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기행] 러시아 근대문학의 문을 연 안톤 체호프
[러시아 문학기행] 러시아 근대문학의 문을 연 안톤 체호프
  • 임명옥 한국산문 편집부장
  • 승인 2017.11.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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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기념관 전경
체호프 기념관 전경

낮은 빗소리가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어둠과 함께 음악이 되어 주억거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간간히 콰르릉 거리는 천둥과 번개는 제3막과도 같이 나를 절정으로 데려다준다. 자동차의 진행 소리도 여명처럼 천천히 늦은 음악이 되어 달리는 중이다.

모스크바에서 70km 떨어진 체호프 시()로 달린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 마을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도 알았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체호프 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 입구 건물 앞에는 체호프가 멋들어지게 서 있다. 의사였던 모습처럼 깔끔한 양복차림에 오른쪽 무릎을 구부려 발뒤꿈치를 올린 채 반기고 있다.

체호프는 남부 타간로그에서 1860년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상점이 부도가 나서 모스크바로 야반도주했다. 체호프는 타간로그 중학교를 마치기 위해 혼자 남아 생활했다. 이후 대학시절에는 입주가정교사 생활도 했단다. 작은 사람들의 삶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유독 많다. 하급관리, 농민, 가난한 지식인 같은 소외되고 사회적 작은 인간들에 대한 체호프의 천작은 19세기 러시아 고전문학과의 연계선상에 위치해 있다. 체호프는 귀족출신이 아니다. 상류층의 인물을 그려낼 수 있는 경험이 적으므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의 소재를 다루었다.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대학을 마치고 도시를 떠나 살기를 원해 시골집을 구하던 참이다. 화가가 색칠한 집이 있다는 여동생의 말만 듣고 신용으로 산 영지에는 3채의 집과 농지로 이루어졌다. 바람까지 드나드는 허름한 집이다. 지금은 체호프 기념관으로 사용한다. 애초에 마을 이름은 자작나무의 사각형이었는데 지금은 체호프 시로 개명했다. 이곳에서 체호프는 1892년부터 1899년까지 7년 동안 살았다.

1890, 사할린에서 섬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죄수들의 일상을 조사했다. 이곳은 러시아의 대표적 동쪽의 유형지다. 또한 인도, 싱가포르, 스리랑카, 콘스탄티노플 오데사를 거쳐 모스크바로 귀환한다. ‘시베리아 여행, 1890’과 인구조사보고서 사할린 섬, 1893’이 남아 있다.

기념관 해설사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제 책임을 다하는 경력 1년차의 아가씨다. 시간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성의껏 꼼꼼하게 소개해주었다.

체호프는 이웃 마을 세 곳을 정기적으로 왕진을 다니는 뼛속까지 의사다. 1892년 당시 콜레라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철저한 격리와 치료로 자기 영지 안에서는 무사했다. ‘콜레라 의사라고 불릴 정도로 콜레라가 발병한 2년 동안은 의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한쪽 밭에는 약초를 키우기도 하고 정원 가꾸는 일을 좋아하여 18그루의 사과나무, 60그루의 벚나무 등 손수 심었다.

현재까지도 150년 된 미루나무가 정령처럼 우뚝 서있다. 겨울에는 농노들이 올 수 없는 상황을 알고 이웃한 세 곳의 마을을 순회하며 왕진을 다녔다. 그래서인지 외투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진료비는 무료였고, 환자들은 성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하고. 아주 추운 한겨울에는 집필에 집중하여 생계와 진료하는데 드는 비용을 충당했다. 이때 나온 작품이 <검은 수사> <대학생> <갈매기> <농부들> <바냐 아저씨>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40여편이다. 체호프의 말년을 대표하는 장르는 희곡이다. <갈매기(1898)> <바냐 아저씨(1900)> <세 자매(1900)> <벚꽃동산(1903)> 등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체호프 스스로도 의료는 본처이고 문학은 애인이다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의사였다.

현재까지도 이곳에서 보건소와 같이 마을진료소가 운영되어 천 명 정도 진료를 보고 있다. 천 명이라는 숫자는 해설사가 한 말이라 한 달기준인지, 일 년 기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녀들의 위생과 문맹에 대해서도 솔선하여 지도했다고 한다.

이곳에 체호프 국제연극학교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한 쪽에서는 한창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인 만큼 공원에는 설치미술과 같은 죽음의 문이 있고 좀 떨어진 곳에 결혼의 문이 아치형으로 설치돼 있다. 죽음의 문은 잎새 떨군 가지들로 꾸몄고, 결혼의 문은 봄날과 같은 꽃과 잎이 달린 나뭇가지들로 꾸몄다. 결혼의 문에서는 우리 행복하자, 죽음의 문에서는 값진 삶은 아름답다고 짧게 뇌었다.

부활절에는 꿀리치라는 빵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동전을 넣은 행운의 빵을 만들어 나누었다. 농노들이 동전 넣은 빵을 가져가지 않았을 경우에는 행운이 우리 집에 있나보다고 즐기기도 했단다. 농노들과 하인들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이 많은 의사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가다.

체호프 침실
체호프 침실

사명을 다하는 의사로서 과로하여 37세 때 결핵이 심해져 모스크바 병원에 입원했다. 병세가 악화되어 1904년에 독일 바덴바덴으로 요양을 간다. 아내 올가와 함께 샴페인을 마신 후 샴페인은 정말 오랜만이군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끝내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참을 천둥과 번개가 연주하더니 아침이라는 커튼이 내려와 간밤의 연주를 흡수했다. 빠른 자동차 알토 음만이 신이 났다.

체호프가 이야기하는 여인들. 처음 읽은 단편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다. 몸집이 작고 금발에 베레모, 흰 스피츠 종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도도한 안나. 모스크바를 떠나 낯선 얄타로 와 유부남녀가 만나 배를 타며 일어나는 또 다른 사랑이야기다. 50대 구로프와 안나의 관계는 사랑일까?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 극장 주인인 쿠킨과의 결혼, 원목 도매상인 바실리 안드레이치 푸스토바로프와의 두 번째 결혼, 블리디미르 푸스토니치 스미르닌 수의사와의 생활이 있다. 수의사는 올렌카의 별채에 살았다. 수의사는 자기 가족을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올렌카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그냥 여인이다. 돌아온 수의사와 그의 아내와 아들 사샤에 애정을 쏟는다. 10살 소년 사샤를 돌보기 위해 글도 배운다. 서서히 자기 의견과 생각이 생기고 진실한 사랑도 넘친다. 사샤를 친부모보다 더 큰 애정으로 함께 한다. 올렌카는 주어진 삶을 담대히 받아들이고 상대를 고역스럽지 않게 하는 귀여운 여인이다.

<아뉴타>의 아뉴타. 몸집이 작고 여위고 갈색머리의 스물네댓 정도의 여인이다. 5~6년 동안 대학생들과 동거하면서 지낸다. 겨울 지금은 의대 3학년생인 스테판 클로치코프는 여섯 번째 사내다. 아뉴타는 의대생 클로치코프의 살아있는 마네킹으로 살고 있다. 전라의 아뉴타의 몸은 인체의 명칭과 위치 즉, 늑골, 쇄골 등의 위치에 목탄필로 그려 넣고 직접 타진도 할 수 있다. 아뉴타의 삶은 애잔하다.

<약혼녀>의 나쟈, <어느 여인의 이야기>의 나탈리야 블라지미로브나, 이밖에도 여러 여인들이 등장한다. 체호프는 여자 없는 이야기는 증기 없는 기관차 같다고 표현했다. 마치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화 같은 주인공들이다.

체호프는 떨어져있는 어머니께 자주 편지를 썼다. 작은 크기의 종이에 깨알처럼 써서 무게를 줄여 우표 값을 절약했단다. 재능은 아버지 쪽에서, 마음은 어머니 쪽에서 물려받았다고 술회한다. 작품들은 19세기 말 따뜻한 마음으로 귀족이 아닌 평민, 농노, 소외된 계층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러시아 고전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열린 문이 되었다.

그에게 다가온 여인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듯, 자상하게, 애처롭게, 귀엽게, 헌신처럼 마음을 울리며 다가온다.간밤의 빗소리 연주처럼 한 편의 협주곡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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