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의 음식기행] 니셍소바 - 비논리의 승리
[안상윤의 음식기행] 니셍소바 - 비논리의 승리
  •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 승인 2017.05.02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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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윤 전 SBS 북경특파원
요리는 대개 논리적 구성을 좇는다. 조합을 중시해 어울릴만한 소재들끼리 배열한다. 맛을 해치지 않거나 맛을 더하기 위함이다. 한 소재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소재로 보하려는 이유도 있다.

때로 엉뚱한 조합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예상 못한 비논리적 구성이어서 놀라게 된다. 그것은 마치 1회 초 선두 타자가 갑자기 기습 번트를 대고선 질주하는 것과 닮았다.

번트는 대부분 1루 주자를 진루시키거나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구사되는 까닭이다.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1회 첫 타석에서 번트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번트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단지 익숙하지 않은 장면일 뿐이다. 그 결과가 ‘세이프’이면 관중들은 환호한다. 그때 사람들은 비논리의 신선함을 만끽하게 된다. 직선보다 곡선, 직설보다 은유, 논리보다 비논리가 소구력 있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파격(破格)의 힘을 말함이다. 세상사는 재미이기도 할 것이다. 음식도 그런 힘을 보인다. 도쿄 세타가야에서 만난 ‘니셍소바’가 그러했다. 2005년 방문 당시 세타가야구는 끈질기게 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아이디어를 수렴해서 성공적으로 도시 재생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 녹도와 시냇물을 만들고 초등학교 아이들의 작품을 타일로 만들어 시내 주변을 장식하고 노인들은 자비를 들여 꽃을 심고 가꾸었다. 그들은 자기 마을에 마음을 심고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 기웃거리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어디 밥 먹을 데 없나 두리번거려 보지만, 밥 먹을 데가 마땅찮다. 한적한 주택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점포 들을 배제한 까닭이다.

 
문득 마을 초입에 있던 유일한 식당 하나가 떠올랐다. 오후 일정도 빠듯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늦으면 문 닫을라.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다행히 식당 문은 열려 있었다.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메뉴도 하나뿐이다. 국수 종류여서 호기심이 일어 별 말없이 주문했다. 다른 게 될 리도 없지만, 양이 될 지가 걱정이었다. 식사가 나왔다. 특이했다. 삶은 탕면 위에 생선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 도쿄 세타가야에 있는 니셍소바 식당과 시게타 가쓰코 씨.
이 마을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시게타 가쓰코 씨가 삿뽀르 청어를 간장에 절여 소바와 함께 끓여내는 고향 음식인 교토 식 ‘니셍소바’를 만든 것이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다. 면 위에 돼지고기를 고명으로 올리는 건 별 거부감 없이 먹어보았지만 생선을 토핑한 건 처음 보았던 까닭이다. 나 자신 국수를 먹을 때 꽁치구이나 가자미조림 같은 생선을 곁들여 먹기는 하지만 함께 섞어 먹지는 않는다.

국물에 비린내가 섞일 것 같아서이다. ‘니셍소바’는 그런 나의 선입견을 기우에 지나지 않게 했다. 간장에 졸여진 생선은 국물에 아무런 비린내를 풍기지 않았다. 오히려 단조로울 수 있는 면만의 맛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맛났다. 생선 한 마리를 다 먹고 나니 양도 충분했다. 그 다음날도 이 국수가 당겨서 다시 오고 싶어 졌을 정도로 매력적인 면 요리였다. 비논리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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