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한국의 전통음악은 청춘이다
[해외기고] 한국의 전통음악은 청춘이다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09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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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11,12학년 학생들이 선택해서 특별수업을 받는 IB프로그램의 교육과정(curriculum)에 ‘전통과 관습’이라는 주제 항목이 정해져있다. 한국어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한국문화와 언어를 목표(Target)로 하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와 예술,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 과연 무엇이 우리의 순수한 전통과 관습인지, 현대사회에서는 얼마만큼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지, 또는 그 본질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연구조사와 분석을 하게 된다.

어느 인문사회학자는 오늘날 우리의 전형적인 전통과 관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필터에 거르지 못한 채 서양문화와 뒤섞인 퓨전 전통이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험문제 출제의 흐름을 보면 그 현상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가능한 한 학생들에게 우리 고유의 순수한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 가르치며 그와 관련된 에세이를 쓰도록 가르친다. 수많은 주제들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써야하기 때문에 자료수집도 광범위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국 EBS방송의 역사채널이나 유튜브(Youtube)를 정보수집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국악의 꽃이라고 불리는 판소리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청춘! 세계도전기-우리의 판소리 런던에 울려 퍼지다’라는 EBS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26세의 여성 소리꾼 김희재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녀가 영국 런던의 거리에서 단독 판소리 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이었다.

유럽의 도시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위한 공연기회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다. 그런 곳에서 한국의 한 젊은 소리꾼이 겁 없이 도전을 하는 모습은 감동을 뛰어 넘어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 K-Pop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한국 전통문화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판소리를 통해서 ‘한국의 소리는 이런 것이다.’ 라고 알리는 것이 나의 꿈이다.” 라고 당차게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그녀를 보며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 올렸다.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용기는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만들어 주고, 아플 때도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열정이 두드러져 보였다.

런던은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유럽의 중심도시이며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그리고 다문화 인종들이 뒤섞여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예술의 도시이며, 버스커들의 천국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자신들이 지닌 재능을 거리낌 없이 거리공연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예술혼과 지켜보는 엄격한 시민의식으로 인해서 우수한 거리공연이 펼쳐지게 된다. 그런 분위기의 거리에 한국의 젊은 여성소리꾼이 한 몫을 하며 끼어들은 것이다.

희재는 힘들게 거리의 한 장소에 임시 터를 잡고 ‘가시버시 사랑’(부부의 사랑) 이라는 곡을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흥겹게 부르지만 구경꾼들은 모여들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장소를 찾아 헤매다 젬배라는 타악기를 거리에서 연주하던 어린소년과 즉흥적인 공연으로 호흡을 맞추며 ‘별주부전의 수궁가’의 한마당을 열창했다. 리듬이 빠르고 흥겨운 타악기의 반주와 뱃속에서 뿜어 올리는 판소리의 조합에 지나가던 노부부가 걸음을 멈추었다.

백발의 할머니가 어깨춤을 둥실 둥실 추며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시골장터에 놀러 나온 한국의 어느 할머니를 연상시켰다. 나이와 언어를 초월한 예술적 교감이 그 소년의 타악기 비트와 판소리를 하나로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거리의 구경꾼들은 감탄을 발하며 판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쳐나고 아주 열정적인 소리로 들린다며 즉석평가까지 해주었다. 비트박스를 하던 백인청년과의 협연은 판소리의 또 다른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

브리즈번 시내의 중심지인 퀸스트리트 몰( Queen St, Mall)에 나가면 거리의 공연자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나는 시간이 허락되면 몰에 나가서 버스커들의 공연을 즐기며 큰 박수를 보내고 간혹 시디를 사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생일을 맞은 지인을 위해서 즉석 깜짝 쇼를 연출했던 적이 있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거리공연자에게 생일을 맞은 지인을 위해서 즉석 연주로 생일축하곡과 부부를 위한 댄스곡을 부탁했었다. 그 부부는 몹시 감동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면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이었다.

캐나다 퀘벡의 올드타운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예술인의 거리에서 색소폰 연주를 듣다가 곁에서 조용히 몸을 흔들고 있던 고령의 프랑스할머니에게 춤을 신청해서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었던 적이 있다. 음악이 끝난 후에 꼭 안아드렸더니 “내 마음을 알아준 네가 너무 고맙다. 호주에서 여행 온 한국인을 오래 기억할거야.” 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온다.

거리의 공연자들은 문화를 창조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는데 큰 몫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문화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세상에 존재하게 되고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큰 힘이 된다.

우리의 소리, 판소리도 그런 힘을 가져서 후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겨지기를 바란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 것이 좋고 소중하다는 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서 반갑기도 하다.

판소리에 현대 악기를 사용한 퓨전 국악을 해외에 제대로 알릴 수만 있다면 K-Pop 못지않은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K-Pop 공연에 익숙해져 있던 내 눈에 그녀의 런던거리의 공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돌그룹의 섹시함을 강조하는 야한 차림보다 한복을 입은 그녀가 더 섹시하고 신선해보이기도 했다. 그런 젊은이들이 있기에 한국의 전통음악이 되살아나고 청춘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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