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O 성인”… 재일동포 청년들의 꿈과 도전
“LET’S GO 성인”… 재일동포 청년들의 꿈과 도전
  • 민단신문
  • 승인 2017.01.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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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맞이한 자이니치(在日)… 정체성에 대한 생각과 장래 포부

올해 신(新)성인을 맞이한 대상은 1996년 4월2일부터 97년 4월1일생까지다. 85년, 일본 국적법 개정에 따라 국제결혼에 의한 다중(多重)국적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성인이 된 대부분은 ‘차세대 육성은 어린 시절부터’라는 슬로건으로 민단이 2001년부터 시작한 어린이 잼버리와 그 후속 사업으로 중·고등·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세대 모국 방문(2015년부터 차세대 여름학교)에 참가한 경험자들이 많았다. 민단의 차세대 행사 및 학생·청년회 행사에 참가했던 스무 살 성인들로부터 그동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하며 재일동포와 민족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시켜 왔는지를 알아보고 장래 포부도 들어봤다.

▲ 왼쪽부터 정선희(鄭善姫, 城西国際大学), 김미화(金美華, 関西大学), 남우미(南優美, 関西学院大学)씨.

“민단서 만난 동료, 진솔한 고민 나누는 소중한 재산”
이바라키현 출신 정선희(鄭善姫)씨… 죠사이국제대학 2학년

나는 한국에 있는 친척을 자주 만나러 갔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일반적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민단 행사에 참가한 덕분에 재일동포 친구가 생겼다. 일본 친구들에게는 하지 않은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겨 나의 고민도 줄었다.

간호학부 수업에 바빠 일정이 맞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가능한 민단 행사에 참가하려고 한다. 행사에 참여하며 많은 동료들을 만나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주변에 동포 학생이 있다면 초대해 그러한 모임들을 소중하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 민단 행사를 모르는 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더 많은 동료들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여행하며 다양한 세상 보고 싶어”
오사카 출신 김미화(金美華)씨… 간사이대학 2학년

초등학교 때 ‘뿌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민족학급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의식이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동포들이 거의 없는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주위 일본 친구들과의 다름을 알기 시작하면서 역시 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은 대학생으로서 재일한국학생회 행사에 참여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고등학교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두려워 자이니치(在日)임을 숨겼지만, 동포 친구가 생김으로써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학생회에서 만난 친구라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마음의 지주’로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소통하는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고 싶다. 스무 살이 된 지금, 다양한 세상을 보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항공 관계의 일에 종사하는 것이 목표이며, 지금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한편으론 자이니치이기에 위축된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자이니치여서 한국과 일본 양쪽의 좋은 모습들도 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감을 갖고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좋은 추억 쌓을 수 있는 민족클럽
오사카 출신 남우미(南優美)씨… 간사이학원대학 2학년

나는 초등학교 민족클럽에서 사물놀이 연습에 힘썼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전교생 앞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당시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참가한 어린이 잼버리에 참여하면서 민족클럽이라는 좁았던 동포세계가 단번에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재일한국인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통해 처음으로 자이니치인 자신이 뿌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또, 대학 1학년 여름학교에 참가한 후 학생회의 존재를 알았고 거기서 많은 친구가 생겼다.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뿌리를 소중히 하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어린이 잼버리에서 리더의 존재는 내게 아주 컸고,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리더로 참여해보고 싶다.

민단 학생회에 참여하면 일본 전역과 한국에 친구가 있게 된다. 앞으로 모두 모였으면 좋겠다. 나의 뿌리가 있는 나라를 체감하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 잠깐이라도 한국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민단과 학생회 행사는 많은 만남이 있어 정말 즐겁다.

▲ 왼쪽부터 이수빈(李受嬪, 早稲田大学), 강우희(姜優姫, 白百合女子大学), 조(趙)미도리(拓殖大学) 씨.

자이니치의 놀라운 민족의식
서울 출신 유학생 이수빈 씨… 와세다대학 2학년

나는 한국 태생의 평범한 한국인이지만, 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인’으로 재인식을 한적 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학교 주위도 대부분 미국인이었다. 친구들에게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면 항상 “어느 나라?”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한국이라는 나라는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를 아버지에게 얘기한 적도 있다. 아버지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라고 했다. 고등학생 때 국제교류 일환으로 일본의 자매학교에 연수를 왔고, 그곳에서 재일동포 학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고 한국어를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재일한국인”이라고 자신 있게 자기소개를 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친구는 한국에 간 적도 없고 한국문화도 배우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을 자신의 모국이라는 강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유학생활 중 한 사람이라도 더 재일동포 학생들과의 연결을 넓히고 싶다. 자란 환경은 달라도 뿌리는 같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는 기념할만한 해를 일본 유학생활 속에 맞이한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에 대해서도 재발견하는 2017년이 됐으면 한다.

동포와의 만남, 그리고 정체성 확립
미야기현 출신 강우희(姜優姫)씨… 센다이 시라유리여자대학 2학년

민단과의 관계는 초등학생 때부터다. 임간학교(林間学校, 숲속학교)나 어린이 토요학교에 다녔다. 또, 조부모가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계셔 어릴 때부터 일본과 한국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민단의 모국연수, 학생회의 KSJ(재일대학생 잼버리), KSJW(동계 재일대학생 잼버리) 등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자이니치 동료들과 친분을 쌓은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을 해왔다.

자이니치 동료들은 모두 자신감을 갖고 있고, 주위를 받아들이는 관용 능력도 있다. 나 자신의 불안정함을 통감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때마다 뭔가 긍정적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 언론계에 진출할 생각인데, 초등학생 시절부터 흔들림이 없는 꿈이었다. 대학 수업 이외에 전문 학교에 다니고 있고, 필드 스터디(field study)도 늘리고 싶다.

유엔에서 평화로운 세상 만들고 싶어
후쿠시마현 출신 조(趙)미도리 씨, … 다쿠쇼쿠대학 2학년(학생회 중앙조직부장)

아버지가 일본인이어서 나도 국적이 일본이다. 한국에서 시집 온 어머니가 차세대 여름학교의 정보를 가르쳐 주셨다. 대학 1학년 때이다. 처음엔 저항감이 있었지만, 새로운 교류의 기회라고 생각해 참가했다. 자이니치를 피부로 배우며 “나 자신도 한국에 뿌리를 둔 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이니치 동료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조언해 줬다. 자이니치와 일본인과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고등학교 때 아프리카의 빈곤과 분쟁 등을 배운 후 조금이라도 세계평화 실현에 공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대학에서 국제학부를 선택했다. 미래는 유엔 등의 관련기관·단체에서 일을 하며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기여하고 싶다.

▲ 왼쪽부터 안향내(安香奈, 国際基督教大学), 장유리(張有李, 上智大学), 정미영(鄭美瑛, 玉川大学) 씨.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싶어
시가현 출신 안향내(安香奈)씨, 국제기독교대학 2학년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다. 여권 색깔이 다른 것, 친구들과 달리 별도로 재입국카드를 쓰면서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여름 모국연수에 참여했다. 나 자신과 같은, 그것도 매우 많은 재일한국인과 접촉하는 기회는 처음이었다. 자이니치 친구들과 교류한 것 자체가 나에게 큰 변화였다.

앞으로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예술 계통에서 종사하고 싶다. 현재 큐레이터 과정에 등록하고, 박물관 및 전시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다. 큐레이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문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장래 그러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예술과 문화 연구가 활발 영국에서 공부하며,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인턴 등을 해볼 생각이다.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은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단과 학생회 행사에 참여하며 즐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아동 전문가 되고 싶어
도쿄 출신 장유리(張有李)씨… 죠오치대학 2학년

장유리라는 민족명으로 생활해 온 나는 철이 들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각이 들었다. 어린이 잼버리나 토요학교와 참여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더 강하게 의식했다. 특히, 동경한국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나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의식마저 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어린이 잼버리나 어린이 여름캠프에 리더로 참가하면서 차세대 아이들이 자이니치로 자각하고, 자신감과 용기를 갖길 희망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동 요양 지원 전문가를 통해 자극을 받았고, 아이들을 마법 같은 언어로 보살피며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동 요양 지원 전문가가 되기 위해 먼저 임상 심리사 자격을 취득해야 해서 현재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 깊이 배워 대학원에 진학해 임상 심리사 자격을 취득함으로써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싶다.

해외유학 통해 어학 단련하고파
홋카이도 출신 정미영(鄭美瑛)씨… 다마가와대학 2학년

나의 뿌리가 한국이라고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다. 집에서 한국어를 듣거나 한국요리가 나오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재일동포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에 참석한 어린이 잼버리가 계기였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며 재일동포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미래는 영어를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은 대학에서 유학생 지원팀에서 활동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 어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민단과 학생회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되도록이면 참가하고 있다.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고 스스로 재일동포임을 자각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교환할 할 장소가 있는 것은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사 등에 참가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 왼쪽부터 김유카리(金由香理, 同志社大学), 김양비(金良妃, 駒沢大学), 성결향(成結香, 武庫川女子大学) 씨.

넓고 다양한 시야 확대해야
오사카 출신 김유카리(金由香理)씨… 도시샤대학 2학년

재일한국인이 많은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민족학급을 다녔고, 중학교에서는 조선문화연구회에서 한국이나 자이니치에 대한 것을 배웠다. 클래스메이트 절반 이상이 자이니치였기에 나 자신이 한반도에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학생회의 정례 행사 참가로 점점 친구가 늘고 있다. 짧은 만남이지만 모두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스무 살을 맞이해 생각한 것은 일본, 한국 2개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먼저 영어와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우선 회계사 자격 취득!
교토 출신 김양비(金良妃)씨… 코마자와대학 1학년

초등학교 시절 지역 민단 주최로 아쿠아리움에 갔다. 최근에는 지난해 여름학교에 참여했다. 여름학교에서 만난 재일동포 친구는 대학 친구보다 나와 같은 처지의 동료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민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장래 회계사가 되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 회계학에 대해 배우고 있다. 회계학의 재미를 발견하고 이를 살려 관련 일을 하고 싶다. 또 회계학 전공 세미나에 들어가 자격을 취득 할 계획이다. 나는 모국어를 자주 접하고 배우면 모국과의 거리도 좁혀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재일한국인과의 멋진 만남
효고현 출신 성결향(成結香)씨… 무코가와여자대학 2학년

나는 일본 이름으로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한국인임을 아무런 저항 없이 털어놓고 있다. 그 계기는 고등학교 때 조선장학회의 여름캠프에 참가하고, 처음으로 재일동포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때 비로소 민족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해 가면서 동포 친구도 점점 늘어가고, 자이니치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 나도 스무 살이 된 소중함을 가슴에 새기고 활동의 영역을 더욱 늘리고 싶다.

▲ 왼쪽부터 이화주미(李花朱美, 白百合女子大学), 김재희(金在希, 南山大学), 이석민(李碩敏, 早稲田大学) 씨.

민단을 통해 동포와의 깊이 있는 소통
미야기현 출신 이화주미(李花朱美)씨… 센다이 시라유리여자대학 2학년

청년회 동료로서 결혼한 부모님과 함께 민단의 행사에 끌려갔기 때문에 철들었을 때부터 한국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린이 여름캠프나 잼버리는 빠짐없이 참가했다. 또 매년 여름 센다이 칠석(七夕)에 민단이 진행하는 사물놀이 퍼레이드 등에도 참가해 자이니치에 대한 깊이를 알게 됐다.

대학생이 된 지난해 정식으로 청년회의 회원으로 등록돼 지금은 나도 사물놀이의 멤버로 가세했다. 태어날 때부터 재일한국인에 대해 친밀했으므로 특별히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전국의 또래와 알게 된 어린이 잼버리는 충격적이었다.

어릴 때는 고고학자가 꿈이었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 아직 확실한 목표가 정해져 있진 않다. 하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

다양한 경험 쌓아 세계에 공헌하고 싶어
아이치현 김재희(金在希)씨… 난잔대학 2학년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서울에 살았다. 부모님 일 때문에 나고야에 살게 됐는데, 원래 한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재일동포 동료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차세대 여름학교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경험을 통해 친구의 테두리가 넓어졌다. 앞으로 모국연수나 학생회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취해 가고 싶다.

어린 시절의 꿈은 프로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 재일한국인 초등학생의 풋살팀의 코치를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양한 형태로 뭔가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지원하고 싶다.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세계를 누비는 직업을 갖고 싶다.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래서 지금 영어와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후배들이 스포츠와 놀이, 공부 등 모든 분야에서 미래에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몰두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내에서 자이니치 더욱 알리고 싶어
서울 출신 이석민(李碩敏)씨… 와세다대학 2학년(유학생)

내가 처음으로 학생회 존재를 알고 참여한 것은 2015년 KSJ였다. 일본 전국의 재일동포들이 모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장소는 유학생인 나에게 흥미로운 곳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해 재일한국인 역사를 배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라 온 환경이 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긴 것이 기뻤다.

자이니치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민단과 총련으로 나뉘어있는 재일동포사회에 대해 국내에서는 전혀 공부하는 기회가 없었다. 또, 내 눈 앞에 있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위기감도 느꼈다. 지난해 와세다대학 한국인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민단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학생회와 공동 행사로서 세미나를 열어 유학생 동료들에게 자이니치를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

올해 스무 살을 맞이한다. 성인이면서 학생인 내가 지금까지 자이니치 친구들과 교류하며 한일관계, 재일동포 법적지위와 신정주자 등에 대해 깊이 논의함으로써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고 싶다. 무엇보다 유학생으로 한국 내에서 자이니치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학생회가 앞으로 재일한국인 학생에게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조직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 왼쪽부터 최성호(崔城豪), 기용수(奇龍寿, 沼津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윤주작(尹周作, 名城大学) 씨.

즐거운 재일동포 행사에 적극 참가하자
이바라키현 출신 최성호(崔城豪)씨… 사회인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민단의 존재를 알았다. 그때는 무엇을 하고 있는 단체인지 몰랐지만 이모가 민단 부인회였기 때문에 행사 끌려갔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므로 어릴 때부터 정체성 자각은 있었다. 본격적으로 자이니치로서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의 모국방문이었다. 처음에는 이모 권유에 마지못해 갔는데 같은 동료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이렇게 즐거운 이벤트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때 만난 친구는 지금도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동료는 정말 소중한 것이며,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인간 혼자서는 힘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상담 등 편하게 할 수 있는 동료가 중요하다고 실감하고 있다.

지금의 꿈은 어쨌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촌 부부를 보고 있으면 행복한 것 같아서 나도 이런 가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후배 여러분, 앞으로 다양한 재일동포 행사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교류 관계를 맺길 바랍니다.

전국에 있는 동료들, 용기 솟아나
카나가와현 출신 기용수 씨… 누마즈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2학년(학생회 중앙본부 회장)

내가 사는 지역은 대부분 동포가 없고 부모님도 3세이므로 어린 시절은 민단과 조국과의 만남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정월과 추석에 빠지지 않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막연히 나는 한국 사람이라는 걸 생각했다.

민단 행사에 처음 참가한 건 고등학생 때 차세대 여름학교부터다. 전국에 이렇게 많은 동료가 있다는 걸 알고 매우 기뻤고 용기가 솟았다. 조국과 재일동포 역사를 함께 배우고 자이니치라는 뿌리의식과 자부심도 가졌다. 의기투합한 여름학교 동료들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있다. 그런 인연이 닿아 지난해 재일한국학생회장을 맡았다. 지난 1년 많은 선배와 동포학생, 유학생들을 만나며 자극을 받았다.

올해 학교를 졸업하면서 학생회도 졸업한다. 조금 섭섭하지만 다음은 청년회에 가입해 재일동포 사회가 더 잘되도록 미력이나마 활동을 하고 싶다. 스무 살이 된 것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재활용사업을 잇기 위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재일동포와의 대화는 내게 큰 자극
아이치현 출신 윤주작(尹周作)씨… 메이조대학 2학년(학생회 아이치본부 회장)

한국에서 시집 온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대한기독교의 교회에 다닌 적도 있어 한국과 재일동포와의 만남은 낯설지 않았다. 또, 일본인(국적)인 한국인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은 프로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월드컵 영향 때문에 일본 전역에서 축구 열기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무렵, 솔직히 한일전에서 일본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돼 재일동포 동료들과 만나 한국인으로서의 자각이 높아졌고, 지금은 100% 한국을 응원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만들어 준 잡채나 삼계탕은 지금도 매우 좋아한다. 입맛에 맞는다고 할까? 역시 한국인 혈통인 싶다.

민단 참여는 대학생이 되고나서 참여한 차세대 여름학교가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 완전히 일본인화 돼 있었지만, 전국의 동포 대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세계가 바뀌었다. 일본인에 비해 미래의 꿈을 분명히 갖고 있는 동포들이 많아 나에게 큰 동부부여가 되고 있다. 스무 살을 맞이해 미래의 목표를 확실히 결정하는 한 해로 삼고 싶다. 선배들이 이러한 행사로 연결돼 나왔듯이 청년회 등에도 참가하며 동포끼리의 유대감을 강화했으면 한다.

▲ 왼쪽부터 장재훈(張在勛, 拓殖大学), 김희창(金熙昌, 호스피탤리티투어리즘전문학교), 김민장(金敏章, 湘南工科大学) 씨.

해외 협력대에서 경험 쌓을 터
미야기현 출신 장재훈 씨… 다쿠쇼쿠대학 2학년

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가진 한·일 혼혈이지만 초등학생 때 한국에 6년 거주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꿈은 많은 아이들이 동경하는 프로축구 선수였다. 축구클럽에도 들어가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중학교부터는 일본에서 축구를 계속했고, 고교 축구 명문학교에 들어가 전국대회에도 출전했다. 이때 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콤하지 않았다. 벽에 부딪혀 대학 입학 전에 축구와 결별했다.

부모님을 떠나 혼자 상경하는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같은 대학에 다니는 재일한국학생회 친구들을 알게 됐다. 그 친구의 권유로 학생회 행사에 참여하며 자이니치 동료들을 만들 수 있었다. 내 꿈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욕심을 낸다면 청년 해외 협력대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을 살려 개발도상국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해 왔다.

“테마파크 프로페셔널로”
효고현 출신 김희창(金熙昌)씨, 호스피탤리티투어리즘전문학교 오사카 2학년(학생회 오사카본부 회장)

어린 시절은 귀향한 어머니와 함께 자주 한국에 가곤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자각은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현지에서는 세 끼 모두 한식이었기 때문에 입맛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 가운데,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전국의 자이니치 동료 350명과 함께 한 어린이 잼버리. 그토록 많은 동료들과 지낸 5일 동안 모든 것이 즐거웠고, ‘한국인이어서 좋았다’고 느꼈다. 학생회를 통해 알게 된 동료들과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는 한국인 유학생도 많고, 그들 모두와도 관계를 넓혀 가고 싶다.

어린 시절은 보물 사냥꾼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 모험 정신은 지금도 갖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학교(테마파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USJ(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도 쌓고 있다. 테마파크의 전문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

“목표는 엔지니어”
도쿄 출신 김민장(金敏章)씨… 쇼난공과대학 2학년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토요학교에 다니고 한국어를 공부했다. 자이니치를 자각한 것은 할아버지에게 한국 이야기와 일본에 온 경위, 민단활동 등을 접하면서부터다. 초등학교 동급생이었던 현 학생회 중앙부회장과 현 청년회 도쿄 아라카와 지부 회장인 정창황(鄭昌晃)군의 초대로 대학 2학년 때부터 학생회와 청년회의 이벤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같은 뿌리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동료가 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뿌리를 가진 사람끼리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사회에 나오면 자유시간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학생시절 해외와 국내의 많은 지역을 방문하고 싶다. 장래 꿈은 엔지니어로서 사람들의 삶을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에서 관련수업을 받고 있으며, 4년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섭취하고 싶다.

▲ 왼쪽부터 김유명(金悠明, 京都学園大学), 정창황(鄭昌晃, 尚美学園大) 씨.

학생시절 재일동포 행사 적극 참여하자
교토 출신 김유명(金悠明)씨… 교토학원대학 2학년

초등 4학년과 6학년 때 여름방학에 개최하는 어린이 잼버리에 참가했다. 대학에 들어가 청년회 학생회에도 참여해 재일한국인 친구도 늘었다. 재일한국인이란 자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정도부터다. 그 뒤 민단 차세대 모국연수 및 학생회 KSJ나 이벤트에 참여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재일한국인과 친구가 되고 지방에 갈 때는 연락도 주고받으며 함께 교우했다.

나는 학생시절 가급적 이벤트 참가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 취업해도 청년회에 참가하거나 학생회 친구들과도 계속 관계를 맺고 싶다. 장래 희망은 명확하지 않지만, 학생 시절을 보내며 추후 결정하려고 한다.

“매년 동포들과의 만남이 즐거워”
도쿄 출신 정창황(鄭昌晃)씨… 쇼비학원대학 2학년(학생회 중앙본부 부회장, 청년회 도쿄 아라카와 지부 회장)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린이 여름 캠프에 참여하라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다. 그 전까지는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나와 같은 뿌리를 가진 동료들과 만나 어울리는 재미를 느꼈다. 그 후 매년 참가하게 됐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 현재에 이르기까지 차세대 모국연수에 참가하고 있다. 1년에 1회, 동료와 재회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아버지가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어 나도 카메라 등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영상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일을 하려고 한다. 자이니치라고 자각한 데에는 역시 본명 정(鄭)을 갖고 생활해 온 탓도 있다. 호칭이 주위 일본인과 달라 ‘나는 한국인인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자이니치 동료를 알게 됐고, 일본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처지이기에 무엇이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가 자이니치임을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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