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 행차 나팔소리는 귓전만 울리는가
사또 행차 나팔소리는 귓전만 울리는가
  • 탁계석 논설주간
  • 승인 2011.02.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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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장관, 예술인 현장 목소리 청취 기사를 접하며

 
17일 문화부 업무 보고는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당혹케 한 것 같다. 예술인들의 뼛속 깊이 묻혔던 육성을 그대로 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랄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현장의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아이디어나 정책을 내놓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설령 서울역 노숙자라 해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더구나 장관이란 위치에서 화려하게 테이프 커팅을 하거나 보랏빛 청사진을 내놓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래에서 만들어 올리는 내용을 검토, 확인하고 비전을 지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제의 언론 기사를 보니 정장관이 초선의원때 들었던 내용들이 고쳐지지 않고 거의 80%가 똑같은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사또 행차한다고 부는 나팔소리가 그다지 멀리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귓전만 요란하게 때릴 뿐 행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사그라지고 만다.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통인 정 장관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간 묵혀 두었던 속내를 좀 보이고 싶다.

물론 공무원의 마인드가 자주 거론되지만 오늘날 관료는 가장 똑똑하다. 문제는 공무원 업무와 예술 업무간의 괴리이고 정책의 일관성 유지다. 잦은 자리 이동으로 업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과 빛나는 예술 영감을 어떻게 조화를 이뤄 달성할 것인가. 사실 부임하는 장관마다 일성은 언제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였다. 그러니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고스란히 기록에나 남아 있을 뿐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다.

한 번은 가깝게 지내던 문화부 관료가 퇴임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는데, 역대 정부가 들어서면서 발표한 문화 공약문을 모두 보관해 가지고 있는데 그게 하나도 틀리지 않는 ‘붕어빵’이라던 것이다.

그렇다. 태평소 나팔 소리는 요란하지만 멀리 가지 않는다. 산넘어 멀리 가는 것은 북소리다. 그것은 심장의 고동처럼 파동을 가졌다. 그러나 나팔은 직선이다. 상하하달의 지시도 직선이다.

그럼 북소리가 누군가. 현장 사람들이다. 기득권이 아닌 고통을 먹고 사는 작가들이요, 돈 안 되는 것만 골라서 하는 쟁이들이다.

필자 역시 30년 현장에서 거의 모든 장관들의 정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장은 지금도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더 살기가 팍팍해졌다. 때문에 MB정부에 대한 예술인들의 시선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차가운 냉기도 그대로 이고,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땅에 떨어져 뒹굴어도 그대로 방치다.

왜 그럴까. 탁상에 앉은 분들은 현장이 너무 멀고, 미세한 눈으로 봐야 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설혹 지시에 의해 현장을 찾는다 하여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소통을 하지 않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썰렁해져 다시 찾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신하여, 대학생 리포터가 현장의 소리를 들을 것이란 기사를 보았다. 문화체험이라면 몰라도 지금이 그리 한가로운 시간이 아닐 줄 안다. 현장에선 예술가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데...학생 리포터라?

황병기 명인을 만나면 선생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우스운 일 아닌가. 도처에 문화가 넘쳐 홍수를 이루는 것이 이런 포퓰리즘 때문이다.

그럼 대안이 있느냐 물을 것이다. 현장으로 중심축을 이동시켜야 한다. 실제 권한을 이동시켜야 한다. 탁상에서 현장으로, 대학예술 중심 구조에서 프로 예술 중심으로 무대를 전환 시켜야 한다.

지금은 보통의 문화 시대가 아니다. 프로들이 세계무대로 뛸수 있도록 고도의 정책과 팀웍을 보여야지 순환보직이나 하며 책임을 떠넘기던 몇 십 년전의 상황과 다르다. 그간 쌓인 숙제가 하도 많아 봇물처럼 터진 것이다.

일본은 오래전에 이걸 해내 선진국 수준의 문화에 진입했다. 철저하게 전문가를 앞세우고 관료가 나서지 않고 뒤에 서는 것이다. 제도와 형식을 뛰어 넘는 진정성을 가지고 하면 못할 일이 있겠는가. 하려면 할 수 있는데 그게 공공에서는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장으로 권한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심층 기사 하나없는 문화 저널리즘을 보고 있지 않은가. 기능을 살리려면 펜부터 살려야 한다. 오늘 전문 잡지, 평론가 모두 죽었다. 그래서 현장은 누가 죽어도 죽었다 말할 사람조차 없을지 모른다.

예술가들은 자존심 때문에 아쉬운 이야기를 잘 안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피눈물 나는 호소를 하고 있고 누가 굶어 죽었다 하는 기사가 오보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남의 일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느껴지는 현실이다.

왜 그런지 근본을 풀지 않으면 앞으로 몇 십년이 지나도, 몇 분의 장관이 새롭게 더 부임해도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고 있을 것이다. 국가브랜드다 어쩐다해서 문화의 국제경쟁력이 요구되는 때에 문턱에서 해매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장관이 두고 두고 박수를 받으려면 새 정책을 내지않고 오페라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처럼 예술인들의 응어리진 가슴속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다. 왜 돈은 엄청나게 풀었는데, 문화가 제자리걸음이라 하는가.

부디 정병국 장관 재임기간동안에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한 올 한 올 꿰어서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주기를 당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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