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밥터에서
미루나무는 참 키도 크다
저렇게 의연한데
지난 밤 비바람에 슬피 울었다
모진 풍파에
밤 세워 뒤척인
이 방랑자와 같이
해맑은 초록의 아침
저 미루나무 숲은
인자한 할미 품 같구나
까치도 품고
구름도 품었다
그 품속에 나도 안겼다
어릴 적 고즈넉한 산 중
외딴 초가집 울타리엔 같이 살던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있었다
꿈을 심어 주던 등대였고
옛날 얘기 들려주던 할미였다
두란 우물가에 강아지 드나들며
나와 누이동생 소꿉장난 하던
엄마 품 같던 수수깡 울타리
횃닭 마저 슬피 울던 날
새들의 둥지가 되 주었던 지붕을
붉은 기와로 덧씌우더니
미루나무에 잇대 맨 울타리도 헐었다
동네 영감님들
여엉차 영차 미루나무를 켜기 시작했다
아무 감정도 없이
미루나무는
나와 같이 하염없이 울었다
지난밤처럼
여기 청양취*의 저 미루나무들
이방인의 담장 되어줘 고맙다
마음에 안식처 되어줘 고맙다
이곳도 머지않아
이 도시의 야수 같은 포획자들이
저 숲도 구슬피 울게 하겠지.
그 전에 미련 없이
이 회색 담장을 떠나야겠다
갈산(葛山)에 매봉재 품으러
미루나무가
산이 되고
집이 되어
동화(童話)가 되는.
*청양취: 칭다오시 성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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