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기] 북중러 3국 접경 따라 2,000km를 가다
[동행기] 북중러 3국 접경 따라 2,000km를 가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7.08.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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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단동-집안-통화-백두산-연길-용정-훈춘으로...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창립 10주년 기념 탐방

▲ 압록강변의 북한사람들

4박5일간에 2,000km를 가다니?  집안, 통화,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 않을까? 고구려 수도였던 집안은 어떤 곳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천공항으로 간 것은 7월11일이었다.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사장 이승률)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4박5일간의 고구려역사탐방 행사를 기획했다. 참가자는 모두 32명.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 북방에서 길을 찾아온 단체가 조직한 행사여서, 이 탐방에는 ‘북중러 3국 접경을 가다’는 타이틀도 붙어있었다.

인천공항에는 이번 탐방단을 이끄는 김재효 인솔단장과 이동탁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사무처장이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비행기 출발이 오전 9시여서 다들 새벽부터 서두른 듯했다. 마산 등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첫 행선지는 대련이었다. 아시아나편으로 대련 공항에 내리자 대련한국인회 박신헌 회장과 최용수 명예회장이 나와 꽃다발을 건네주며 우리를 맞았다.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과 재판을 받은 여순법원을 안내하려고 일부러 나왔다고 했다.

먼저 여순감옥으로 향했다. 대련한국인회의 부탁을 받은 정매화 여순법원기념관 부관장이 안내를 자청했다.
감옥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여순감옥은 중국인들에게도 항일 역사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좋은 교육장이었다. 수인들이 갇혀 있던 감방과 사형장을 둘러보면서 ‘애국’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이어 여순법원으로 갔다. 당시 법원 건물은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고, 그 옆 건물들은 병원으로 사용돼 구급차가 오가는 것이 보였다. 기념관은 한국 정부와 현지 한인단체 지원으로 운영되는데, 1인당 15위안씩 하는 입장료 수입이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당시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재판정에는 안중근 의사의 거사와 재판이 동영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법원을 떠나는데 박신헌 회장이 서예 족자 10개를 건네줬다. ‘국가안위노심초사’ 등을 쓴 안중근 의사 글씨였다.

이날 숙소는 단동이었다. 대련을 떠나 4시간여를 달려 단동으로 들어서자, 어둑해진 버스 차창으로 북한땅인 ‘황금평’이 스쳐 지나갔다. 호텔에 짐을 풀고는 최광 전 보사부장관의 특강을 들었다.

이튿날 서둘러 일어나 신의주가 보이는 단동 시가지의 압록강가로 갔다. 단교가 보이는 강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침 일찍 왔는데도 불구하고 버스들이 중국인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단교에서는 윤달생 전 단동한국인회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윤회장은 “북한으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중국 트럭들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면서, “북핵으로 인해 한국 기업들만 큰 타격을 받는 것같다”고 말했다.

단교에서 사진을 찍은 후 일행은 집안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관전에 있는 강안 부두로 가서 ‘압록강 승선여행’에 나섰다. 50-60인승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을 오가는 여행이었다. 북한쪽에서 양을 치는 가족, 고기 잡는 어린이들, 30여명의 소풍을 나온 어린 학생들, 배에서 막 내린 듯한 북한 사람 20여명이 보였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았다.

일행인 김성호 전 서울교육대 총장은 배안에서 중국인 선원을 잡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궁금하던 차에 대화에 끼어들었다. 선원은 중국 관광객들이 북한산 술과 담배를 기념품으로 산다면서, 전에는 북한 사람들이 다가와서 팔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버스가 한적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주변으로 드문드문 인삼재배지가 보였다. 워낙 넓은 지역이어서 이곳에서 나오는 인삼만 해도 적은 양이 아닐 것 같았다. 집안에 닿은 것은 버스로 세시간을 달린 후였다. 집안에서 늦은 점심을 하는데, 마침 일행중 아픈 사람이 생겼다. 빡빡한 여정 탓이었을까?

집안에서는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인 장군총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생겨서 일정을 취소하고 큰 병원이 있는 통화로 바로 갈것인지, 아니면 버스에서 좀 쉬도록 하고 예정지를 빠르게 돌아볼 것인지를 두고 얘기가 오갔으나, 결국 예정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했다.

집안은 고구려의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압록강가에 있었다. 6.25때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은 집안에서 압록강을 건넜다고 한다. 나는 점심식사를 기다리는 시간에 압록강변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는 일행과 합류했다.  

광개토대왕비는 집안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을 찾았을 때 놀란 것은 엄청난 규모 때문이었다. 호태왕비로도 불리는 이 비석은 북한산 정상의 진흥왕순수비와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였다. 동아시아의 오벨리스크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에 사방으로 글씨가 빼곡하게 조각돼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광개토대왕비도 찾아 사진을 찍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 인근에 있는 장군총을 찾았다. 장군총은 돌을 깎아 만든 무덤이었다. 워낙 정교하게 깎아서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돌을 깎아 무덤을 만들었을까? 이같은 무덤이 한반도에도 있을까? 경주 천마총이나 부여 무녕왕릉 같은 흙무덤에 익숙한 내 눈에 장군총은 기이할 따름이었다.

통화에 도착해 일행이 단체로 발마사지를 간 틈을 이용해 시내 구경에 나섰다. 시내는 강을 끼고 발전해 있었다. 한강 절반만한 폭의강 양안으로는 빌딩들이 솟아 있고, 고수부지에는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거나 산책하고 있었다. 통화 명승지인 옥황산 아래 광장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옥황산을 올라보려 했으나 밤에는 출입이 안 된다고 해서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은 새벽 4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통화에서 백산, 이도백하를 들러 백두산을 보고 연길로 가는 긴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백두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새벽 5시가 막 지나서였다. 버스는 고속도로에 올라 정우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빠르게 달렸다. 이도백하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가 갓 넘어서였다. 정우현은 백산시 소속 현으로, 중국 동북항일빨치산 총사령을 지낸 양정우가 순국한 곳이었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까지는 백두산 원시림 속을 달렸다. 길 양켠으로 자생하는 자작나무가 끝없이 보였다.백두산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날씨가 흐려 천지를 볼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때문인지 우리 일행은 먼저 장백폭포를 둘러보기로 했다. 장백폭포는 천지에서 떨어지는 유일한 물줄기다. 그 강이 흘러서 송화강이 돼 북쪽의 길림시로 흘러든다. ‘길림’은 만주어로 ‘강가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천지에 올랐을 때는 오후 2시가 가까웠을 무렵이었다. 천지로는 봉고차를 타고 올랐다. 과거에는 짚차가 운행한 길이었다. 이 차를 타기 위해서는 긴 줄을 늘어서야만 했다. 다행히 천지에 올랐을 때 날씨는 제법 개었다. 북한 장군봉이 선명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천지를 조망하기에는 불편이 없었다. 백두산이 초행이었던 한 인사는 “천지를 본 것은 행운이지만, 너무 서둘러 보고 내려와서 다음에 또 와야 할 것같다’고 말했다.

백두산을 내려와서 숙소인 연길의 국제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가 넘어서였다. 이날은 버스를 탄 시간만 해도 10시간이 족히 넘었다.

나흘째 행선지는 용정과 도문, 훈춘이었다. 일행은 아침 용정의 대성중학교를 방문했다. 대성중학교 역사를 담은 전시관을 보고, 시인 윤동주가 공부했다는 1층의 윤동주 교실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어 일송정을 차창으로 보고는 도문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 날은 연변주정부 부국장도 동행해 북한과 무역을 한 일과 연변 명태를 한국에 수출한 일 등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일행은 오랑캐령을 지나 삼합가는 길목에서 두만강변을 따라 도문으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경 부근의 검문소에서 ‘여권을 지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버스를 돌려 다시 연길로 돌아나가야 해서 도문 방문은 취소하고 훈춘을 먼저 찾기로 했다.  훈춘으로는 고속도로가 개통돼 전과는 달리 빠르게 닿았다. 하지만 예전 길로 가면 보이던 두만강 경치를 조망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북중러 접경인 방천이 가까워지자 두만강이 나타났다. 동행한 연변주 부국장은 ‘몇년전 두만강을 헤엄쳐 중국쪽으로 오는 호랑이를 국경수비대가 발견하고는 철조망을 잘라서 중국으로 오도록 한 일이 있었다’면서 훈춘에는 호랑이도 자주 출몰한다고 소개했다.

방천에는 용호각이라는 높은 건물이 서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북한과 러시아가 훤히 보였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으로 이어지는 철도역인 핫산역이 육안으로도 잘 보였다. 일행 사이에서는 ‘핫산에 보이는 저 들이 이순신장군이 지킨 녹둔도 아닐까?’ 하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날 저녁 호텔에서는 마지막 강연회가 열렸다. 김대호 고려대 교수와 김재효 인솔단장이 특강을 했다. 나는 마침 연길에 있는 인사들과 약속이 있어서 특강에 참여하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오던 날 아침에는 연변과기대를 방문했다. 연변과기대는 연변 동포 청년들을 과학기술인재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세워 운영되는 뜻깊은 학교다. 갑작스런 부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도 이 대학 대외부총장으로 있다.

일행은 학교를 방문해 현황을 듣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마련한 성금도 전달한 후 마지막 행선지인 금강산식품유한회사를 들렀다. 이 공장은 김치 등 부식을 만드는 회사로 중국 지도층이 연변을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이라고 했다.

4박5일간의 이번 일정은 버스로 2,000km를 달린 대장정이었다. 고구려의 무대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우여곡절이 얽힌 현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을 버스로 4박5일간 돌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행의 울림은 길 것같다. 가슴 속에 메아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여순법원기념관. 안중근의사가 재판을 받은 재판정이 기념관으로 돼 있다.

▲ 압록강변의 북한 어린이들

▲ 훈춘 북중러접경지역인 방천 용호각에서.두만강 오른쪽이 북한이고 왼쪽은 러시아다.

▲ 압록강변의 북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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