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임성규의 ‘행복(Happines)’이란 음악회(3월 4일, 예당리사이틀)를 보았다. 눈에 띄는 점은 주도면밀하게 기획팀을 구성해 상품성 있는 음악회를 만든 것. 보는 관점을 달리해 철저하게 관객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한 컨셉이었다.
해설자도 막 뒤에서 음성만 들려줄 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연주가의 등, 퇴장의 간격을 메우는 방식은 처음 보았다.
‘행복’이란 테마를 소통하기 위해 연극인들을 등장시켜 마임을 곁들인 것도 일반 콘서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무대 진행이었다.
그러면서 ‘행복’을 스토리텔링해 철없던 시절의 행복, 사랑하는 청년의 행복,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중년의 행복, 행복의 근원인 어머니를 통한 삶의 과정을 심도있게 표출시켰다.
오페라 아리아와 한국 가곡을 전통악기와 함께 연주하거나 영상과 환경앙상블 淸(청)을 결합시킨 시도도 프로그램이 쉽게 짜여진 것이 아니라 고심을 거친 작업임을 느끼게 했다. 임성규 바리톤은 “자신은 한국 가곡을 너무 사랑한다며, 자신이 만든 비바보체 남성앙상블로 국제 수준의 음반을 만든 것도 우리 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열정은 소프라노 고미현. 그 역시 한국음악가로서의 정체성 찾아 주목을 끈다. 어려서 호주에서 공부한 탓에 그리움이 컸고 때문에 국내학위를 통해 음악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숙명여대 박사 1호를 한 것과 해외에서 100회가 넘는 연주를 하면서 아리랑을 불러 외국인들조차 눈물을 자아낸 것은 결국 자기 몸에 녹아 있는 예술언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라 했다.
고미현 소프라노는 “외양은 서양 옷을 입고 있을지 몰라도 속은 엄연한 한국인음을 숨길 수 없듯 우리 음악가들도 이제는 한국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야 할 때”라며 한국에 거주하는 대사부인들 합창단을 만들거나 음반을 만들 때도 외국인을 의식하고 표기하는 것은 모두 정체성을 찾아 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소프라노 안선영은 김동진, 장일남, 오숙자, 임준희, 민남일 등 한국작곡가의 곡으로만 오는 6월 두 번째 독창회를 갖는데 꼼꼼하게 문헌을 뒤지고 작곡가의 곡을 분석하며, 한국 발성을 연구하는 한편 피아노와 병행해 곡에 맞는 우리 악기와 춤을 곁들여 우리의 전통인 가무악(歌舞樂) 일체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경기도 문화재단에 기금을 신청했는데 탈락했다며 아쉬워 하길래 필자는 “원래 예술의 역사는 기득권이 아니라 안티(anti)가 살아남는 역사임으로 이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힘들어도 성실하게 작업을 하라”고 격려했다.
성악가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떠가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지금 한창 개화하기 시작한 글로벌 시장을 준비한 것이고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외국 레퍼토리의 한계에서 벗어난 청중개발의 시작일 것이다.
이는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논리와도 직결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평가들은 정체성을 가진 단체나 음악가들을 지원함으로써 비평의 방향성을 더욱 뚜렷이 하고 이로써 한국 클래식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