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간 자동전화가 개통되고,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던 1971년부터 7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조선기술자들이 독일에 3차례에 걸쳐 파견됐다. 조선기술자들은 함부르크 호발트 조선소에 3년 계약으로 근무하며 기술을 배웠다. 근면 성실한 작업 태도로 독일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한국인들은 3년 후 대부분 귀국했지만 45명의 인원은 현지에 잔류했다.
귀국한 조선기술자들은 이후 한국의 조선소 등에 취업하여 배운 기술을 활용, 한국 조선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독일에 잔류한 조선기술자들은 그곳에 정착해 일가를 이루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비슷한 시기에 파견된 한국인 간호사들과 혼인을 해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이들 중 고인이 된 분도 있고 다시 귀국한 분들도 있어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 남아 있는 조선기술자는 20명가량 된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가 발간한 ‘독일 함부르크 한인들의 삶과 문화’ 조사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산업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300여명의 파독 조선기술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9월6일 “2016년 독일 함부르크 한인동포에 대한 생활문화 현지조사를 2차례 실시해 올해 8월 ‘독일 함부르크 한인들의 삶과 문화’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독일에 남아 있는 파독 조선기술자들과 한국으로 귀국한 기술자들의 이야기와 물건을 수집했으며, 그중 10명을 면담한 후 4인의 인생스토리를 수록했다. 일례로 함부르크에 사는 파독 1세대 조선기술자 출신인 이정수씨(1951년생, 부산 출생)는 1983년부터 35년째 양친의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처음 몇 년간은 부인인 박순옥(1955년생) 씨가 친정인 부산에서 제주인 정종과 떡, 나물, 쌀, 과일 등의 제물을 배송 받아 제사를 지내왔었는데, 최근에는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제사상을 차리고 있다. 독일소주, 독일산 배, 함부르크 아시안 마트에서 구입한 나물 등을 제사상에 올린다. 그러나 제사를 모시는 마음만큼은 고향인 한국의 그것 그대로이다. 35년 동안이나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자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보고서에는 재외동포 살림살이 조사내용도 수록했다. 현지조사에서 동포 사회의 생활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한 가정을 선택하여, 집안의 모든 물건을 끄집어내어 사진을 찍고, 그 물건에 깃든 사연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보여주는, ‘물건으로 보는 독일 동포의 생활모습’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한편 박물관은 앞으로 2017년 12월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과 공동으로 한국의 현대 생활문화와 19세기 전통사회의 생활문화에 대한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