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압록강변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탐방기] 압록강변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 서명지 CSR impact(주) 대표
  • 승인 2017.07.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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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주최 동북3성 역사문화탐방에 참가...외면 안되는 '우리의 절반'

▲ 압록강 승선여행 선착장에서. 왼쪽에서 세번째가 필자 서명지 대표다.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사장 이승률)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7월11일부터 15일까지 북중러 접경지역을 가는 '동북3성 역사문화탐방'을 개최했다. 4박5일간의 이 행사는 대련-단동-집안-통화-백두산-연길-용정-훈춘을 잇는 2천km를 버스로 달리는 대장정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서명지 CSR impact(주) 대표가 압록강에서 배를 탄 여행을 중심으로  탐방기를 기고해왔다. 이를 소개한다.<편집자>

첫날 여순 감옥에서의 뜨거운 햇살과는 달리 이튿날 만난 단동의 하늘은 회색으로 무거웠다. 영화에서 자주 봤던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둥(丹東)을 잇는 압록강 철교는 6.25전쟁 당시 폭격 당한 모습 그대로 남아 무거운 하늘만큼이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단교로 불리는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압록강 상류로 올라갔다. 강 양쪽으로 북한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유람선 여행이 준비돼 있었다. 가이드는 압록강 가운데 있는 큰 북한 섬과 북한 땅 사이를 배로 유람한다면서 북한 군인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근접사진촬영이나 돌출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출항한 지 얼마 안 돼 배 양쪽으로 북한 땅이 나타났다. 강가에 말없이 앉아 있는 깡마른 노인, 양떼와 함께 양을 치는 사람들, 선글라스를 쓰고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며 우리쪽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나와 있었다. 물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을 나온 듯한 북한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공해상이지만 어떠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배안 쪽에 조용히 앉아 선창 밖을 주시했다. 평소 좋은 풍광이나 장면들도 사진 렌즈에 다 담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진 촬영 대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눈과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 순간 그림처럼 20-30명의 북한주민과 군인들의 무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북한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충격이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북한 주민들은 실존해 있었다. 우리가 외면한다고 외면되는 막연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북한주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내가 저 무리 속에 한 사람으로 유람선을 보고 있었다면? 관람하듯 배안에서 손을 흔드는 외지인을 보고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갖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 압록강변의 북한사람들
▲ 압록강변에서 만난 북한사람들
▲ 압록강변의 북한사람들

내가 이번 탐방단에 참여한 것은 작년부터 뜻하지 않게 맡게 된 비영리단체 ‘소원’이 계기가 됐다. 나는 이 단체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통일교육 컨텐츠를 기획,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이념이나 정치 지향적이지 않으면서,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통일교육 컨텐츠를 기획하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경기도 교육청을 통해 탈북민 출신 강사를 소개 받아 민관 통일교육정책포럼에 참여해 춘천에서 함께 숙박을 하게 되었다. 어느 탈북민보다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고, 씩씩하고 당당하기까지 한 그녀는 그날 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새벽까지 방을 서성거렸다.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그녀는 중국에서 북송을 경험하기도 했고, 남한으로 오는 과정에서 팔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밤에는 통증으로 잠을 깊게 자본 적이 없다고 한다. 탈북한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그녀에겐 아직 탈북의 순간이 현재의 고통이었다.

이런 경험이 이번에 북중러 접경지역을 가는 탐방팀에 합류한 계기가 된 것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통일이 내 삶과 무관했고, 통일을 그저 막연한 당위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소원’과 이번 탐방단을 조직한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에서는 통일과 통일 비지니스라는 주제로 대학생과 실업인 대상으로 통일정책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통일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가 서로를 너무 모르는데다, 이념적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각자의 전공과 전문분야를 통해 통일 이후의 산업과 분단의 역사적인 배경, 남북한의 사회, 경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나 동독과 서독 주민의 이질감을 줄이고자 시작된 '동서 포럼'(Ost-West Forum)처럼 남한의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탈북민들이 이 통일정책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탈북민 통일강사는 통일정책세미나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통일에 대해 토론하고 이번에 북중러 접경지역 방문하는 것을 통해 남한에서 이렇게 진지하게 통일에 대해 고민해주는 공동체가 있어 가슴 벅차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내게 전했다.

우리 탐방단은 단동을 지나서는 고구려의 무대였던 집안과 통화를 찾았다. 그리고 백두산을 올라 운좋게 맑은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연길과 용정, 훈춘도 방문했다.

2천km가 넘는 여정에서 눈으로 본 북한주민들, 훈춘 방천에서 내려다본 북중러접경, 연변과기대에서의 통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헌신하는 교수님 등 여러 사람들과 장면들이 내 삶에 각인돼 쉽게 잊히지 않을 것같다.

▲서명지 대표

▲ 단동 단교 앞에서

 
▲ 연변과기대 교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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