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파도 소리가 들렸다. 창 밖은 아직 어두웠다.
"이 열차의 종착 역, 정동진 역에 도착합니다……"
차내 방송에 깨어나 졸린 눈을 비비면서 열차에서 내렸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야간 열차인 '무궁화호'에 올라서 약 5시간을 왔다. 도착은 아침 4시 반이었다. 강원 강릉시 정동진 역이었다. 플랫폼 바로 아래가 모래 사장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바다에 가까운 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역사 앞에는 오늘 일출 시각이 게시되어 있었다. 한국과 일본간 시차는 없지만, 도쿄보다 서쪽에 있어 일출 시각은 늦다. 지금 계절이라면 5시 15분경이 일출이다. 열차에서 내린 승객과 승용차로 찾아온 관광객들이 차츰 모여들면서 플랫폼과 모래 사장 등 제각각의 장소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이윽고 수평선에서 오렌지 색 햇살이 조용히 떠올랐다.
정동진 역은, 전회 소개한 양원역처럼 영동선의 한 역이다. 양원역 부근에서는 태백산맥 협곡을 달리던 영동선도 이 근처에서는 해변을 달린다.'정동진(正東津)'은 조선 시대의 왕궁 경복궁의 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는 해안이라는 뜻이다. 1962년 영동선이 완전 개통하면서 역 운영도 시작됐다. 역 주변에는 과거 강릉 지역의 탄광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 전환에 의해서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마을 주민도 줄어들었다. 1996년에는 여객 취급을 중단해 폐역 직전이었다.
폐역 직전의 위기를 맞은 정동진 역을 구한 것이 1995년에 SBS에서 방송된 드라마 '모래시계'였다.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대히트 작품으로, 무대의 하나가 된 정동진 해안에 전국으로부터 팬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촌스러운 마을에 불과했던 정동진은 일약 관광지가 되고, 1997년 역에는 다시 열차가 정차하게 되었다. 매일 일출 시각이 게시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역 주변에 카페나 식당, 숙박시설 등이 정비되어 완전히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성장했다. 매년 그믐부터 설날에 걸쳐서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꽉 찬다. 산 위에는 크루즈 선의 모양을 한 휴양시설도 건설돼 과거의 한적한 경치를 아는 자로서는 조금 서글퍼진다.
하지만 그런 정동진 역에 지금도 옛날 그대로의 야행열차가 발착하고 있다. 청량리 23시 25분발 '무궁화 1641 열차'는 정동진 역에 새벽 4시 28분에 도착한다. 좌석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좀 거북할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당연했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모래 사장에 내리면 막 수평선이 밝아올 때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 밤 기차의 피로도 날아가 버린다.
2017년 5월 현재, 영동선의 종착 역인 강릉에서 평창올림픽을 맞아 고속철도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정동진이 잠정 종착 역이다. 오는 연말에는 서울-강릉 간에 2시간 정도로 연결된다. 죠이 블루 트레인 '바다열차'도 연계돼, 정동진 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찾기 쉽게 된다.
그리고 야간 '무궁화'호는 차량이 노후화돼 언제까지 운행될지 모른다.'일출을 보러 갈 밤기차 여행'을 맛보는 것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