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 사라지는 만주어(滿洲語)
[유주열의 동북아物語] 사라지는 만주어(滿洲語)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 승인 2017.11.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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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위구르자치구에 만주어 화석처럼 남아 있어
하얼빈, 하이란, 지린 등이 만주어 지명
함경도 아오지는 불타는 돌이라는 뜻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만주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만주어는 중국 동북지방의 백두산 주변에 살던 여진족(女眞族)의 언어였다. 17세기 초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여 금(后金)을 세웠고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민족 이름을 여진에서 문수(文殊)보살을 의미하는 만주(滿洲)로 바꾸고, 나라 이름도 청(淸)으로 고쳤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베이징을 수도로 정하면서 만주어는 지금의 중국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지금의 몽골 인민공화국, 동쪽으로는 연해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카슈가르에 미쳤다. 역사상 가장 방대한 영토의 공용어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영어(英語)를 연상시킨다.

중국 대륙을 지배한 만주족은 처음에는 중국어(漢語)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차츰 중국의 수준 높은 문화에 빠져 들면서 청 왕실을 중심으로 귀족들은 중국어를 즐겨 쓰면서 자신들의 언어를 잊기 시작했다. 1912년 청이 멸망하자 그들의 공식 언어였던 만주어를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다.

베이징 대사관 근무 당시 중국의 지인이 만주 귀족의 후손이라 만주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지인의 설명에 의하면 명(明)대 건축된 자금성 전각의 이름은 모두 한자어였는데 자금성이 청조의 궁전이 되면서 전각의 이름 옆에 일일이 만주 문자를 병기하였다고 한다.

한자어 옆에 꼬불꼬불하게 보이는 것이 만주 문자라고 한다. 읽어 보라고 했더니 중국식 한자음을 그대로 낸다. 우리가 한자어 옆에 한글을 병기하여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듯 한자어 옆에 만주어를 병기하여 만주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외국인이 만주어를 배우고 쓰기 어려워 청말 중국에 외교관으로 부임한 독일의 언어학자 묄렌도르프가 만주어를 로마자로 전사(轉寫 음역)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묄렌도르프(穆麟德)는 청의 북양대신 리홍장(李鴻章)의 소개로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서울에 부임하였는데 언어학자답게 조선어도 유창하여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

청조가 망한 후 중화민국의 동화정책에 의해 만주족은 자신의 고유의 이름을 버리고 중국식 성과 이름을 사용하였다. 아이신줘러(愛新覺羅)성을 가진 왕족은 대부분 황금을 의미하는 진(金)씨로 바꾸었다고 한다. 아이신쥐러가 본래 황금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말과 문법이 유사한 알타이어계의 만주어는 만주족의 운명처럼 중국의 동북지방에서도 사라지고 있지만 중국의 서쪽 끝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이리(伊犁)강 남쪽 시버(錫伯) 자치현에는 만주어가 화석처럼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건륭황제 연간인 1764년에 청의 조정은 새로운 정복지 신장(新疆 New Territory)의 토착인 위구르 족의 반란을 막기 위해 흥안령 산록에서 사냥과 목축을 하던 용맹한 시버(錫伯)족을 가족과 함께 강제 이주(西遷)시켰다. 그들이 수백 년 고립되어 살았기에 지금까지 만주어가 남아 있다.

만주어는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과거 여진(만주)족이 거주했던 중국의 동북지방과 한반도 함경도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하얼빈(哈爾濱 어망을 말리는 곳), 하이란강의 하이란(海蘭 느릎나무), 지린(吉林 강변) 등이 만주어 지명이다.

함경도의 탄광으로 악명이 높은 아오지(阿吾地)는 ‘불타는 돌’의 의미이고, 온천으로 유명한 주을(朱乙)은 ‘뜨거운 물’ 두만강의 두만(豆滿)은 ‘만개의 수원’라는 의미의 만주어이다. 한자 표기는 발음을 빌린 것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

오호츠크 해의 러시아 섬 사할린도 만주어이다. ‘검다’는 의미의 사할린은 본래 흑하(黑河 사할린 울라) 하구의 바위섬(앙가)에서 가장 앞의 글자 ‘사할린’만 사용되고 있다. 흑하는 중국에서는 헤이룽장(黑龍江), 러시아에서는 아무르 강이라고 부르는 중국과 러시아를 가르면서 오호츠크 해로 들어간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흑하로 흘러들어 가는 쑹화강(松花)은 은색의 강(銀河)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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