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의 음식기행] 쉬저우 요리 스토리텔링
[안상윤의 음식기행] 쉬저우 요리 스토리텔링
  •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 승인 2017.02.1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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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중국은 역사가 유구한 만큼 스토리를 안고 있는 요리가 많다. 2016년 12월에 찾았던 쉬저우(徐州)에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식이 많아 흥미로웠다.

쉬저우는 지금은 강소성(江蘇省) 관할이지만 1954년 이전에는 산동성(山東省)에 속해 있었다. 산동성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리는 태항산(太行山)의 동쪽에 위치한 데서 명명됐다. 황하(黃河) 하류 유역이고 평야 지역이라 중국의 문명이 시작되고 역대 왕조가 들어섰던 곳이다. ‘세계 4대 문명’이라 일컫는 ‘황하 문명’의 발상지이고 주(周)에서부터 제(齊)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조의 터전이었다.

당연히 이 지역이 배출한 영웅호걸들은 차고도 넘친다. 순(舜)임금을 비롯 팽조((彭祖), 관중(管仲), 포숙(鮑叔), 환공(桓公), 항우(項羽), 유방(劉邦), 제갈량(諸葛亮), 조조(曹操)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서 팽조(彭祖)는 쉬저우의 옛 이름인 팽성(彭城)의 유래를 제공한 신화적 인물이다. 팽조는 주상하요은(周商夏堯殷) 등 여러 시대에 걸쳐 무려 8백 살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장수의 신(長壽之神)’답게 음식을 즐겼다. 팽조가 즐겨 먹던 음식들은 후세 사람들이 <팽조양생경(彭祖養生經)>에 담았다.

그의 음식들은 양생활신(養生活身)의 비법으로 여겨졌다. 팽조는 54세에 얻은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강에서 낚시하는 걸 엄금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의 금지령을 어기고 강에서 월척을 낚아 올려 집으로 들고 온다.

아버지에게 야단맞을 걸 우려한 아들은 어머니에게 고기를 숨겨달라고 부탁하고, 어머니는 양의 배를 갈라 그 속에 생선을 숨긴 뒤 쪄서 내놓는다. 집으로 돌아온 팽조는 희한한 음식의 맛에 탄복하며 자초지종을 듣는다.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이 해프닝을 계기로 팽조는 이 요리의 마니아가 된다. 이른바 ‘양팡창위(羊坊藏魚)’의 전설이다. 쉬저우 사람들은 이 요리의 역사를 4천년이라 말하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로 자부한다.

이 요리에서 비롯된 글자가 ‘선(鮮)’이다. 글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양(羊)’과 ‘고기(魚)’의 조합으로 ‘고운(鮮)’ 맛을 의미한다. 닭을 썰어서 생선 모양으로 배열한 이 음식 역시 ‘양팡창위’의 스토리텔링을 엿보게 한다.

옛 음식이라 지금은 일반적인 요리에 끼이지 못 하지만, 쉬저우 사람들은 육류 재료로 생선 모양을 만들어 고기와 생선을 융합해 ‘고운’ 요리를 개발했던 옛 고사를 반영한다. 쉬저우 사람들의 일반적 아침 식사인 ‘라탕(辣湯)’ 역시 생선과 육류의 조합이다. 장어와 닭고기를 돼지 뼈 우려낸 육수에 넣어 푹 끓이면서 계란, 양파, 생강, 후추 따위를 가미한 것이다.

▲ 라탕(辣湯)
이 탕에 만두를 곁들여 먹는 게 이들의 아침 메뉴이다.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콩국(豆漿, 떠우쟝)과 튀김(油條, 여우탸오)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데 비해보면 쉬저우의 라탕은 확실히 이채를 띤다.

조리가 간단하지 않은 까닭에 집에선 잘 해 먹지 않고 대부분 밖에 나와서 사 먹는다. 이름은 ‘매운탕’이지만 매운 맛은 전혀 없다. 아마 후추를 넣는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부쳐진 것으로 보인다. 쉬저우의 종로쯤에 해당하는 南民主路 후부산(戶部山) 옛 거리 초입에 위치한 양라이펑(兩來鳳)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쉬저우 최고의 ‘라탕’ 맛집이다. 같은 재료 다른 이름인 사탕(蛇湯)과 함께 ‘천년지탕’, ‘천하제일탕’으로 불린다.

스토리를 간직한 쉬저우의 요리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빠왕비예지(八王鼈鷄)’이다. 이 역시 자라와 닭의 콤비네이션이다. 이 요리는 저 유명한 패왕 항우(項羽)와 우희(虞姬)의 러브 스토리를 반영한다. 항우와 우희의 이별 장면은 ‘빠왕비예지(覇王別姬)’로 불리며 중국의 경극이나 영화,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통한다. 이 일화는 중국인들이 애통해 마지않는 대목이다. 항우의 매력 때문이다.

‘역발산기개세’의 항우는 185cm의 건장한 체격이었다고 전해진다. 항우(項羽)는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이다. 정확히는 중국 문인들이 가장 애석해하는 인물이다.

역사적 결과만 받아들일 뿐,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와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 중국인들이 유일하게 “항우가 유방을 이겼더라면”하는 가정법을 쓰며 그를 추모한다. 그의 삶에는 영웅담과 사랑 이야기가 공존한다. 그와 관련된 주제어들만 해도 역발산기개세, 서초패왕, 패왕별희, 배수진, 십면매복, 금의환향, 사면초가, 권토중래 등이 있다.

지금까지도 익히 쓰는 말들이다. 조선 조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해 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조의제문(弔義帝文)도 항우가 초나라 의제(義帝)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던 일화에서 따 온 것이었다. 항우는 신화를 쓰려다 스러져간, 그래서 후대의 시인들이 다투어 그를 애석해 하는 시를 짓게 만든, 일대 영웅이었다.

BC 232년에 태어나서 3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숙부 아래서 자라며 병법과 무술을 익혔다. 어릴 적 삼촌을 따라 이주해 살았던 강소성 회계(會稽)에서 시황의 행렬을 보고 “언젠가 저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말리라”라고 읊었을 정도로 그는 일찍부터 영웅의 면모를 보였다.

 
그가 진을 멸하고 스스로를 ‘서초패왕’이라 칭하며 팽성대전에서 유방의 59만 병력을 정병 3만으로 격파한 후, 팽성(彭城, 지금의 쉬저우)을 수도로 삼아 26살의 나이로 ‘패왕(覇王)’에 등극하기까지 그의 시간들은 찬란한 승자(勝者)의 기록이었다.

늘 패하기만 하던 유방이 한신과 장량을 앞세워 그를 추월한 후로 항우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패자(敗者)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자신이 사랑한 우희와 애마 추도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모두 삶을 마감했다. 오강의 전투에서 패한 후 그가 우희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읊은 시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騶不逝
騶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힘은 산을 뽑을 듯 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만 한데
운이 따르지 않으니 추도 달리려들지 않는구나
우희야 어찌하면 좋으냐

항우가 이 시를 읊자 우희는 조용히 칼로 목을 베어 자진한다. 그 유명한 ‘패왕별희(覇王別姬)’, 패왕이 우희와 이별하는 장면이다. 천년 후 당대의 시인 두목(杜穆)이 오강(烏江)의 객사에 머무르다 해하지전(亥下之戰)에서 오강의 정장(亭長, 면장)이 “강동으로 돌아가서 재기하라”고 권했으나, “8천 장정들이 모두 죽었는데 나 혼자 살기를 바라겠느냐”며 자진한 사실을 떠 올리며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시 <題烏江亭>을 썼다.

‘다시 힘을 내서 재기를 도모한다’는 뜻의 ‘권토중래(捲土重來)’는 이 시에서 비롯됐다.

勝敗兵家不可期
包羞引恥是男兒
江東子第多英俊
捲土重來未可知

승패는 병가에서 알 수 없는 일
수치를 견디는 것도 남아가 할 일
강동의 자제들은 얼마나 영준한가
다시 힘을 모아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쉬저우의 요리 ‘빠왕비예지(八王鼈鷄)’는 이 역사적 에피소드 ‘빠왕비예지(覇王別姬)’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패왕별희(覇王別姬)와 발음이 같은 자라(八王, 鼈)와 닭(鷄)을 요리 재료로 삼아 항우와 우희의 스토리를 담았다.

사람들은 ‘覇王別姬’라 읽고 ‘八王鼈鷄’로 이해한다. 전형적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그 덕에 지금은 고급 호텔에서만 취급하는 비싼 요리가 되었다. 쉬저우를 찾는 나그네들은 한 번쯤 항우를 입에 올리며 그의 일화가 서린 ‘패왕별희’를 맛보고 싶어 한다. 음식은 스토리로만으로도 취하고 싶어지는 대상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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