 새해 아침에 원주에서 내게도 우리 집안에도 나아가 우리나라한테도 올한해에는 목에 힘을 주다가 문틀에 부딪쳐 아픈 혹이 생기는 일이 없기를 기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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