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달팽이 산책]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7.11.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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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된 이미지 언어는 매력적인 아이들의 놀이도구

작년 3월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에 부임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을 통해 북경에 있는 한국유치원들이 운영을 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유아교육전문가의 부재현상이라고 전해 들었다.

현재까지도 북경에는 부모교육을 하고 싶어도 유아들의 발달특성이나 이 시기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에게 ‘맞춤형 부모교육’을 할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부모교육의 우선순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 놀이하면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도구는 그림책이다. 유치원에서 ‘도서대여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매주 2권을 책을 빌려주고 있다. 학부모님들에게는 자녀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매월 독서토론회를 실시했다. 한국에 있을 때 6년간의 대학교 강의 경험과 지방의 가정지원센터에서 10년 가까이 그림책에 관한 부모교육 강의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읽다 보면 그림만 있고 글이 없는 그림책을 만나게 된다. 글이 있다하더라고 아주 짧은 문장이거나 미완성 문장으로 되어 있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그림책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런 그림책을 만나게 되면 부모들은 순간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글이 없는데 어떻게 읽어줘야 하지?’라고 당황하며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엄마의 동공 속에 비친 아이의 눈은 엄마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어서 들려주세요”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당황스럽고 두렵기까지 했던 경험을 한 번쯤이라도 해보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모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종종 “글이 없으니까 어떻게 읽어 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기도 그렇고”라는 고민을 듣게 된다. 부모님들이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주로 글로 되어 있는 책들이고 그림은 글의 보조 역할을 하는 삽화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어른들에게 책 읽기란 빼곡히 나열된 글자들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차례대로 읽는 것이었다. 동화책 속 삽화는 마치 거실의 장식장처럼 한 쪽 모퉁이에 보기 좋게 가지런히 놓여 있곤 했다. 간혹 그 안을 들여다보기는 하나 그 누구도 이런 장식장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책 읽기란 곧 문자를 읽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남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림책은 전달하고자 하는 수천수만 개의 언어를 그림으로 전달한다. 작가들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그림 속에 숨겨놓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놀이를 즐긴다. 그림책 작가인 권윤덕은 이러한 놀이를 ‘숨기 찾기 놀이’라고 말한다. 글을 모르는 아이도 재미있게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숨기 찾기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볼 때 글이 없어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보다 그림을 먼저 쳐다보며 쉽게 말을 건다.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며 변화하는 화면을 따라 가며 ‘주인공이 변신했다. 3D영화 같아’, ‘기차보다도 엄청 빨리 달려. 와! 타조가 하늘로 난다!’ 등 때로는 혼잣말로 때로는 고함을 지르며 이야기 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

아이들은 그림책의 앞장과 뒷장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림으로 된 이미지 언어는 시각적 기호로서 직접적이고 풍부하며 강력하기 때문에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놀이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고 상상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유아기에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필요가 있다. 유아기에는 귀를 통한 말의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다. 몰리 뱅의 「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만 화나면」 그림책은 감정을 외곽선과 색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새빨간 빨간 색처럼 소리를 질렀다’는 장면을 보고 “쏘피는 얼마 만큼한 소리를 질렀을까?”라고 물어본다. 이러한 질문은 빨간 색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인 소리를 연결시켜 감정폭발의 정도를 헤아려볼 수 있도록 자극을 줄 수 있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품들은 대부분 글이 없고, ‘연속적 프레임(화면 분할), 오버랩, 클로즈업 등 무성영화의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책 「시간상자」에서는 해변에서 발견한 수중카메라의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사진관에 가고 궁금함이 큰 만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만 과정을 한 페이지에 13장의 프레임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이 기다리면서 무엇을 하고 있니? 그림을 보니 현상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 것 같니?”, “왜 새로운 필름을 샀을까?” 등의 질문은 주인공의 감정을 읽어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볼 수 있게 한다.

어른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나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을 때도 반드시 글자 읽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글이 먼저 읽는 것이 이해가 빠를 때도 있고 그림을 먼저 읽으면 상상력이 더해져 더 흥미로울 때도 있다. 반드시 글과 그림 중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전에 먼저 어른이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글과 그림 중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 더 좋을지 판단할 수 있다. 다만 글 속에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가 시각적 언어인 그림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각을 자극하는 장면에서는 ‘오감으로 그림읽기’, 프레임과 프레임 혹은 앞장과 뒷장의 시공간적인 간극의 차이는 단서를 중심으로 ‘유추하고 상상하며 그림읽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칼바람이 매서운 북경이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따뜻한 겨울나기를 하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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