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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수의 문화칼럼] “조지 오웰의 ‘봄’의 찬미”
2017년 04월 21일 (금) 13:26:17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wk@worldkorean.net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뀔 때면 연례행사처럼 감기로 고생하다가 4월 중순에야 털고 일어났다. 주말이기도 해서 몇 달 만에 산책을 나갔다. 그 사이 바깥세상은 완전히 봄의 마술에 홀려 있었다. 화가가 우중충한 캔버스에 온갖 다채로운 색깔로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했다. 텔레비전 화면과 신문칼럼에서 보고 읽은 벚꽃 잔치는 이미 끝났고, 개나리는 노랑 저고리와 녹색 치마를 입은 처녀로 변했다. 

겨우내 죽은 듯 가지들만 앙상하던 나무들이 발칙할 만큼 자기들의 색깔을 지니고 움트고 있었다. 차라리 나무로 태어났다면 해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과 더불어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마치 현실이 되는 건 아닌가하는 위기감과 맞물려 화려한 4월의 부활이 서글퍼진다.

“4월, 날씨가 쌀쌀하고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벽시계가 13시를 알리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1984년』을 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수필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읽었다. 대다수 시인들이나 작가들은 봄을 화사한 꽃들을 통해 묘사하는데, 오웰은 런던의 봄을 동면에서 깨어난 두꺼비를 통해 묘사한 게 신선했다.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눈풀꽃보다 그다지 늦지 않게 두꺼비는 다가오는 봄에 나름대로 인사를 한다.”로 시작한다. 그는 두꺼비를 통해 봄의 서막을 알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두꺼비들의 알 낳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봄의 현상이기도 하고 종달새와 앵초꽃과는 달리 두꺼비들은 시인들의 후원을 그다지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든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누추한 거리에도 봄은 이런저런 신호를 보낸다.… 사실 말 그대로 런던 심장부에 자연이 무허가로 계속 존재하는 게 놀랍다. 봄은 어떤 여과장치도 통과할 수 있는 신종 독가스처럼 도처에서 슬금슬금 스며든다. 봄을 두고 흔히 ‘기적’이라고들 말하는데 지난 5, 6년 동안 이 닳고 진부한 표현이 새 생명을 얻었다. 근래 들어 우리가 견뎌야 했던 그런 겨울이 끝난 뒤 찾아오는 봄은 진짜 기적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봄이 정말 오리라고 믿기가 점점 더 힘든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1940년부터 해마다 2월이면 나는 이번에는 겨울이 영영 끝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1939년 9월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오웰은 1948년에 출판한 『1984년』에서 ‘빅브라더’가 세계 도처에서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할 뿐 아니라 개인의 생각이나 사상을 세뇌시킨다고 했다. 마치 북한 김정은의 독재체제를 예언한 것 마냥…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개인의 일상을 침범하고 간섭하는 비인간적인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범죄예방과 방범유지를 위해 곳곳에 설치한 CCTV가 우리를 감시하듯, 해킹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메신저 앱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을 70년 전 예언한 그의 선견지명에 독자는 전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웰은 인간의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를 소망한다. 그는 수필의 말미를 이렇게 끝낸다.

“어쨌든 이곳 런던 N. 1 우편구역에도 봄이 왔다. 그리고 우리가 봄을 즐기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 우리가 진짜 아프거나 굶주리거나 겁에 질리거나 감옥이나 휴가 캠프지에 갇혀 있지 않는 한 봄은 여전히 봄이다. 공장에는 원자폭탄이 쌓여가고 거리에는 경찰들이 어슬렁대고 확성기에서는 거짓말이 쏟아져 나와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돈다. 독재자도 관료도 이런 변화가 제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결코 막지 못한다.”

현재 대한민국호는 선장 없이 외교안보의 바다에서 표류 중이다.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한다고 협박하고 미국은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며 선제공격이라도 할 태세다. 외국의 친지들은 전쟁이 나지 않겠느냐고 걱정스레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지난 반세기 넘게 지속된 분단 현상에 면역돼 안보불감증인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렇게 으름장을 놓는데 북한이 설마 6차 핵실험을 하겠어?’, ‘설마 전쟁이야 나겠어?’ 그래서일까. 산책길에 보니까 주말 나들이 떠나는 차들로 인해 동부간선도로가 거의 주차장이 됐다.

장미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제각기 안보를 선거판의 핫 이슈로 이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안일한 안보관을 드러내고 있고, 군대는 주적인 북한보다 국민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지뢰제거 작전에 자녀를 투입해도 되느냐고 부모의 동의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3년 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드러난 정부 관료들의 보신주의, 무사 안일주의가 생각나서 착잡하다.

한반도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이라도 하듯이 금년 봄에는 유난히 미세먼지가 자주 출몰해 산책도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지만 자연은 소명을 다 해 우리에게 화려한 봄을 선사한다. 2차 대전 중에도 오웰이 봄을 즐겼듯이 나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고 점점 짧아지는 봄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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