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의 러시아 읽기] 러시아 음식, 안 짜면 맛이 없다(1)
[김은희의 러시아 읽기] 러시아 음식, 안 짜면 맛이 없다(1)
  • 김은희(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17.11.07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음식’은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핫한 표현을 빌자면 ‘단·짠’ 음식의 대명사이다. 러시아 음식을 맛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식사로 나오는 주 요리는 짭조름하고 디저트는 달다는 평을 한다.

한국에서 벌이고 있는 ‘덜 짜고, 덜 달게’ 먹기 운동 등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짜고 맵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 마니아층도 만만치 않게 두터운 것이 한국 현실이라면, 8박9일 러시아 여행 동안 ‘짜고 달고 나름 맛있던’ 러시아 음식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내딛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안 짜면 맛이 없다’, ‘빵이 없으면 먹은 것 같지 않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러시아 음식은 빵과 소금, 그리고 설탕의 조화로 이뤄낸 맛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레스토랑에서는 어떤 음식을 주문하든 먼저 빵을 내놓는다. 그리고 수프와 샐러드, 고기나 생선 요리 등의 주 요리, 차나 커피에 곁들인 파이나 케이크 등의 디저트 순으로 서빙 된다. 빵은 주로 접시나 작은 바구니에 ‘바톤’이라고 불리는 긴 타원형의 흰 빵과 네모난 ‘흑빵’을 자른 조각들이 담겨 나온다.

“흰 빵은 질리지만 흑빵은 결코 질리지 않는다”, “빵과 소금만 있으며 꿈속에서도 행복하다”, “빵과 소금이면 모욕도 사라진다” 등의 속담에서 보듯이 빵은 러시아인에게 우리의 밥과 같은 존재이자 음식의 기본이다.

우리 팀이 여행하는 동안에도 흰 빵과 흑빵이 함께 서빙 되었고 식탁에는 항상 소금과 후추가 놓여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빵에 소금을 뿌려서 먹기도 한다.

예부터 러시아인은 집안에 항상 풍요가 깃들고 액운을 막고자 식사의 처음과 끝에 빵과 소금을 먹었다고 한다. 또한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나 신랑의 부모가 며느리를 처음 집으로 맞이할 때 빵과 소금으로 맞는 풍습이 있다.

보르시(주로 돼지고기에 사탕무, 토마토 등의 야채를 넣은 러시아식 아채 수프)
보르시(주로 돼지고기에 사탕무, 토마토 등의 야채를 넣은 러시아식 아채 수프)

그런 풍습은 러시아 국가 원수가 타국 정상이나 귀빈을 맞이할 때도 지켜진다. 전통의상을 입은 러시아 여인이 의례용 긴 린넨 수건에 받친 빵과 소금을 비행기 트랩에서 내린 귀빈에게 건네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가끔 볼 수 있다.

귀빈은 손으로 빵을 조금 떼어내서 소금에 찍어 먹어야한다. 귀빈에게 풍요와 축복을 상징하는 빵을 대접함으로써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전달하고 불행을 물리쳐준다는 소금을 함께 먹게 함으로서 액운을 막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만약 손님이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매우 큰 모욕으로 여겨졌다.

한국인들이 먹은 수프들 중 가장 인기를 끄는 음식은 사탕무, 토마토, 양배추와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 스메타나(사우어 소스의 일종)를 얹은 ‘보르시’다. 러시아 수프 중 하나를 고른다면 보르시를 맛보라고 강력히 추천하는데, 대다수 한국인의 입맛에도 무난히 맞는 음식이다.

그 외에 닭고기를 우려낸 국물에 잘게 썬 국수와 버섯 등을 넣은 닭고기 수프, 양배추와 쇠고기를 주원료로 한 야채수프 ‘시’ 등을 추천한다.

수프와 나란히 러시아인이 주 요리 전에 자주 먹는 음식은 죽이다. 러시아에서 호텔 뷔페로 먹은 아침식사와 저녁식사에서는 다양한 죽 요리가 여러 수프와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우유와 쌀, 우유와 보리 등을 넣어 끓인 러시아식 ‘타락죽’, 귀리 죽, 메밀 죽, 수수 죽 등을 맛볼 수 있었는데 한국식 죽과는 달리 러시아에서는 죽에도 설탕을 아예 넣어서 달콤하게 끓이거나 설탕을 따로 비치해두고 각자 넣어먹도록 배려한다. 호텔 뷔페에도 죽이나 수프 코너, 샐러드와 다양한 전채 요리 코너, 주 요리 코너, 디저트와 커피 코너 등으로 음식이 배치되어 있다.

베프스트로가노프(스트로가노프가의 쇠고기요리).  이 요리는 대귀족 알렉산드르 스트로가노프(1795—1891)가 오데사에서 교양 있고 예의를 갖추어 입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게 개방하였던 ‘오픈 식탁’에서 자주 선보였던 쇠고기 요리에서 유래했다.
베프스트로가노프(스트로가노프가의 쇠고기요리). 이 요리는 대귀족 알렉산드르 스트로가노프(1795—1891)가 오데사에서 교양 있고 예의를 갖추어 입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게 개방하였던 ‘오픈 식탁’에서 자주 선보였던 쇠고기 요리에서 유래했다.

필자가 러시아 여행 중 먹은 주 요리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옆 ‘트레티야코프 형제’ 레스토랑에서 맛본 ‘베프스트로가노프’(스트로가노프가(家)의 쇠고기 요리란 뜻. 쇠고기를 넙죽넙죽하게 썰어 소스를 섞여 조리하고 으깬 감자를 곁들인 요리), 러시아 정교회의 본산 ‘세르기예프 파사트’에서 맛 본 ‘먀소 포 데레벤스키’(‘시골식 고기’라는 뜻으로 조그만 옹기 단지 안에 쇠고기, 버섯과 야채 등을 넣어 밀가루 반죽으로 덮은 후 오븐에서 요리한 고기 요리), 목조건축물 박물관의 도시 ‘수즈달’에서 맛 본 채소와 쌀을 함께 곁들인 ‘농어’ 요리,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옆 ‘차이콥스키’ 식당에서 먹은 소스를 얹은 쇠고기 요리, ‘호두까기 인형’ 레스토랑의 대구 오븐 구이, 붉은 광장 옆 ‘소로카’(까치) 레스토랑에서 먹은 ‘닭고기 등심 요리’, ‘페레델키노’ 파스테르나크 박물관 근처 식당에서의 돼지고기 요리 등이었다.

생선이든 고기 요리든 전체적으로 조금 짰지만, 사이드 메뉴가 항상 함께 나오고 빵을 곁들여 먹기에 짠 맛이 감해진다.

필자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는 『북아시아 설화집』(제 1권, 부랴트족), 『현대러시아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제 1권, 제 2권), 『겨울 떡갈나무』, 『금발의 장모』, 『유리 나기빈 단편집』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그림으로 읽는 러시아』, 『나는 현대 러시아작가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며, 러시아 문화와 문학에 대한 글들을 발표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