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스승의 날 유감(有感)”
[안영수의 문화칼럼] “스승의 날 유감(有感)”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7.05.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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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어제 저녁 딸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 저녁 식사준비는 하지 마라.” 왜냐하면 스승의 날이라고 제자들이 저녁 식사 초대를 했는데 모두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다 참석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 나이에 어떻게 일주일 내내 저녁 외출을 해요? 그러다 또 아프면 어쩌시려고요?” 라고 걱정을 한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은 생일같이 기다려진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제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73학번, 79학번, 86학번 등 제자들 몇 명씩 모여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나를 초대한다. 그들도 거의 쉰 살이 넘었다. 그들과 만나 옛날의 교수시절을 반추해보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80년대에는 스승의 날에 강의실에 들어가면 교탁 위에 학생들이 놓아둔 카네이션과 손 편지가 든 작은 카드들이 쌓여 있고 강의 시작 전에 모두 일어나서 ‘스승의 은혜’를 합창을 했다. 그런 광경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음속으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라는 자문과 함께 선생이라는 내 천직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감을 동시에 느꼈다.

퇴직한 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학생들이 보내준 손 편지와 이메일을 상자에 간직하고 있다. 가끔 꺼내어 읽으며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모두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금년부터 시행되는 소위 김영란 법이라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대학 캠퍼스가 혼란에 빠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학생과 교수 모두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청탁금지법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서란다. 최근 서울대병원 현직 교수들이 퇴임을 앞둔 은사에게 준 선물이 청탁금지법에 저촉돼 처벌받은 사실이 알려져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황당해하고 있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학생회장이나 학급반장 등 학생 대표가 교사에게 주는 꽃은 무관하나, 학생 개개인이 교사에게 주는 꽃은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고 한다.

‘스승의 날’ 제정 목적은 교권을 존중하고 스승을 공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교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사회적 지위를 향상할 목적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일부 공직자, 언론사,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촌지를 주고받는 악습을 고치겠다고 만든 청탁금지법이 교사와 제자 사이에 나누었던 정(情)이 뇌물처럼 취급받게 된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

그렇잖아도 교권침해현황 사례가 지난 5년 동안에 연 평균 4,700 건이 넘는다고 한다.(연합뉴스 5. 13) 교사에 대한 폭언과 욕설이 14,775 건, 폭행이 461건, 성희롱이 459건, 학부모 등 교권침해가 464건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사의 사기를 높이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될 수 있는가?

이렇게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듯이 청탁금지법을 ‘스승의 날’에도 적용하여 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도 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칭송받던 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작태이다.

필자가 80년대부터 10연 간 한국으로 연수받으러 온 외국인들을 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 특강을 했을 때 서두에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절이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 문화“(孝 文化)와 웃어른을 섬기는 미풍양속을 소개하였다.

특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강조하여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처럼 가장 공경해야 하는 웃어른이라고 소개하고 필자가 어렸을 때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고 말하면 외국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한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다면서 부러워했다.

학생들과의 소통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필자가 지금까지 교단에 있다면 청탁금지법으로 사제관계가 무너진 현 사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자긍심과 소명의식이 사라질 것 같다. 아무리 한 자녀 시대라고 하지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은 계속 쌓이고 진화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인성교육의 중요성이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어른)을 공경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성의 함양이 공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주에 만나기로 약속한 제자들과의 해후가 기대된다. S는 얼마나 머리칼이 더 빠졌을까? Y는 살이 더 쪘을까? 그리고 예의바른 H는 흰 머리가 더 늘었겠지? 평생 교단에 있다가 은퇴한 나는 행복한 노인이다. ‘아, 옛날이여! 스승이 존경받던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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