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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수의 문화칼럼] 목욕탕 토크쇼
2017년 05월 08일 (월) 16:39:35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wk@worldkorean.net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5월 초의 날씨가 장미대선 후보들의 선거전만큼 뜨겁다. 요즘 늙은 우리 세대 여자들조차 세 사람만 만나면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며 선거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겨우 50%대를 유지하는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역대 투표율이 70%를 넘기고 있다니 이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지난 일요일 아침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시설 안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갔다. 온탕과 냉탕, 사우나 시설까지 있어서 언제나 입욕 객들이 많다. 물도 깨끗해서 일부러 목욕만 하러 오는 노인들도 많다. 탕에 들어가니 벌써 여 나무 명의 노인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대개 탕에서의 대화 내용은 질병이나 자식들 문제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날따라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60 대 후반쯤 되는 후덕한 몸매를 가진 할머니들이었다.

나는 탕의 구석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60대 후반의 뚱뚱하고 쌍꺼풀이 두꺼운 여자가 토론(?)을 주재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앞으로 이 나라가 잘 될 것 같수? 지난 번 박근혜를 찍었는데 감옥에 갔으니 이번엔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 도대체 마음 가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러지라. 나는 노령 연금 많이 준다는 후보한테 찍을 겨. 우리 옆집 아흔 살 노인은 아들이 재산을 다 말아먹어 오갈 데가 없어져 부렸다네.” 그 말에 쌍꺼풀 할머니가 큰 소리로 대꾸한다.

“왜 바보처럼 그랬대? 집은 죽을 때까지 끼고 살아야지. 모기지를 하면 평생 밥걱정,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모기지가 뭔데?”

“아, 그것도 몰라? 집을 은행에 잡히면 돈이 나오는 거여. 자식들 믿으면 안돼요. 그리고 대선 후보들이 노령 연금 많이 준다는 선심 공약을 믿지 마슈. 다 포퓰리즘이라구. 차라리 노인들 보다 젊은이들 일자리 만들어주는 게 좋지.”

“그랴, 우리는 얼마 안 있으면 죽을낀디 젊은 것들 취직이나 잘 되게 하는 사람 찍을 겨. 그래야 결혼도 하고 애도 낳지.” 탕에 있던 깡마른 할머니가 끼어든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결혼하지 않을 꺼유. 왜 사서 고생해유. 그 지긋지긋한 시집살이 또 하라구? 암, 난 절대 결혼하지도 않고 애도 안 낳겠수.”

“아니, 왜 그랴? 자식들 농사는 잘 지었잖아?”

“그러면 뭘 해? 여행갈 때는 부모 쏙 빼놓고 저들끼리 가는데...”

“별 걸 다 샘낸다. 요즘 애들이 누가 부모랑 같이 가려구 해? 이혼 안 하고 즈이들끼리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너무 욕심이 많구먼.” 잠자코 듣던 뚱뚱한 노인이 불쑥 끼어든다.

“대통령이 없으니까 경제가 더 잘 돌아간다는구먼. 대통령되면 또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데 뭣 때문에 대통령 하려구 저 XX들이래? 나도 찍을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그 X이 그 X이야.” 그 말에 쌍꺼풀이 거든다.

“더불어민주당을 찍으면 이북에 마구 퍼줄 것 같구, 국민의 당을 찍자니 그 눔의 상왕인가 뭔가 제 2의 최순실이 될 것 같구, 박 근혜 당은 막가파식이니 그렇구...”

“맞아, 맞아. 대통령 없어도 나라가 잘 돌아간대. 수출도 잘 되고 주가도 올랐다든대. 그리구 돈 먹는 하마 같은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들이 하는 일이 뭐유? 우리 세금만 축내지. 숫자를 반으로 팍 줄여야 돼.” 노인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인터넷에 이런 얘기가 있습디다. 의사, 변호사, 정치인이 탄 배가 바다에 침몰했는데 단 한 사람만 구조해야 한데. 누구를 구조했겠어?”

“아! 그거 나도 들었구먼. 정치인을 구조했잖아. 바닷물이 오염될까봐 제일 먼저 구조해야한데.” 탕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목욕탕 토크쇼의 방청객이었던 나는 그들의 유식함에 놀랐다. 대부분 살림만 하던 할머니들 같아 보이는데 TV에서 대선후보자들의 토론을 지켜보아서인지 정치에 관한 식견이 많아보였다. 아니면 카카오톡으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어 노인들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꽤 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지난 가을부터 촛불 광장과 태극기 집회에 70대의 내 대학동창들도 각각의 소신에 따라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고 한다. 이 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듯하여 자부심도 느끼지만 대선이 끝난 후에도 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국민들이 여전히 편 가르기를 한다면 국론 분열로 인한 사회 혼란이 계속될까 우려된다.

오늘이 불기(佛紀) 2561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송광사 법흥 스님은 한 인터뷰에서 ‘한 나라 안에 태어나 만난 것도 2000겁 귀한 인연이어서 싸우지 말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조선일보, 5월3일) 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든지 적폐청산보다 사회 통합을 첫 국정 과제로 삼아 북한의 핵개발의 위협에 대처하는 안보 정책, 청년 일자리, 고령화 문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같은 중차대한 문제를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부처님께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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