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고려미술관 '조선왕조의 새들' 전시회
교토 고려미술관 '조선왕조의 새들' 전시회
  • 민단신문
  • 승인 2017.08.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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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7일부터 12월5일까지...그림 병품 도자기 목공예품 80점 전시
▲ 청화철사조형수적(青花鉄砂鳥形水滴)

 

고려미술관(교토 기타구 소재)이 올해의 간지인 닭을 딴 전시회 '복을 가져다주는 조선 왕조의 새들'을 7월27일부터 12월5일까지 개최한다. 전시회에는 조선시대 그림와 병풍, 벼루, 도자기, 목공예품 등. 작품에는 모두 새가 등장한다. 색깔 선명한 아름다운 새, 정적 속에서 고즈녁하게 자리하고 있는 새, 사람들에게 길흉을 가져다 주는 새 등이 선보인다.

한국에서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길상의 의미를 가지고, 평화와 애정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 행사에는 다양한 새와 길상을 모티브로 한 소장품 80점이 전시됐다. 또 새 장식품 제작 등 다수의 워크숍도 열린다. 매일 10~17시 개관. 수요일 휴관. 요금 일반 500엔.문의는 동 전시관(075·491·1192).

▲ 삼재소도(三災消図)

 

참고로 교토의 고려미술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월드코리안신문 상임고문인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이 쓴 글을 덧붙인다. 아래 전체가 그의 글이다. 

고려미술관은  일본 교토에 1988년 한국인이 세운 독립미술관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등에 한국전시실이 있지만 해외에 한국인이 세운 독립 미술관은 고려미술관이 유일하다. 이 미술관이 최근 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 같다. 문화재청이 지난 2014년 4월 18일 고려미술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 상호교류와 홍보에 협력키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교토에 미술관을 세운 정조문(鄭詔文,1918~1989)은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6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3학년만 마쳤다. 그는 막노동에서부터 시작해서 가게 점원, 직물공장 머슴, 인력거꾼, 부두노동자, 토목공사 노동자 등 닥치는 대로 험한 일을 했다.

가난과 멸시 속에 늘 “나는 왜 조선인으로 태어났는가” 한탄했다. 그러던 그가 1951년 교토에 첫 빠찡꼬 가게를 열어 웬만큼 사업에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 조선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55년, 그는 교토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조선백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백자의 오묘한 색과 아름다운 선(線)에 매료되었다. 그는 그 백자를 당시 집 두 채 값인 200만엔(현 환율로 약 2,100만원)을 주고 월부로 사들였다. 점차 그는 조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어 '일본 속의 조선문화'라는 잡지를 내기에 이른다.

이 잡지를 창간할 무렵 그는 당시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를 찾아가 상의했다. 시바 료타로가 “파친코 점을 경영하는 영감이 내는 잡지니 잘해야 세 번 밖에 더 나오랴”고 했던 이 잡지는 13년 동안 50호가 나왔다.

정조문은 일본 전역을 샅샅이 뒤져 한반도에서 일본에 문화가 전달된 경로를 뒷받침하는 자료와 증거를 찾아냈다. 그리고 힘이 닿는 대로 한국의 문화재를 사들였다. 고려시대 석탑이 고베(神戶)지역 논바닥에 부서져 뒹구는 것을 보고, 아무도 손을 못 대도록 논을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그 석탑은 지금 미술관 마당에 복원되어 서 있다.

이렇게 30여 년 땀과 눈물로 사 모은 한국 문화재, 불상, 회화, 조각 등 1천 7백여 점으로 1988년 고려미술관을 열었다. 해외 유일의 한국 문화유산 테마 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이 미술관에는 청자상감 모란무늬 편호(扁壺-한쪽 면이 평평한 항아리)를 비롯해 국보급이거나 이에 준하는 유물이 50여 점이나 된다. 이 미술관에는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대 명예교수, 시바 료타로, 나오키 고지로(直木孝次郞) 오사카대 명예교수 등이 이사로 참여했다.

창립자 정조문이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한때 그가 조총련에 몸담았던 탓이 크다. 그러나 그는 1970년대, 김일성 우상숭배를 정면으로 비판, 조총련과 멀어졌다. 그는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군사정권 아래 있던 남한과도 거리를 뒀다. 한번도 남북한을 찾지 않았던 그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통일된 조국만이 온전한 내 조국이다. 통일될 때만 유물을 조국에 기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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