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의 음식기행] 한류의 효시, 맥적(貊炙, 불고기)
[안상윤의 음식기행] 한류의 효시, 맥적(貊炙, 불고기)
  •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 승인 2017.02.1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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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시절, ‘불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였다. 석쇠 위에서 국물과 함께 보글보글 끓던 불고기는 그 모양과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 먹어 본 불고기 맛은 가공할 위력을 선보였다.

▲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불고기는 우리 민족의 오랜 요리였고, 북방 수렵민족 시절부터 시작된다. 중국 문헌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진(秦)대에 세상에 전해지는 기담들을 모은 <수신기(搜神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태시 이래로 지금껏 이민족의 음식인 강자(羌煮)와 맥적(貊炙)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주요 연회에는 반드시 맥적이 오른다. 이것은 융적(戎狄)이 쳐들어 올 징조다.”

‘강(羌)’은 쓰촨 서쪽의 유목민을 가리키고, ‘자(煮, zhu)’는 삶거나 끓인다는 뜻이니 ‘강자(羌煮)’는 회족의 양고기 ‘샤브샤브’ 쯤에 해당할 것이다. ‘맥(貊)’은 동북의 수렵민족 부여와 고구려를 지칭하고, ‘적(炙, zhi)’은 구운 고기를 뜻하니 ‘맥적(貊炙)’은 부여와 고구려 사람들의 불고기를 이른다.

진(秦)을 이은 한(漢)대에 이르러서는 맥적이 인기를 더해 ‘맥반(貊盤)’이라고 불린 연회가 성행했다는 기록도 있어 당시 한나라 상류사회가 불고기를 얼마나 즐겼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농경민족인 한(漢)족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수렵민족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던 까닭에 그 맛에 신선감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맥적’이라는 불고기가 ‘한류(韓流)’의 효시였던 셈이다.

맥적은 얇게 저민 쇠고기에 양념을 해 맛을 더 했다. 조선시대에는 간장이 이 양념 기능을 했다는 내용이 순조(純祖) 때 홍석모(洪錫謨)가 조선의 세시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숙종(肅宗) 때 홍만선(洪萬選)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 기록돼 있다.

“한양에선 화로에 숯불을 피워 놓고 번철(燔鐵)에다 조미한 쇠고기를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는 풍속이 있다.” 여기서 ‘조미한 쇠고기’는 간장으로 양념을 한 것이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온다. “우육(牛肉)을 썰어서 편(片)을 만들고 이것을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편 것을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유염(油鹽=전통간장)으로 조미해 유(油)가 충분히 스며들게 한 다음 숯불에 굽는다.”

불고기가 오늘날의 모양으로 바뀐 데는 재일동포들의 역할이 컸다는 게 롯폰기 ‘칸(KAHN)’ 등 일본에서 ‘야끼니꾸’ 가게를 운영하는 재일동포들의 설명이다. 2차 대전 패망 후 일본이 어려웠던 시절 잔류 동포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야끼니꾸(燒肉)’를 선보이면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일본인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끔 양조간장에 설탕과 과당, 양파, 생강 등을 첨가한 단맛 위주의 양념을 개발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을지로 우래옥에서 불고기를 먹을 때면 양념 국물에 무생채를 넣고 끓여 색다른 맛을 즐기기도 했는데, 이 집의 오랜 단골인 박규태 선배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불고기 양념은 그만큼 유혹적인 맛을 자랑한다. 지금의 불고기는 한일 합작인 셈이다.

맥적으로 시작해 불고기로 이어져 왔지만, 맥적의 흔적은 여전히 ‘너비아니’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맥적에서 너비아니로 이어져 온 시간의 더께가 이 음식 위에 켜켜이 쌓여 있다는 데 상도(想到)하면, 음식은 곧바로 감동이 된다. 너비아니는 한민족에 대한 시간의 기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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