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11] ‘데이비드 탕’과 ‘상하이 탕’
[유주열의 동북아物語-11] ‘데이비드 탕’과 ‘상하이 탕’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 승인 2017.10.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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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베이징의 대사관에 근무할 때는 중국 최고의 실력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그 무렵 주변에서 중국에는 두 사람의 덩(鄧)씨가 밤과 낮을 지배하고 있다는 우스개가 있었다. 낮에는 당연히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이며 밤에는 가수 덩리쥔(鄧麗君)을 이야기 했다.

덩리쥔은 타이완(臺灣) 출신으로 가요계를 석권하여 노래방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네(月亮代表我的心)’ 티엔미미(甛密密)‘등의 노래로 일본을 포함하여 아시아권에서는 가희(歌姬)로 추앙받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1997년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덩리쥔은 그 보다 2년 전 1995년 태국에서 기관지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42세의 젊은 나이였다. ‘테레사 텅’으로도 알려진 덩리쥔의 인기는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베이징에서 홍콩으로 부임해 보니 홍콩에는 또 한사람의 덩(鄧)씨가 문화 패션계를 주름 잡고 있었다. 덩융챵(鄧永鏘)으로 홍콩을 비롯하여 서방세계에서는 데이비드 탕을 알려진 인사였다. 데이비드 탕이 지난 8월 30일 런던에서 간암으로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더났다.

탕은 홍콩의 명문가에서 덩리쥔보다 1년 후인 1954년에 태어났다. 그는 13세부터 영국으로 유학 킹스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영국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영국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탕은 1994년 40세의 나이로 중국 디자인에 서구의 감수성을 입힌 패션 브랜드 ‘상하이 탕(灘)’을 설립하였다.

1930년대 상하이의 패션거리 와이탄(外灘)을 의미하는 ‘상하이 탕(Tang)’은 ‘데이비드 탕(Tang)’과 광동어식 영문 표기는 동일하지만 중국어는 탕(灘)과 탕(鄧)으로 다르다. 중국의 전통과 현대적 모티브의 결합으로 ‘상하이 탕’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보석 시계 제조업체로 프랑스 까르티에(Cartier) 가문이 운영하다가 스위스의 리슈몽 그룹의 일부가 된 까르티에사가 1998년 '상하이 탕'을 인수한 후 영화 ‘색계’의 주인공 탕웨이의 치파오(旗袍)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데이비드 탕은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FT)의 인기 칼럼 ‘고민을 풀어주는 아저씨(Agony Uncle)'의 고정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하는 등 동서양에서 널리 알려진 국제적 인물이었다.

홍콩의 센트럴에 소재하는 옛 중국은행의 본점 건물의 13-14층에 1930년대 상하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차이나 클럽(中國會)’도 데이비드 탕이 만든 회원전용 클럽이다. 클럽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초상으로 실내를 꾸며 놓아 탕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동양인이면서 서양의 매력에 빠진 탕은 자신이 무늬만 중국인 이라며 스스로 바나나에 비유하는 유모어로 주변을 즐겁게 해 주었다. 탕은 레스토랑 고급 사교클럽 그리고 쿠바 시가 총판 등으로 많은 부(富)를 축적했지만 자선 활동에도 남에게 뒤지지 않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하였다.

홍콩의 주권반환 20년을 맞이하여 홍콩이 중국화되는 것에 대한 염려인지 ‘홍콩의 매력은 자유’라면서 홍콩인으로서 자긍심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죽기 2개월 전, 한 언론사의 칼럼을 통해 대영제국의 흔적과 중국의 장엄한 문화력이 혼재된 홍콩의 특별한 경험과 이야기를 홍콩 사람들은 잊지 말고 지켜야 한다면서 홍콩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파티 광(狂)이기도 한 탕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평소 가까웠던 지인들을 불러 생의 마지막 파티를 준비하였다는데 예상보다 빨리 찾아 온 죽음으로 최후의 파티는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말았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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