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변해가는 사회
[해외기고] 변해가는 사회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06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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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다. 주류를 이루던 40, 50대의 중년사회가 20, 30대로 대물림을 하며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경륜과 경험이 풍부해야 성숙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백세시대가 된다 해도 나이에서 밀리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사회풍조가 형성되고 있음이다. 개방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유교문화에 물들어있던 전통과 관습은 이제 역사적인 유물이 되어간다.

무조건 옛 것이 좋다고 고집하며 고루한 생각을 가졌던 어른들도 자신을 내려놓고 묵묵히 이 세태를 받아들인다. 나는 하이스쿨에서 십대 청소년들과 만나는 시간이 많은 덕분에 진보적이며 젊게 산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이삼십 대의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나름대로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신문기사를 몇 일전에 읽게 되었다.

신문의 헤드라인에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 등장... 19세 이상 성인은 사용불가”라고 적혀있었다. 한국의 광주 충정로의 한 개방형 성인용품 매장 앞에 19세 이하의 청소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콘돔 자판기를 설치했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20대의 젊은 커플은 콘돔을 자유롭게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바꿔보자는 취지에 공감해서 자판기를 가게 앞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주위의 반응이 좋아지면서 학교 안에도 설치해달라는 제안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한국사회가 이토록 급진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다. 청소년들의 성문제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일임은 부정 할 수가 없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금기된 주제가 성이었고 제대로 된 성교육조차도 받을 수가 없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공립하이 스쿨은 남녀공학이며 퀸스랜드 주에서 유일하게 교복을 입지 않는 학교이다. 복장규칙(Dress Standard)이 엄해서 요즘 유행하는 무르팍이 찢어진 청바지나 미니스커트, 특히 여학생들은 가슴이 깊이 파인 상의를 입지 못하도록 까다로운 규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규율이 엄격하다 해도 십대 청소년들의 사랑문제까지는 누구도 견제 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생겼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사들은 운동장과 교실 앞을 오가며 학생들을 보호 관찰하는 의무(Playground Duty)를 가진다. 12학년 교실 앞에서 한 남자가 유모차를 곁에 세워놓고 몇 명의 남학생들과 둘러서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사연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십대의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된 한 남학생이 친구들을 만나러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서 학교에 데려왔었다. 유모차 속의 아기를 들여다보고 신기해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웃고 서있는 어린 티가 흐르는 철없는 아빠.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의 실수를 책임진 그 남학생을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안쓰러움에 혀를 차야 할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또 한 경우는 예전에 다른 학교에 근무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컴퓨터 룸에서 ESL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 난민출신인 한 여학생의 배가 유난히 불러서 교복 입은 모습이 어색해보였다. 난 그 여학생이 임신을 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우둔한 선생이 되어버렸다. 그 여학생은 이미 임신 7개월이었으며 아기아빠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로 “My boyfriend”라고 대답했다.

학교 측에서 여학생의 출석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프리카 공동체에서 잘못 이해하면 인종차별로 번질 수 있는 예민한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담으로 들은 이야기는 그 여학생은 아기를 출산한 후에 학교를 계속 다녔으며 담당 선생님들이 아기용품을 선물로 전달했다고 한다. 나의 좁은 견해가 다문화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 문제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탓이다. 이 일은 다민족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화적인 견해의 차이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경우였다.

변화되어가는 이 사회를 따라잡지 못해서 점차 힘이 부친다. 그리고 매일처럼 업그레이드되는 컴퓨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니 그마저 쫓아가기에도 숨이 가빠진다. 자녀들은 부모세대의 그런 고뇌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을 왜 모르지’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의 한계에 못 미치는 삶을 산다고 한다. 바닥에 깔려있는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쉬운 일도 아니건만. 한편으로는 다가올 미래의 사회가 얼마나 더 많이 놀랍게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생길지를 예측할 수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흐름 속에 조각배처럼 나 자신을 띄워보기로 마음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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