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부정적 유산 상속자들”
[안영수의 문화칼럼] “부정적 유산 상속자들”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7.02.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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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는 세 살 때 어머니 ‘앤 불린’(Anne Boleyn)이 단두대 이슬로 사라지고 25세에 여왕으로 등극할 때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다. 런던탑에 갇혀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라틴어를 비롯해 수많은 외국어를 공부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를 괴롭히던 메리 여왕(Bloody Mary)이 죽자 왕위에 즉위해 45년간을 통치하며,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종교갈등으로 분열되고 당시 최강국 스페인의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려온 가난한 영국을 물려받았지만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종교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 많은 문인들과 과학자들을 배출했다. 영문학사에서는 그녀의 치세 기간을 <엘리자베스 시대> 또는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도 이 시대 배출된 극작가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그녀지만, 평생 살해의 위협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가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역사에 기술된 그녀는 단점이 많다. 변덕스럽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바른 말하는 신하는 처형하고 아첨하는 신하들을 곁에 뒀다. 질투심도 많아 궁중에서는 예쁜 여자는 발을 못 붙이게 하고 하녀가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가차 없이 처형했다. 외모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사치스러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지나치게 몸이 드러난 의상을 입어 스페인 대사는 자국 정부에 여왕과 알현할 때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른다고 불평하는 서신을 보냈다.(서양지성사, 157쪽)

이런 개인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국사를 챙기는 데 국익을 우선했다. 결혼을 권하는 신하들에게는 자기는 “국가와 결혼했노라”고 선언하고 지적 교양이 있는 신하들을 총애했고, 스스로 그리스, 라틴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읽었기 때문에 많은 외국 사신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트라우마’를 겪었다. 20대에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고 군부정권 기간에는 신당동에 칩거했으니 그간 겪었을 상실감과 분노는 얼마나 컸을까. 1998년 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정치 입문을 반겼다. 한국을 산업화시켜 잘 살게 해준 아버지 밑에서 훈련도 받았을 테고 독신으로 살며 오로지 자신을 국가에 바쳤다고 말했으니까. 게다가 유세 도중 괴한에 피습 당한 순간에도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준비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필자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한 표를 던졌다. 전임 대통령들이 가족들의 불미한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남편도, 자식도 없는 그녀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순실 농단 사건에 이어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가결 된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대통령의 진면목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가졌던 환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종합하면 그녀는 극도의 대인기피증, 결벽증,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의존증이 심한 것 같다. 통수권자가 어떻게 관저에 틀어박혀 비선 실세 외에는 누구하고도 소통하지 않을 수가 있었는지 불가사의하다. 언론에서 끊임없이 소통을 요구했지만 불통을 고집했다. 직언이나 고언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비선을 통해 명령만 하달했으니 그 틈새에 최순실 이하 아부꾼들만 득세했던 것이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위의 두 여성 지도자들은 부모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경험한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엘리자베스 1세는 아직까지도 세계적인 여성 정치인의 롤 모델이 된 반면, 박 대통령은 심각한 국정혼란을 야기해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운명에 처했는가?

이런 의문은 우연히 읽게 된 『미움 받을 용기』에서 그 해답을 찾은 느낌이다. 프로이트와 동시대 심리학자인 아들러(Alfred Adler)는 ‘트라우마’ 원인론을 부정하고, 인간은 자신의 과거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목적론을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53쪽)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따라서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다.”(67-68쪽)

엘리자베스 1세와 박근혜 대통령처럼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었는데도 사람마다 정신적 상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까닭은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원인론과 아들러의 ‘목적론’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상처를 평생 끌어안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그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을 사는 사람과는 삶에 대한 관점이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필자는 정신적인 외상(外傷)인 ‘트라우마’를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명명하고 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각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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