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한국의 역(驛)①] 영동선 양원역
[가보고 싶은 한국의 역(驛)①] 영동선 양원역
  • 구리하라 가게리(栗原景, 재일 포토라이터)
  • 승인 2017.08.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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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단신문 연재...V-Train으로 찾는 사람 늘어

▲ 대합실과 역 플랫폼.오른쪽이 낙동강이다.

기차역을 주제로 한국 철도여정을 소개하는 포토라이터 쿠리하라 가게리(栗原景) 씨의 글과 사진을 민단신문이 '가보고 싶은 한국의 기차역'이라는 타이틀로 연재에 들어갔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물을 본지는 이번호부터 묶어서 몇차례에 나눠 소개한다.필자는 1971년 도쿄 출생. 여행과 철도, 한국을 테마로 하는 포토라이터다. 출판사 근무 뒤 2001년부터 프리 스케이팅. 한국에 어학 유학하고 전국을 여행했다. 현재 잡지나 웹 등 폭넓은 미디어에 기사와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주요 저서로 '3일만에 배우는 초입문 한글 받아쓰기 노트' 등이 있다. 철도여행 분야 저술도 많다. <편집자>

[가보고 싶은 한국의 기차역1] 영동선 양원역

어느 가을날 아침, 강릉행 각역 정차인 '무궁화호'를 타고 가다 작은 플랫폼에 내렸다. 옆을 흐르는 냇물은 낙동강이었다. 산골에 있는 작은 간이역. 주위에는 여러채의 민가와 고추 밭밖에 보이지 않았다.

열차가 떠나자 곧 역으로 드문드문 사람이 모여들었다. 현지의 할머니와 아저씨들. 플랫폼 옆의 오두막 집에서 농산물이나 산나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관광열차에 물건을 팔러 역으로 가는 할머니

한국 동부지역에 있는 양원역이었다.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선로는 한국철도 공사(KORAIL)의 영동선이다. 1962년 완전 개통한 경북 영주와 강원 강릉을 잇는 노선으로, 태백산맥 남부의 협곡을 달린다. 국도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계곡을 지나고 있어서, 기차 차창에서는 인공 건축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제일의 절경을 자랑하는 로컬 철도노선이다.

그 중에서도 양원역은 특별한 존재다. 국도에서 산간도로를 5㎞ 이상 더들어간 막다른 길이다. 원래는 전곡리로 불리는 마을이었다. 옛날부터 고추 등을 재배하는 민가가 몇채 있었을 뿐, 대중 교통은 전무했다. 어느날 주민 한 사람이 다리가 불편한 아내 때문에 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대합실과 플랫폼을 만들어 당시 철도청에 열차가 서도록 청원했다. 그 결과 1988년 4월1일부터 '양원 임시 승강장'이 돼 아침 저녁으로 열차가 두번 정차하게 됐다.

양원역은 이렇게 해서 전곡리의 유일한 현관문이 되었지만, 열차는 하루 겨우 2편 왕복할 뿐이었다. 그런 탓으로 쉽게 찾을 수가 없어 극히 일부의 철도 팬들만 아는 존재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13년이었다. 낙동강 협곡을 즐기는 탄광 광자형의 관광 열차, 'V‐ Train'이 운행을 시작했다. 이 기차가 양원역에 10분 가량 정차하게 되면서 현지인들이 농산물과 커피 등을 판매하게 된 것이다. 흔들리는 기차속에서 한가로운 시골 풍경을 마음껏 접할 수 있다는 매력에 V‐ Train과 양원역이 인기를 모았다.

일찍 모여든 아주머니들은 곧 도착할 V‐ Train을 맞으려 준비에 부산했다.

"오빠, 어디에서 왔어요? 응? 일본에서! 이게 뭔지 알아요? 무말랭이래요."

말린 나물과 버섯을 늘어놓은 아주머니들은 싹싹한 태도였다. 이윽고 계곡 저쪽에서 덜컹덜컹 기차소리가 다가오면서 오늘 첫 V‐ Train이 도착했다. 많은 승객이 일제히 플랫폼에 내려서 사진을 찍거나 선물을 사면서 맘껏 즐겼다. 그리고 10분 후 기차가 떠나자 양원역에는 다시 낙동강의 물소리만 남았다. 아줌마들은 상품을 늘어놓은 채 집과 밭으로 돌아간다. 하루 몇회, 관광 열차가 정차할 때만 역에 몰리는 것이다.

마을을 산책해봤다. 낡은 다리를 건너 작은 공원에서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딩과 상점은 하나도 없고, 민가가 드문드문 20채 가량 있을 뿐이다.

"오빠, 아까 역에 있던 일본 분이지요? 차 드실래요?"

한 채의 민가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역에서 만난 아줌마이다. 뜰에는 빨간 고추, 곶감, 대추 등이 즐비하다.

"요즘 수확철이어서 어질러져 있어 미안해요. 이거 달아요."

차와 함께 감도 건네 받았다. 밭에 있던 남편도 돌아와서,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예전엔 대기업 회사원으로 경기도에 있었으나 몇년 전에 고향에 가까운 이 땅으로 옮겨와 부부가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 집중이 지적되는 한국에서도 최근에는아이(I)턴 및 유(U)턴을 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오후 양원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왔다는 장년 그룹을 만났다. 낙동강에 따라서 트레킹을 즐기고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일부러 왔습니까! 이것도 인연입니다. 막걸리로 건배합시다."

알딸딸한 느낌이 들 무렵, 동대구행 보통열차가 왔다. KTX로 갈아타면 그날 중에 부산에도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열차에 흔들리는 것만큼 인정도 넘치는 시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그것이 철도와 양원역의 매력이다.

▲ 필자인 구리하라 가게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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