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훈 글밭] 한국 TV를 보며
[백훈 글밭] 한국 TV를 보며
  • 백훈 샌디에이고 한인뉴스 발행인
  • 승인 2017.01.20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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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훈<샌디에이고 한인뉴스 발행인, 세계한인작가연합 회원>
미국에 이민 와서 오히려 한국영화며 TV드라마를 즐겨보게 되었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토요일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브런치를 먹은 뒤 침대에 기대어 한국영화나 TV프로그램을 보곤 하는데 그런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예전에 TV드라마를 끼고 앉아 있던 누나며 여동생들을 한심스럽게(?) 여기던 것이 미안한 마음이다. 정말 남들 사는 모양 함부로 흉볼 것 아니라던 어머니의 말씀이 세월이 갈수록 실감이 난다.

한국에 있을 때는 TV라면 저녁 9시뉴스만 주로 보았다. 회사며 집에서 신문들을 끼고 살면서도 일과처럼 보았으니 정말 뉴스에 왜 그렇게 목을 맸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 스스로 해답을 찾자면, 뉴스를 보지 않으면 세상 정보에 어두워 무슨 손해나 낭패를 당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신문도 TV뉴스도 거의 보지 않고 살게 되었는데 이것도 습관이 되다보니 답답함도 없고 무언가 손해 볼 것 같은 불안감도 없다. 물론 요즘에는 책상에 앉으면 인터넷을 통해 잠깐잠깐 세계의 뉴스들을 실시간 접하고 있으니 따로 챙겨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점도 있긴 하다.

한국의 친구들이 다소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모처럼 한국에 나가면 나는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불안정하잖아. 정치 경제 사회가 다 불안정하니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살 밖에 … 뉴스를 모르면 마치 어두운 길을 걷는 것 같고 가다가 함정에라도 빠질 것 같은 그런 불안감 때문에 뉴스를 끼고 살았던 것 같아. 하지만 미국은 안정이 되었잖아. 그냥 평탄한 길에 나를 맡기고 걸어가면 되거든. 적어도 불쑥 나타날 함정 같은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 그렇다 보니 뉴스도 잘 안 보게 된 것 같아.”

한국 TV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이 어째 이민예찬으로 흐른 것 같은데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반대로 한국의 괄목할 발전에 대한 소회다. 내가 이민을 떠나 올 때만 해도 주위의 사람들은 풍요한 선진국으로 가는 것을 부러워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한국을 방문하면 ‘미국 촌놈 왔네’ 라며 친구들은 농담 반 안부의 말을 던지곤 한다. 요즘은 동포들끼리도 ‘한국이 저렇게 잘 살게 된 것을 보면 괜히 이민을 왔다는 생각이 들어’라는 말을 곧잘 나누기에 이르렀으니 정말이지 한국의 경제가 문화가 오늘날처럼 발달이 될 줄은 누구도 짐작을 하지 못했었다.

한국 TV를 볼 때마다 나로서는 정말 친해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예전의 ‘웃으면 복이 와요’로부터 ‘개그 콘서트’ 등에 이르기까지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봉숭아 학당’이라는 것이 인기를 끈다기에 애써서(?) 몇 번 보다가 돌려버린 기억이 있다. 요즘도 화제를 모으는 코너들이 있으면 일부러 찾아보곤 하는데 정말이지 쓴웃음만 짓다가 돌려버리게 된다.

‘취미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격언도 있듯이 누구는 코미디를 더 좋아하고 누구는 스포츠중계를 혹은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고 뭐라 할 것도 없다. 그런데 나로서는 많은 이들이 즐겨본다는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지 못하는 자신이 한편으로는 딱하다. 나는 여행에도 취미가 없고 스포츠라면 구경하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큰 집이며 좋은 차에 대한 애착도 없다. 맛있게 음식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좋은 옷, 시계 등에도 별 관심이 없다.

이렇게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삶에 초연한 사람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살면서 이래저래 지출도 늘어나니 항상 걱정을 하면서 산다. 늘 모자라는 삶을 살다보니 작은 충격에도 마음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초라한 존재감을 느끼며 슬픔에 잠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그야말로 감정일 뿐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웃음을 위해 연출된 장면들을 보며 오히려 어떤 외로움을 느끼듯이 세상적인 가치관보다도 영적성장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이 내게 역설적으로 삶에의 안정감과 긍정적인 인식을 태도를 준다.

한국영화며 TV드라마를 보는 한편 내가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기에 누리는 한 가지 호사가 있다. 토요일이나 휴일 오후에 아내와 함께 집에서 5 분이면 닿는 바닷가 토리파인의 모래사장에 앉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곤 한다. 간간이 바다를 바라보려면 소설보다는 시집이나 수필집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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