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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들] 할머니, 어머니, 딸 3대를 잇는 국악가족
가야금 연주자 김보경 씨
2017년 04월 20일 (목) 13:33:10 민단신문 wk@worldkorean.net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독주회를 연 김보경(47)씨의 공연 프로그램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저는 일본문화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선 한국문화를 접하는 게 몹시 어려웠지만, 우리 집에는 항상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녀는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현지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9년 모국인 대한민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년간의 어학연수 후 한국문화를 더 알고 싶어 홍익대학교 도예학과에 진학했다. 한국어를 잘하진 못했지만 실기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담당교수는 보경씨의 외할머니인 고 성금연(成錦鳶) 선생의 광팬이었다. 광주에서 태어난 성금연 선생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지성자(池成子) 선생도 한국에서 유명한 가야금의 명인이라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지성자 선생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0호 가야금산조 보유자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한 보경 씨는 유학 후 일단 일본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1년간 고민했다고 한다. 어느 날 불현듯 어릴 때부터 당연한 것처럼 즐겨온 가야금의 음색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운명의 실타래에 이끌려 어머니가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살았다는 전라북도 전주로 향했다. 서울과는 다른 시골 마을에서 가야금 이외의 우리 고유의 소리들을 귀에 박히도록 열심히 듣고 배웠다.

   
▲ 김보경 씨(오른쪽)가 어머니 지성자(池成子) 선생과 인천궁동 갤러리에서 연주를 펼치고 있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에게. 옆에서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경 씨가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배우려고 결정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명인으로 평가받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혈통도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전통음악 분야에서 2, 3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보경씨는 1998년 서울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에 입학하고, 연주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창극단의 반주를 맡았고, KBS 국악방송의 전속 반주자가 됐다. “악기 연주에 말은 필요 없으니까 제가 자이니치(재일동포)라고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죠”라고 그는 웃었다.

지난해에는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부산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주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두 딸의 어머니이기도하다. 큰애는 중학생, 동생은 초등학생. 최근에는 자녀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통명(通名·일본식 이름)으로 일본 현지 학교에 다녔습니다. 조금이라도 마늘 냄새가 나면 왕따였죠. 그렇지만 딸들은 한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바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딸들이 4대째를 이을 지 여부는 본인의 의지에 맡기고 싶단다. 김씨의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딸들도 일상생활을 가야금 소리와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모국에 살면서 힘이 들 때 운 적도 있었지만, 마음이 약해질 때 언제나 가야금이 곁에 있었다.

“어머니가 일본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한사코 지켜오고자 했던 뜻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보경 씨는 지금 한국 국악계에서 존재감을 한층 발휘하고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글: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작가)
-원문: http://www.mindan.org/front/newsDetail.php?category=0&newsid=2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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