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정인오의 중국인물탐방-샹동
[탐방]정인오의 중국인물탐방-샹동
  • 정인오 재중국한국인회 부회장
  • 승인 2011.03.2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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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하는 상하이의 샹동

정인오 재중국한국인회 부회장(왼쪽)과 상하이의 샹동
이런 제기랄!
지가 무슨 중국 최고의 잡지를 발행한다고 이렇게 오만한가?
자기가 무슨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나 되는줄 아는가 보지?
아님 진짜 바빠서일까?
그렇지 않으면 원래 중국 최대의 도시 상하이 사람이라서 그런가?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냐…적어도 열 번은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거절 당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호기심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 당할수록 커져만 갔다.

필자가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북경공항 퍼스트클래스 라운지에서 그가 발행한 잡지를 읽게 되면서였다. 전국 공항 VIP라운지 전용잡지(全国機場貴宾庁專属)라는 표지면의 글자는 필자의 장구한(?) 중국에서의 삶에 녹여본다면 ‘이 잡지의 발행인이 만약 장사속을 갖고 있는 개인이라면 보통인물이 아닐 것이다’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정부 간행물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 최근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는 중국인의 부(富)는 점점 그 편차를 크게 하고 있고, 중국인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중국인의 최상층, 소위 1%를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가 필자를 감동시킨 것이 또 하나 더 있었다. <TOP CLUB> - 잡지의 이름이다 – 속에 중국 부유층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제주도를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제주도는 가 볼만한 곳이고, 또 그곳에서 어떻게 즐길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인수할 만한 호텔이라든지, 호텔을 지을만한 좋은 장소 이런 것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었다.

얼마나 대견한가! 누가 정보를 제공했는지, 아니면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사는 필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이 잡지의 발행인을 꼭 만나고 싶었다. 이 때부터 조사를 시작했고 거의 한 달여 만에 그와의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그것도 10시부터… ㅋㅋㅋ 오전 10시가 아니라 밤 10시였으니…

상하이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상하이를 방문한 최고급 귀빈(국가 영도급 내지 외국의 지도자급)이 상하이에 오면 어디서 묵는지를… 이름하여 시자오빈관(西郊宾舘)! 중국 최대의 인구밀집지역 상하이에서 가장 인적이 드문, 오로지 어두운 거리에서 가로등불 밖에 볼 수 없는 낯선 거리… 마치 상하이에서 주름잡던 주윤발 주연의 <상해탄>이란 드라마속의 인물처럼 그를 찾아 얼마나 헤매었던가… 3월초인데도 불구하고 춥기는 또 왜 그렇게 추운지…

우아함과 호화의 극치!

옛 상하이(老上海)를 재현한 문닫은 서교호텔의 고급식당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시가를 물고 있었고, 만약 낮에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을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모자를 푹 눌러쓴 못생긴 얼굴에 그야말로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행색을 한 촌놈이 그런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다니… 과연, 중국은!

잘나가는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할까. 그는 명함도 없었다. 자존심의 발동… 나 역시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 당신이 없다면 나도 없다고… 다짜고짜 한 방 날려 보았다.
“제주에는 몇 번이나 가 보았는지?”
짙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여섯 번 정도”
“왜 그렇게 많이?”
“괜찮은 곳이니까”
“한국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 코멘트…”

큰일이었다. 속으로 진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 대상이 말을 끊으면 아무것도 파헤칠 수 없는 것이다. 작전을 바꾸어야 하나… 혹시 내가 명함을 건네지 않아 기분이 상했을까…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통밥을 굴리면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 사실 필자도 애연가이기는 하지만 인터뷰 중에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 휴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상하이까지 와서 그것도 만나기 싫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 추운 상하이 거리에서 헤매었던고… 절대 그냥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좋다. 이제부터 나도 중국식으로 나가자. 괜히 어설픈 외국인 행세를 하다가는 30분만에 인터뷰는 종칠 분위기였다. 그는 잘나가는 매체의 왕초가 아닌가… 고수를 상대 하려면 나 역시 본색을 드러낼 수 밖에… 히말라야 작전에는 회전낙법을 써야 되는 법이니까…

중국의 공산당사를 풀어놓았고, 상하이와 중국의 정치사까지 읊어 되었다, 그리고 필자가 가진 상하이의 인맥을 들먹이며 서서히 그의 마음을 열어 나갔다. 30여분에 걸친 열띤 입담이 이어지자 그는 마침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필자의 본색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중국에서 짠밥이 몇 그릇인데…’ 그 증거로 그는 자기가 59년생임을 밝혔으며, 필자에게 ‘大哥따거’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사를 얘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 탐색전이 끝난 상태에서 서로간에 족보를 밝히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는 꽤나 출세한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과정을 거치고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남들보다 일찍 출국할 수 있었고(1985년 일본으로 갔었다, 해양분야를 연구하는 학자 신분으로), 그 곳에서 선진국의 모습을 보았고, 선진국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안정된 수입을 배경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던 것이다. 남들보다 몇 년 앞선다는 것… 사업 성공의 필수 요건이 아닐까? 그리고 그는 아마도 “상하이방”이라는 최대의 정치적 배경을 적절하게 이용했을 것이다.

“한국인 친구가 많은지?”
“바빠서 친구 사귈 시간도 없고, 친구가 될만한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냥 한 두 명 정도 아는 사람은 있지만…”
“그런데 어떡해서 한국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원래 내가 가장 잘 아는 곳은 일본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향후 중한관계는 끝없이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 있고, 그래서 한국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아마도 적절한 때가 되면 꽤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최근 중국 정부는 인민폐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 증거로 중국인, 중국기업의 해외투자를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이완과는 이미 인민폐 결재와 관련된 협정을 체결했고, 뉴욕 맨허턴에서 뱅크 오브 차이나(중국은행)를 개점하여 인민폐 영업을 시작했다. 또 금년 초부터 온조우를 시범도시로 선정하여 개인의 자유로운 해외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나”

자칫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상하이 방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간단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 알았지만 그는 얼마 전에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던 중국인들의 BUY JAPAN(중국인들의 일본 부동산 구매)을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최근 그의 관심은 월남과 필리핀이라고 했다.

“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거두려고 하나?”
“서울을 비롯하여 한국 이곳 저곳 다녀봤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관심을 가져 볼만한 곳이 제주도였다. 그래서 작년에 제주도에 집중해 보았지만…”
말을 끊은 그는 필자의 눈치를 살피는지 잠시 침묵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결심을 굳힌 듯 제주도에 대해 강한 비판을 시작했다.

“제주도 관계자를 만나고 난 뒤 큰 실망을 했다. 겉으로는 투자유치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준비를 안하고 있었다. 투지유치에 관한 포커스를 마치 미국에 두고 있다고 느꼈다. 한국은 왜 그렇게 미국에 집중하는가? 미국인들이 제주도에 얼마나 투자한다고… 제주도의 해외투자유치는 포커스를 중국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 상하이에서 제주도까지는 불과 한 시간 정도 거리이다. 얼마든지 중국의 后花園(뒷 정원, 뒷마당)이 될 수 있다. 아마도 수많은 중국인들이 제주도를 방문하고, 또 투자에 관한 상담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주도 정부가 바뀌지 않는다면 중국인들은 곧 제주도에 관한 관심을 돌려버릴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지?”
“내가 알기로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아마도 수십만은 될 것이다. 여행사들이 더 노력한다면 금방 백만 명도 가능한 숫자인데… 제주 공항에 가 보았는가? 중국어 안내문도 없고, 안내 데스크도 없다. 그리고 도로의 표지판도 흉내만 내었지 엉터리 글자도 너무 많았고. 먹거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 뿐만 아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내어 놓은 자료들도 모두 황당한 것이었다. 우대정책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 정책은 다른 나라들도 모두 비슷한 수준이다. 그리고 또 50만불 이상 투자하면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 마치 큰 혜택을 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 이는 우리 중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별로 큰 유혹대상이 아니다”

그의 발언을 들으면서 필자는 점점 등에 식은 땀을 흘렸다. 필자가 알기로는 중국인들의 ‘BUY JEIJU’ 동기가 주로 영주권 혜택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필자가 읽은 보도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대부분 고급 빌라 구매에 치중하고 있었는데, 영주권 취득이 주 목적이라고…

“중국인들이 최근 몇 년간 해외투자 또는 이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세칭 중국의 상위 1% 즉, 개혁 개방과 함께 부를 축적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너 서클(inner circle)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유행인 것이다. 이들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미주권이나 유럽권이지 아시아권은 아니다. 아시아권은 이들 이너 써클들의 레저와 휴양을 위한 곳이다. 아쉽지만 제주도는 중국인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고, 무엇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스터디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제주도가 갖고 있는 조건은 최상이지만…”

약속한 1시간을 지나 2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고 있었던 것이다. 와!… 세다. 상하이 최고급 레스토랑다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식당에서 한끼 제대로 하려면 1인당 50만원 내지 100만원 정도 각오해야 한다고) 아니면 그가 가진 힘일까? 레스토랑 종업원들은 누구 하나 문닫을 시간이니 나가라고도 하지 않았고, 우리들을 위해 계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필자와 그는 시간이 흐른 만큼 꽤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대로 (친근함을 표시하는 증표로)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그 전화번호를 즉시 전화기에 입력하기도 했다. 한 동안 그가 발행하고 있는 잡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많은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4개가 있었다. 이는 새벽 1시가 넘어 헤어지면서 (사진 찍는 것을 핑계로) 다음날 오전 11시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나서 그 실체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다시 한번 니미럴… 잡지 발행인이 사진을 거부하다니… 조르고 졸라서 겨우 한 컷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날의 행색이 어젯밤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며칠 후면 이사를 한다고 했지만 그의 집무실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겨우 앉을 자리 몇 곳만 빼고 정신 없을 정도로 각종 자료들이 수북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와의 입 싸움 속에서 짙은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강하게 한국의 투자유치 정책에 비판을 했다지만 이는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애증이었다. 그는 한국에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를 받아주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필자는 그에게 기꺼이 발목을 잡히기로 결심했다. 그와 함께 한국 정부에 반성하라고 외쳐보자고…

그는 수많은 잡지발행으로 그룹을 이루고 있었지만 실제 그의 참모습은 따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중국의 최상위층, 이너 서클이라는 강력한 배경이 있었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절강상인’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의 돈줄을 움직이는 두 그룹, 절강과 광동. 그는 이들 두 그룹을 상대로 한 일종의 컨설팅, 펀드매니저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그가 발행하는 잡지 <TOP CLUB>은 VIP라운지에서만 볼 수 있는 잡지이고, <ASIA REALTY>라는 잡지는 부동산 전문지로서 중국인의 해외 부동산투자를 소개하는 중국 내 유일한 잡지이며, <JFI>라는 잡지는 최고급 보석을 소개하고 있었고, <TYPICAL CHANNEL>이라는 잡지는 명품 패션과 생활용품을 소개하는 잡지였다. 그리고 또 그는 일년에 두 차례씩 이너 서클들만 초청하여 부동산(최고급 빌라 등) 동향 소개, 요트 구매, 자가용 비행기 구매 등에 관한 세미나, 포럼, 소규모 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있었으며, 이들과 함께 직접 해외로 나가 현장을 살펴보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비록 부를 축적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촌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외, 국제무대에 대한 두려움까지 갖고 있다. 누군가가 이들에게 건전한 안내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정부 관계자와 교감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빈부의 문제’에서 그는 ‘빈’의 문제해결 보다는 ‘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그와 함께 그의 사업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꺼이 필자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다른 약속까지 취소하면서…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인들은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정책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혹시 정권이 바뀌면 그나마 내어놓은 영주권제도도 취소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조선과의 마찰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의 보도가 비록 과도하게 선정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누가 한국의 정국이나 정책에 깊은 연구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리 중국인들은 한국 보다는 일본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일본은 그래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유치에 대해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어제도 말했지만 방향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 제주도나 수도권, 또는 최근에 내어 놓은 강원도의 투자유치까지 모두 아전인수식 투자유치 프로그램이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정책적현실과 중국인의 투자형태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어떻게 한국에 투자할 것인가.”

그는 한 동안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투자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내어 놓았다. 필자 역시 때로는 그의 의견에 반박을 하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베이징, 산동성, 상하이 모두 한국과 가깝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는 우리 중국인들이 가장 친숙한 문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까지는 친미, 친일적인 색채가 농후하다고 여겨진다. 이것이 아마도 투자유치정책까지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중국의 투자유치를 희망한다면 사람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한 박사가 내어놓은 투자프로그램이 중국인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제주에서 만난 정부기관의 중국어 통역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중국과 한국이 수교한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되는데, 한국 정부에는 당신 같은 중국통이 왜 없는가? 당신 같은 중국통이 앞장서야 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좋아하고 신뢰할만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타임스케줄을 갖고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는 필자에게 한국에서 부동산 관계자를 모아 포럼을 하나 해보자고 제안했다. 캬! 맹자 할아버지가 갑자기 생각났다. 不敢請耳固所願也. 최근 필자도 베이징에서의 오랜 세월에 슬슬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친구랑 함께 일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그는 상하이의 어느 지역과 제주도의 어느 지역이든 자매결연도 시켜보자고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중국인들이 가진 의구심을 단계적으로 풀어야만 상호 믿고 투자가 진행될 것이라고 의견을 내어 놓았다. 백 번 천 번 지당한 말씀이었다.

중국인들은 일종의 때거리 습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차이나 타운이 생겨난 것이고… 그리고 또 어떤 투자에서든 우리 보다 훨씬 더 끼리끼리 어울려서 투자하는 습성이 있다. 단순하게 위험분산 때문이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끼리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면서 더 큰 뭉칫돈을 모은다는 취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얕은 식견이긴 하지만 중국인의 한국 투자에 관한 한 미스터 씨앙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 만큼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교류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헤어지면서 그와 깊은 포옹과 악수를 나누었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대접할께”(項东! 下次見面的時后我请你!)
“좋아요. 형 담에 봐”(好好! 再見大哥… )
샹동(項东) 소개
1959년10월 상하이출생

1982년 중국해양대학졸업
1982년-1993년 중국수(水)과학원동해연구소
1993년-현재 동일국제미디어그룹 대표

 중국PECC조직공상위원회부동산전업위원회 위원
 중국민용공항협회VIP서비스위원회 연락부장
 중국국제브랜드대리센터 고문
 상해상공련합회 황금장식품분회 이사
 상해황금장식품협회 이사
 상해경제문화발전협회 이사
 중화문화확산협회 위원
 중국판매센터협회 이사
 이탈리아중국우호교류협회 이태리중국교류센터 비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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