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公)'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정신
'공(公)'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정신
  • 이종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7.04.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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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 가이슈(勝海舟)는 왜 에도성문을 열었을까?
▲ 이종환 <객원논설위원>

‘공선사후(公先私後)’는 인촌 김성수선생의 좌우명이다. 동아일보 근무시절에 사무실에 걸린 이 글귀를 자주 접했지만 당시 공(公)이 뭔지 깊이 생각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세계한인회장대회 운영위원회 회의 취재차 동경에 갔다가 스미다 강가의 가츠 가이슈(勝海舟, 1823-1899) 동상을 보면서 공의 의미를 떠올릴 기회를 가졌다.

가츠 가이슈가 살았던 시기는 일본이 근대국가로 바뀌던 격동기였다. 도쿠카와 막부가 무너지고 왕정복고(1867)가 되면서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이 근대국가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수많은 번(藩)으로 갈라져 있고, 막부가 이를 통제하고 있었다. 무사들은 번주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만이 대의(大義)였다.

그런 가운데 죠슈(長州)번과 사쓰마(薩摩)번이 도쿠가와 막부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도쿠가와 막부와는 오랜 원한이 있었다. 한때 상당한 영토를 가진 번들이었으나, 도쿠가와막부가 들어서면서 무려 영지가 4분의 1로 줄어드는 등 각기 큰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울분을 오래 참아왔던 이들은 미국 페리호 내항후 도쿠가와 막부가 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은 것을 규탄하면서, 왕정복고를 내걸고 도쿠가와막부 타도를 시도했다.

도쿠가와 막부와 죠슈 사쓰마번 연합군의 전쟁은 일본을 내전상태로 몰아넣었다. 한쪽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편에 대한 암살이 이어졌다. 일본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떠밀려갔다. 이때 가쓰 가이슈가 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도쿠가와 막부에서 해군장관(군함부교)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번이 아닌, 일본 전체의 발전을 위해 내전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에서 서로 싸워서는 서세동점하는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도쿠가와 막부 설득에 나서서 막부정권을 포기하고 왕정으로 복귀하는, 이른바 대정봉환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첩첩산중이었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이끄는 죠수 사쓰마연합군은 물러서는 도쿠가와막부의 퇴로를 막으며, 완전한 항복을 요구했다.에도(동경)성문을 열고, 무기를 반납하며, 영지도 포기하고, 막부중신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 이에 도쿠가와막부의 무사들이 발칵했다. 도쿠가와 가문의 멸망을 막기위해서라도 결사항전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치달은 것이다. 반전파인 가쓰 가이슈에게는 비겁하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도 일어났다. 이와 함께 당시 인구 100만명의 에도성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다시 휩싸였다.

그러나 가쓰 가이슈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에도성을 압박해오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찾아가 그가 ‘공이 아니라 사(私)를 추구한다’고 꾸짖었다. 미래 일본이라는 대국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권 탈취만 추구하는 ‘대사(大私)’를 따르고 있다면서, 공(公)으로 돌아가라고 거듭 요청했다.

결국 전투 발발 직전에 사이고 다카모리의 신정부군은 가쓰 가이슈의 말을 받아들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에도성의 문을 열고 왕정에 따른다는 것으로 전쟁중단을 선언했던 것이다. 지금 동경의 왕궁이나 주요 전통 건물들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이같은 가쓰 가이슈의 결단 때문인 셈이다.

그는 에도성 문을 열어서 신정부군이 무혈입성하도록 했다. 당시 전쟁이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원한,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을까? 그렇게 됐다면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근대 일본은 이처럼 에도성 무혈입성의 기초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지금 우리 사회도 총만 들지 않았지 마치 내전을 치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태극기와 촛불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같은 갈라짐을 하나로 합치도록 해주는 게 뭘까? 바람직한 미래 한국을 만들자는 공의 시각이 아닐까? 비겁의  비난을 참고 분열을 막는 정신, 정권탈취가 아닌 ‘새로운 건국’이라는 사고. 이같은 생각과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동경 스미다 강가에 있는 가쓰 가이슈의 동상 앞에서 떠올려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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