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의 음식기행] 빌바오서 맛본 스페인요리
[안상윤의 음식기행] 빌바오서 맛본 스페인요리
  •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 승인 2017.03.28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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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빌바오는 스페인 북쪽 바스크주의 주도이다. 이 도시는 인구 백만 명의 금융 중심지이면서 ‘맛의 도시’로도 꼽힌다. 대서양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해물들 덕이다. 전복, 문어, 홍합, 대구, 정어리, 멸치, 조개류 등이 다양한 맛을 제공한다. 가위 ‘맛의 천국’이라 불러도 좋을 도시이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이 도시엔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구겐하임(GUGENHEIM) 미술관이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내용물도 좋지만 건축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미술관은 빌바오 시내를 관통하는 강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멋진 외양을 뽐낸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2008년 봄 이 곳을 찾았다. “미술관은 외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광고입니다.” 빌바오 부시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이곳에 97년 11월 들어선 GUGENHEIM 미술관이 한해 백만 명의 관광객을 부르며 2억 유로(3천2백억 원)를 벌어들이는 까닭이다.

스페인의 북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빌바오는 철강과 조선으로 부자가 된 도시였다. 그러던 것이 8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공세로 산업이 몰락하며 극심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고민에 빠져있던 빌바오에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그 시작은 ‘미국의 GUGENHEIM 미술관이 몇몇 유럽 도시들을 상대로 분점 개설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데서 비롯됐다. 1억3,300만 유로, 2,0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이 소요되는 터라 유럽의 도시들이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빌바오의 정치인들이 나섰다. 시의회 의원들은 문화산업이 살길이라고 확신했다.

문제는 여론이었다, 시민들 대부분과 언론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해댔다. 그러나 현명한 빌바오 정치인들은 성실하게 여론에 호소하며 새 사업을 추진했다. 결과는 빅 히트였다.

오픈 첫 해인 98년 한 해 130만명이 찾으며 1억4,400만 유로를 벌어들였다. 투자액을 바로 회수한 것이다. 조선산업 시절 3,000명 고용이던 것이 이 미술관 탄생으로 4,000명의 고용효과를 냈다. 시민의 문화의식도 한층 제고되었음은 물론이다. 도시도 문화적으로 탈바꿈했다.

공항, 항만, 오페라하우스들이 모두 프랑크 게리 등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이다. 시민은 한 결 같이 그들의 도시에 강한 자긍심을 보인다. ‘구겐하임 효과(GUGENHEIM effect)’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문화가 도시발전을 선도한다는 얘기다. 빌바오는 자신의 선택을 ‘혁신(evolution)’으로 표현한다. 가위 혁명적 발상이었다.

그들 표현처럼 중요한 순간에 정치인들이 정략이 아닌 단호함을 선택했으며, ‘미래에 대한 씨앗을 뿌린 것이다. 처음엔 한국을 원망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고 있단다. 전화위복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 스페인 빌바오시 전경.

연간 백만여 명의 관람객 중 60%가 외국인이다. 대부분이 미술관 때문에 이 도시를 찾는다. 94년 29개이던 호텔이 51개로 늘어났고, 투숙객 수도 2만 4천 명에서 62만 3천 명으로 불었다. 크루즈도 4척밖에 없던 것이 지금은 45척이나 된다. 빌바오시는 조선소가 마지막으로 건설한 선박의 모형 조각품을 기념으로 남기고 관광도시로 재탄생했다. 이제는 관광으로 밥을 먹고 있는 것이다.

빌바오 시 부시장이 저녁 초대를 해주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스페인의 요리가 총망라된 듯한 느낌이었다. 빌바오는 프랑스 가까운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함께 금융의 중심지이자 문화관광의 명소라는 도시의 특성 덕에 스페인 요리를 모두 맛보기에 좋은 곳이다.

바스크 특산 마르미타코 게 요리와 이디아즈발 치즈는 물론이고 문어와 청어, 대구, 홍합 등을 찌고 튀기고 초절임하는 갈리시아 풍미와 양고기나 돼지고기에 올리브 기름과 마늘, 콩, 당근, 시금치를 가미하는 카스티야레온의 요리에다 리오하의 와인을 곁들인다.

 

세 지역 모두 빌바오가 속한 바스크 지방과 이웃해 있다. 동부 지중해 연안 발렌시아와 카탈루니아의 쌀 요리도 맛 볼 수 있다. 홍합, 대합, ‘뿔뽀(pulpo, 문어)’, 대구찜, 쇠고기새우볶음, 양고기 구이, ‘하몽 세라노’, 파스타 등을 와인 곁들여 먹고 끝나나 했더니 후식주가 또 나온다.

스페인 식당에는 식후 반드시 후식주가 따른단다. 와인보다 주도가 높은 3종류의 술이 제공된다. 마지막으로 초콜릿 디저트인 ‘추로(churro)’와 프랑스 식 ‘마들렌’ 과자가 후식으로 제공되었다. 식후에 꿀이나 과자를 먹는 건 800년 간 스페인 남부를 지배했던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다. 허리띠를 늘리지 않고서는 배길 재간이 없을 만큼 과식한 날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요리는 바스크 지방의 전통 요리인 ‘코코차 (kokotxa de bacalao)’였다. 식감이 좋고 맛이 독특했다. 종전에 경험하지 못한 맛이었다. 대구의 턱살 부분만을 발라내서 오일과 마늘을 넣고 약한 불에 냄비를 살살 돌려가며 끓여 턱살의 젤라틴 성분을 응고시킨 요리였다.

조리 과정은 간단한데 생선 살을 겔(Gel) 상태로 만드는 법을 개발한 점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대구 몸통만으로 찜을 해먹다 내다 버리던 대가리의 턱살 부분에 착목해 다른 식으로 요리할 생각을 한 그들의 유연성에 경의를 느꼈다.

“관광은 창조라기보다 재조정입니다.” 도시관광국장이 강조한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아이디어 나름에 따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 점을 꿰뚫어 보고 씨앗을 뿌려 봄을 준비한 빌바오 정치인들의 안목과 결단 그리고 추진력은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저녁을 먹는 동안 ‘관용과 창의력이 관광 정책의 요체’라는 빌바오 정치인의 철학은 빌바오의 음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스크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해 늘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열정을 숨기지 않지만, 바스크만의 맛을 고집하지 않고 스페인 전역의 맛을 모두 아우르는 요리 문화를 장려하는 것도 ‘기존 요소들을 재조정해서 관광의 콘텐츠를 강화한다’는 빌바오 관광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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